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계약한 뒤, 차액은 현금보관증 씁시다”… ‘전세반환 보증’ 미끼로 신종 불법거래 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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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기준 강화돼 보증금 낮춰야
빌라 등 일부 집주인 불법거래 유혹
HUG “다운계약은 사기” 변제 거절

“여긴 송파구라 다음 세입자가 안 구해질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정 불안하면 계약서는 1억9000만 원으로 쓰고, 나머지 5000만 원은 현금보관증으로 거래하죠.”

21일 기자가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전세 보증금 2억4000만 원짜리 서울 송파구 빌라 전세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사에서 전화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전세반환 보증) 가입 여부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계약서를 실제 거래 가격보다 낮춰 쓰는 ‘다운 계약’은 명백한 불법이다. 사이트에 적혀 있던 ‘전세반환 보증 가입 가능’ 문구는 손님을 낚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다.

최근 빌라나 오피스텔 전세 계약 시 전세반환 보증 가입이 필수로 여겨지는 가운데, 계약서상 가격은 낮춰 쓰고 차액을 현금으로 주고받는 신종 불법 거래가 나타나고 있다. 보증금 전액을 잃거나 전세 사기 공모자로 엮일 수 있는 ‘위험한 거래’라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취재팀이 21일 부동산 중개 사이트에 서울 소재 빌라나 오피스텔 전세 매물을 올린 공인중개사무소 30곳에 문의해 보니 4곳에서 이 같은 불법 다운 계약과 현금 거래를 제안했다. 수법은 거의 똑같았다. 4곳 모두 사이트에선 ‘전세 반환 보증 가입이 가능하다’고 홍보해놓고 전화로 문의하면 말이 달라졌다. 계약서상 보증금은 전세반환 보증 가입이 가능한 금액으로 낮춰 쓴 뒤 차액은 현금으로 주면 차용증이나 현금 보관증을 써 주겠다고 하는 식이었다.

이런 수법이 등장한 건 전세사기 사태 이후 전세반환 보증 가입 문턱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2023년 5월 이른바 ‘126%룰’이 도입되면서 전세 보증금이 주택 공시가격의 126% 이하여야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이전에는 150%를 넘지 않으면 가입할 수 있었다. 집값 대비 과도한 보증금을 낮추도록 유도해 깡통전세 피해를 예방하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일부 깡통주택 집주인들은 공인중개사와 짜고 보증금을 집값의 126%보다 더 받기 위해 불법 거래를 서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불법 거래로 전세를 구한 세입자는 보증금을 모두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먼저 차용증이나 현금보관증은 개인 간 돈 거래를 증빙하는 서류일 뿐, 주택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김예림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 (차용증은) 후순위 채권이라 담보 물건이 있으면 우선순위가 밀려 돌려받기 어렵다”고 했다. 전세반환 보증에 가입한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다운 계약은 전세반환 보증 이행 거절 대상이다. 집주인이 보증금을 안 돌려준다고 HUG에 보증 이행을 요구해도 변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기나 허위 계약으로 적발돼 HUG가 변제를 거절한 건수는 2020∼2022년 연간 한 자릿수였다가 2023년 39건, 지난해 43건으로 크게 늘었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도 받지 못한다. 허위 임대차 신고로 간주돼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현금 거래 방식의 위험성을 알고도 계약한 것이라면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해도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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