[단독]교원들 “학교가 교육 역할 절반도 못해…공교육 정상화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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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교총, 교사노조 등 교원 3단체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학생 가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중학교 교사 추모 및 교권 보호 대책 요구 집회를 하고 있다. 2025.06.14. [서울=뉴시스]

전교조, 교총, 교사노조 등 교원 3단체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학생 가족 민원에 시달리다 숨진 제주 중학교 교사 추모 및 교권 보호 대책 요구 집회를 하고 있다. 2025.06.14. [서울=뉴시스]
지난해 서울 지역 한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학부모 1명에게 수천 통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받았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학칙 등에 따라 교실 밖에 20분간 나가 있으라고 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학부모는 “아동학대다”, “애 아빠를 데리고 학교에 가겠다” 등의 메시지를 보낸 뒤 학교로 쫓아왔다. 문자 폭탄에 지친 교사는 병가를 냈다.

교원은 심각한 교권 침해를 호소하고 학부모는 교사와 원활한 의사 소통이 안 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상황에서, 학교 현장의 공교육 질 저하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15일 동아일보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초중고교 교원 79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원 49.8%는 “학교가 수업, 평가, 체육활동, 생활지도 등 교육의 본질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교권을 보호하고 학부모와 소통을 강화하는 근본적 노력 대신, 당장 발생한 문제를 덮어버리는 미봉책이 이어지면서 학교 공교육이 반쪽짜리로 전락한 것이다. 교권 침해 논란, 공교육 질 저하 등에 대한 지적이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학교 현장에선 새 정부의 교육정책 1순위로 ‘공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생 감정 상하지 않게 조심

서울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교사 A 씨는 “항상 녹음과 신고 걱정을 한다”며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아이에게 내 목소리가 컸을까, 기분이 나빴을까 와 같은 생각을 하루 종일 한다”고 털어놨다. 경기도에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 B씨는 “교사들 사이에선 ‘아이들에게 최대한 싫은 소리는 하지 말고, 하게 되면 간식이라도 주며 사과하라’는 꿀팁이 공유된다”고 말했다.

본보-교총 설문조사에서 교원은 교육 활동 중 가장 어려운 영역으로 ‘생활지도’(93.8%·복수 응답)를 꼽았다. 지난달 학교에서 숨진 제주 지역 교사가 결석이 잦은 학생을 지도하다 가족의 민원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교원 1만 여명은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해당 교사를 추모하고 교권 보호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1년 4개월 만에 열린 교원 집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사상 첫 공동 주최했다. 최근에는 ‘왜 시험을 봐서 애 주눅을 들게 하냐’는 식의 민원까지 등장했다. 서울 초등학교 교사 C씨는 “곱셈, 나눗셈 같은 수학은 단원평가가 꼭 필요한데 일부 학부모는 ‘우리 아이 자존감 떨어지게 왜 시험을 보느냐’며 연락이 온다”고 했다. 최근 학교에선 중학교 2학년이 되기 전까지 제대로 된 시험을 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서울 강남구 초등학교 교사 D씨는 3학년 학부모에게 “우리 애가 영어유치원 출신인데 어떻게 영어 수행평가가 ‘중’이냐”는 항의를 받았다. 대전 초등학교 교사 E씨는 “진단평가에서 기초학력이 낮게 나온 아이 부모에게 방과후 보충학습을 제시했다가 ‘아이를 낙인찍다니 선생 자질이 없다’는 비난을 들었다”고 전했다.

●체육, 체험학습도 축소

몸을 쓰는 체육 수업은 위축이 심각하다. 대구 한 초등학교에서는 체육 시간에 축구공 대신 말랑말랑한 탱탱볼을 쓴다. 넘어져 무릎만 까져도 부모들이 난리인데 딱딱한 공으로 수업하다가 다치면 안되기 때문이다.

체험학습 중 사망한 학생 사고에 대해 최근 교사가 실형을 받는 판결이 나오면서, 교사들이 체험학습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현장체험학습은 6882건이었지만, 올해는 4342건(완료 및 계획 포함)으로 전년 대비 36% 감소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지난해까지 체험학습으로 놀이공원을 갔지만, 올해는 4월에 “학교로 찾아오는 체험학습으로 대체하겠다”고 알렸다. 이 학교는 올해 강당과 교실에서 비누만들기, 마술 공연 관람 등으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교육부는 지난해 서이초 교사 사망 이후 초·중등교육법을 개정해 교원의 학생 생활지도 권한을 법제화했고 세부 지침으로 교권 침해 유형을 정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박남기 전 광주교대 총장은 “일반 회사는 업무 관련 소송이 걸리면 법무팀이 해결하는데 교사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며 “교육 업무와 관련된 소송은 일단 당국이 해주고, 교사 잘못으로 판정되면 구상권을 청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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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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