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다음달부터 철강 수입량을 최대 15% 줄이기로 했다. 미국이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미국 수출이 막힌 철강이 유럽으로 쏠리는 걸 차단하기 위해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철강 관세를 높이는 등 전 세계에 ‘철강 장벽’에 세워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스테판 세주르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1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철강·금속산업 행동계획’을 발표했다. EU는 다음달부터 사실상의 수입 쿼터(할당량)인 ‘철강 세이프가드’를 강화할 계획이다. EU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미국의 철강 관세에 대응해 일정한 할당량을 넘는 수입 철강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 조치는 세계무역기구규정에 따라 내년 6월 만료되지만 EU는 그 전에 새 보호 조치를 제안할 방침이다.
유럽철강협회 추산에 따르면 EU는 2023년 철강 완제품을 총 2557만t 수입했다. 한국이 317만7000t으로 가장 많은 철강을 EU에 수출했고 인도(286만3000t), 대만(239만1000t) 등이 뒤를 이었다. EU가 철강 수입을 줄이면 한국도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대(對)EU 주력 수출품인 열연과 합판이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EU는 철강 제품의 원산지를 최초로 용해되거나 주조된 국가로 못 박는 ‘용해·주조 원산지 규정’도 검토하기로 했다. 일부 수출업체가 비EU 국가에서 생산한 철강을 들여온 뒤 최소한의 변형 조치를 통해 EU산으로 둔갑시키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또 탄소 배출량을 고려해 수입 제품에 일종의 탄소세를 매기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적용 대상을 철강·알루미늄 가공 제품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올해 말까지 내놓을 예정이다.
세주르네 부위원장은 “점점 더 많은 국가가 자국 시장으로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채택하고 있으며, 그 결과 EU 시장이 글로벌 초과 생산능력의 주요 수용지가 되고 있기 때문에 무역과 관련한 부정적 영향이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중국 등에서 생산하는 값싼 철강이 각국 관세에 막혀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사태를 막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지난 12일부터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25% 관세를 매기고 있다.
인도 관세청은 전날 일정 가격 이하로 수입되는 중국·베트남산 철강에 12% 임시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인도는 세계 2위 철강 생산국이지만 최근 중국·일본에서 철강을 대량 수입하고 있다. 남아공도 19일 “남아프리카 공업은 저가 또는 표준 이하 수입품의 유입으로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며 관세 인상을 위해 업계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