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입자가 계약갱신권을 쓴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며칠 뒤 갑자기 3개월 뒤에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어요. 2년은 더 살 줄 알았기에 당황해서 급하게 전세를 내놨는데, 그날 바로 나갔습니다. 요즘 전세 품귀 현상을 실감했죠." (서울 마포구 임대인 B씨)
# "최근 전세를 내놓으면서 임차인 조건을 '아이나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신혼부부'로 정했습니다. 집 구하는 사람은 줄을 섰고 물건은 적으니까요. 이왕이면 집 깨끗하게 쓸 사람으로 골라 받으려고요. 예전 같으면 까다롭다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부동산에서도 제 조건에 맞는 사람으로 선별해 연락해줍니다." (서울 송파구 임대인 C씨)
최근 수도권 전·월세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매물 품귀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임대차 시장의 주도권이 임대인에게 넘어가고, 그에 따라 시장 풍속도는 임차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22일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이날 기준 1만5316건입니다. 이는 올해 초와 비교해 33.6% 급감한 수치입니다.
전세 매물이 이토록 빠르게 사라진 배경에는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부의 강력한 규제책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와 투기 억제를 위해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강화를 예고하자, 압박을 느낀 다주택자들이 물건을 처분하거나 세금을 감당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며 전세 공급이 위축된 것입니다.
여기에 실거주 의무 강화 등의 규제가 맞물리며 집주인이 직접 입주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매물 증발을 부추겼습니다. 결과적으로 다주택자를 압박해 매물을 끌어내려던 정책이 임대차 시장의 매물 품귀 현상으로 이어지는 역설이 발생한 셈입니다.
공급이 줄어드니 전셋값은 상승하고 있습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3월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6억149만원이었습니다. 서울 평균 전셋값이 6억원을 넘어선 것은 2022년 11월 이후 약 3년 4개월 만의 일입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역시 이런 매물 품귀 현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동작구의 한 공인 중개 관계자는 "예전에는 전세 대출이 잘 안 나오거나 위험하다는 인식 때문에 융자가 남은 물건은 기피 대상 1호였지만, 지금은 가릴 처지가 아니다"라며 "융자가 꽤 잡혀 있는 전·월세 물건도 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금방 계약이 체결될 정도로 세입자들에게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마포구에 있는 또 다른 공인 중개 관계자 역시 "전세를 구하러 왔다가 물건이 없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반전세나 월세로 돌아서는 분들이 대다수"라며 "임대인들이 높아진 세금 부담을 임대료에 전가하면서 보증금은 그대로인데 월세만 추가되는 형태의 계약이 대세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임대차 시장의 혼란이 가중하면서 전문가들은 시장이 힘의 균형을 상실한 상태라고 진단합니다. 임대인이 일종의 면접을 통해 임차인을 선별하고, 정당한 권리인 납세 증명 요구에도 계약을 거부하는 행위가 용인되는 구조가 공급 부족에서 기인한다는 지적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다주택자를 규제해 시장 안정화를 도모하겠다는 정책 취지는 명확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급 위축이 무주택 서민과 세입자들의 주거 비용 상승으로 직결되고 있다"며 "전셋값 상승은 결국 서민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줄이고 주거 불안정을 초래하는 만큼, 임대주택 공급을 실질적으로 늘릴 수 있는 세심한 정책적 보완과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1 week ago
6






![노예계약에 특약까지 … 세입자는 웁니다 [퇴근길 30초 경제]](https://img.hankyung.com/photo/202605/ZA.44081143.1.jp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