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펼쳐지는 공짜지만 결코 공짜가 아닌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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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소개로 미국 뉴욕 출장 중이었던 한 분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독일에서 연수차 지낸 적이 있었다며 당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한 번은 라디오에서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첫 곡의 아름다움에 빠져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차에서 내릴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남은 음악을 끝까지 감상하느라 약속 시간에 늦게 되었다며 연가곡의 첫 곡 ‘아름다운 5월에(Im wunderschönen Monat Mai)’를 들려주었다. 우연히 접한 슈만의 가곡이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만난 시작점이 되었다고 했다.

스웨덴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는 오랜 시간 실리콘밸리에서 연구를 하며 살아온 엔지니어이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클래식 음악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음악 감상 리스트를 부탁하더니, 시간이 흐른 후에는 웬만한 음악 평론가와 비교될 만큼 깊은 식견의 애호가가 되어 있었다.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공연 현장 / 사진. © Yo Han Yeom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공연 현장 / 사진. © Yo Han Yeom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서울 중화동 반지하 단칸방에 살던 어린 시절 카세트테이프가 닳도록 들었던 곡이 있었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였다. 클래식에는 관심도 없던 때였는데 이 곡의 3악장에 꽂혀 셀 수 없이 돌려 들었다. 음악을 전공하면서 이 곡의 구조나 배경도 더 자세히 알게 되었지만, 그 방에서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듣던 그때만큼 모차르트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느꼈던 적은 없었다. 음악은 때때로 그렇게 예기치 않은 손님처럼 찾아오고, 우물처럼 깊은 곳으로 안내한다.

병역을 마친 후 미국 중서부 시골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왔다. 한 번은 공립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노숙자 행색을 한 아프리카계 남성이 들어오더니 CD를 잔뜩 빌려 자리를 잡았다. 그는 두 시간 넘게 음악에 심취했다. 다음 날에도, 또 그다음 날에도 그는 도서관을 찾았다. 먹을 것과 잘 곳을 찾는 것이 그에게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던 것은 나의 선입견이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즐기던 소중한 두 시간의 힘을 잊을 수 없다.

뉴욕에서 펼쳐지는 공짜지만 결코 공짜가 아닌 무대

2009년 가을, 11년을 살던 인디애나를 떠나 아내와 함께 무작정 뉴욕으로 이사했다. 큰 트럭을 빌려 짐을 싣던 날, 내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삶은 그저 낯선 도시를 향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처럼 굴러갔다. 뉴욕은 살아본 적도, 기댈 사람도 없던 곳이었다. 그렇게 탐험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무엇이 내 음악이 될 수 있을지, 누구를 위해 연주할 수 있을지 잡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암담하고 복잡한 고민을 이어가던 어느 날, 공공도서관에서 마주쳤던 그 할아버지가 문득 떠올랐다.

1년 후 출범한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New York Classical Players, NYCP)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음악회를 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고용된 공연을 제외한 모든 NYCP 연주는 무료이다. 조수미와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투어를 함께했고, 백혜선과는 베토벤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다. 선우예권과는 뉴욕 보스턴 시애틀을 돌았고, 최나경과는 지금까지 위촉한 여섯 곡의 플루트 협주곡을 초연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저명 연주자들과 지난 15년간 250여 회의 무대를 함께해 왔다.

조수미 / 사진. © New York Classical Players

조수미 / 사진. © New York Classical Players

선우예권 / 사진. © New York Classical Players

선우예권 / 사진. © New York Classical Players

처음에는 ‘무료’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견과 마주해야 했다. 돈을 받지 않는 공연은 가볍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기 때문이다. ‘재능 기부’로 운영될 텐데 인건비가 왜 그렇게 많이 필요하냐는 냉소적인 말도 들었다. NYCP는 단 한 번도 연주자의 헌신에만 기대지 않았다. 관객에게는 티켓 값을 받지 않지만, 연주자에게 그 대가를 떠넘기지도 않는다. 티켓은 무료지만, 연주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미국의 전문 공연단체 대부분이 연간 예산의 약 30%를 티켓 수입으로 충당한다. 무료로 공연을 연다는 것은 재정 기반의 1/3을 포기한다는 말이다. 올해와 작년 시즌에 각각 20회 공연을 가졌다. 팬데믹이 터졌던 해는 25회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소위 대기업이나 유명 재단의 ‘그럴듯한’ 후원이 없다. 그들의 관심과 지원은 더 크고, 저명한 단체에 몰리기 때문이다.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구멍가게 같은 곳에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힘은 이 일이 가진 의미에 공감해 준 수많은 관객들과 개인 소액 후원자들 그리고 무대에 함께 서는 연주자들의 믿음 때문이었다.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 사진. © Yo Han Yeom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 사진. © Yo Han Yeom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공연 관중들 / 사진. © Yo Han Yeom

뉴욕클래시컬 플레이어스 공연 관중들 / 사진. © Yo Han Yeom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려면 그 안에 담긴 음악은 오히려 더 정교하고 정직하며 진심이어야 한다. 거기에는 어떤 계산이나 조건도 붙지 않는다.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값을 매길 수 없기 때문에 돈으로 셈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는다.

NYCP는 무대마다 진심을 올린다. 누구에게나 오래 남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마치 어떤 이를 차 안에 멈춰 세워 아름다운 5월을 떠올리게 하고, 남루한 시골 도서관의 오후를 쏟아지는 빛으로 채우며, 지하 단칸방의 아련한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것과 같은 음악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뉴욕=김동민 뉴욕클래시컬플레이어스 음악감독·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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