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세상 바꾸는 양극형 리더

12 hours ago 1

[다산칼럼] 세상 바꾸는 양극형 리더

일론 머스크는 인류의 화성 이주라는 돈키호테적 비전을 품는 동시에 재활용 로켓을 개발해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이상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 기술 혁신은 물론 정부 보조금과 상업 계약 등 냉철한 경영 전략도 병행했다. 스티브 잡스는 예술가의 직관과 엔지니어의 논리를 넘나들며 감성과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제품을 만들었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으로 시장 흐름을 정확히 읽어낸 점도 그의 특징이다.

순다르 피차이는 조용한 내향형이지만 대중 앞에선 따뜻하고 명료한 소통으로 조직 안팎의 신뢰를 얻었다. 마크 저커버그는 소셜미디어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메타버스라는 낯선 세계에 과감히 도전했다. 이들은 모두 현실과 이상, 직관과 분석, 과거와 미래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양극형 리더’의 전형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창의적인 사람들의 ‘양극적 성향’(paradoxical traits)을 강조한다. 저서 <창의성: 플로와 발견의 심리학>에서 그는 창의적인 사람들은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이고, 논리적이면서 직관적이며, 질서를 중시하면서도 혼란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독립적이면서 협업을 중시하고,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낡은 틀을 과감히 깬다.

이러한 상반된 특성은 충돌이 아니라 시너지를 낳는다. 극과 극이 만나는 지점에서, 혁신은 번개의 스파크처럼 솟아오른다.

이 통찰은 동양 철학에서도 강조된다. ‘대관세찰(大觀細察)’은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찰을 결합한 사고방식이다. 이는 전체와 세부를 함께 보는 것을 넘어 관점을 유연하게 전환하고 문제를 다층적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코닥과 넷플릭스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필름 산업의 제왕이던 코닥은 기술 변화를 알면서도 기존 수익 모델에 안주해 도태됐다. 반면 넷플릭스는 DVD 대여 업체에서 스트리밍, 콘텐츠 제작으로 전략을 확장하며 글로벌 미디어 선두 주자가 됐다. 기술 변화라는 ‘거시적 흐름’을 읽는 동시에, 이용자 경험이라는 ‘미시적 인사이트’를 날카롭게 포착한 결과다. 대관세찰, 곧 다층적 사고(multi-layered thinking)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과 기업문화는 ‘양극형 리더십’을 기르기엔 여전히 불리하다. 교육은 정답 중심, 수치 중심 평가에 갇혀 있고, 직관과 감성은 ‘비과학적’이라며 배제된다. 기업은 단기 성과를 중시해 실험과 균형 감각을 기르기 어렵다. 다양한 성향을 조화롭게 훈련할 수 있는 ‘유연성의 공간’이 부족한 것이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loT), 빅데이터, 로봇공학 등 기술이 융합되는 시대엔 단일 기술이나 학문만으로는 혁신을 이끌 수 없다. 미래 인재는 다양한 상황에 맞춰 양극적 성향을 조화롭게 발휘하는 능소능대(能小能大)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문·이과 통합이나 융합형 인재 육성 같은 낡은 구호가 아니라, 상반된 성향을 실제로 훈련하고 균형 잡힌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 실험이 필요하다.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프로젝트제로는 직관과 논리를 번갈아 요구하는 수업 구조를, 시카고대의 랩스쿨은 감성과 이성을 통합하는 프로젝트 기반 학습을 운영 중이다. 모두 ‘양극형 사고’를 교육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다.

우리는 지금 그런 인재를 제대로 기르고 있는가? 특정 직업만을 성공의 전형으로 제시하고 있진 않은가? 머스크처럼 상상력과 현실 감각을 겸비한 리더를 기대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가능성을 차단하는 교육 구조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감성과 논리, 직관과 분석, 이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경계 파괴자’(border crosser)다. 되돌아보면 ‘사업보국과 인재 제일’의 이병철, ‘하면 된다’의 정주영이 그랬다. 현실의 벽 앞에서도 상상력을 포기하지 않고 낡은 틀을 깨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이들처럼 이제는 그런 인재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길러낼’ 차례다. 시름에 빠진 한국 경제를 그들이 구할 것이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