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급 업체가 관리하는 공사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원도급 업체가 법에 정해진 안전·보건 의무를 다했다면 경영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전주지법 군산지원 형사3단독(부장판사 지창구)은 지난 16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삼화건설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금까지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원청 업체가 처벌을 피하려면 하도급 업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 등이 모두 무죄로 판단돼야 했다. 사실상 원청업체가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라 이를 부당하다고 여기는 기업들의 불만이 많았다. 이같은 판결이 나오자 건설업계는 일제히 환영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삼화건설 사례를 시작으로 ‘더 큰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반응이 나온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 자체에 논란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도급 업체가 주로 관리하는 현장에서 삼화건설의 책임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 그리고 삼화건설이 이행한 안전·보건 의무의 실효성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전주지법은 1심에서 원도급 업체에 유리한 판단을 내렸다.
원도급 업체와 하도급 업체로 이뤄진 구조가 많은 건설현장에서 사고가 날 경우 법리 다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지점이다. 실제로 이 사건을 취재하며 만난 법조인들은 “사고 현장마다 상황에 따라 법원 판결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탄생 당시부터 지적됐던 문제점이 많았다. 원청 업체와 하도급 업체 중에서 사업장을 실질 운영·관리하는 주체를 정의하기 어렵다는 사실과 ‘경영책임자’ 범위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 안전조치 의무와 사고 책임 소재가 분리되지 않았다는 부분 등이다. 이번 판결은 수면 아래에 있던 논란의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취지가 좋은 법이라고 해도 설계에 문제점이 있다면 유·무형의 사회비용만 늘릴 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보완방안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로펌들 돈만 많이 벌어다 주겠네요.” 삼화건설 판결을 들은 A건설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