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류에 관한 깊은 오해는 진화가 선형적인(linear) 경로를 따라 이뤄졌다는 믿음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멸종한 뒤 호모 하빌리스가 출현하고, 다시 그가 사라진 자리에 호모 에렉투스가 등장했으며, 이후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가 차례로 지구라는 무대에 올랐다는 식의 사고 말이다.
인류의 진화사는 그러나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거친 요약이겠지만 수십만 년 전 고대에는 외형과 인지력이 차등화된 다양한 종이 ‘동시대에’ 공존했다. 그들 중 대부분은 각각의 이유로 생존의 막다른 골목에서 무대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오늘날 지구상에 유일하게 생존한 최후의 종이 바로 우리,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다.
그러나 2013년 11월. 고인류학계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벌어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석회암 동굴에서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신인류가 발견된 것이다. 이 발견은 고인류 진화사에 균열을 일으켰고, 전 세계 고인류학자들에게 그야말로 충격을 안겼다. 이름은 ‘호모 날레디(Homo Naledi)’. 그들은 누구였을까.
리 버거·존 호크스 지음, 김정아 옮김, 알레 펴냄, 2만2000원
신간 ‘케이브 오브 본즈’는 호노 날레디를 처음 세상에 알리며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이름을 올린 저자의 집요한 기록이다.
지하 30m, 몸 하나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수직 통로를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한 암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자와 연구팀은 이곳에서 뼈와 치아 화석 총 1200여 점을 발견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전 세계에서 발굴된 고인류 화석의 총 개수가 고인류 연구자 전체의 숫자보다 적었기에, 남아공 암굴에서 발견된 뼈는 단숨에 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발견된 유골의 머리뼈 크기는 호모 사피엔스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이는 ‘적은 뇌 용량’을 뜻했다. 해부학적 형질 또한 기존의 어떤 인류 화석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혼란은 한 아이의 유해 옆에서 발견된 15㎝ 반달형 돌멩이로부터 비롯됐다. 이게 그들이 만들어 쓴 도구인지, 아니면 그냥 굴러다니던 돌멩이인지 판단이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이 정도 크기의 뇌를 가진 존재는 도구를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동굴을 탐사하며 결정적 흔적을 발견한다. 자연적인 풍화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위적인 무늬와 선들이, 유골 위 동굴 벽면에 수십 번 그어져 있었다. “이곳이 죽은 이를 묻은 매장지다”라는 함의를 품은 ‘기호’가 분명했다. 소형 뇌를 가진 호모 날레디가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으며, 죽은 이를 매장하고, 이 과정에서 협력했음을 뜻하는 강력한 증거였다. 이건 다시 뭘 의미할까.
저자의 발견은 ‘도구 사용은 대형 뇌의 산물’이라는 오랜 통념을 근원적으로 뒤흔든다. 동시에 ‘현재적인 의미에서의 인간이 분명히 아닌’ 호모 날레디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을 가졌다면,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사피엔스로 만들어주는 조건, 즉 ‘인간다움’이란 뭔지를 우리에게 사유케 한다. ‘인간의 고유함이란 과연 인간만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이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