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똑같은 외모와 기억을 가진 그는 누구인가

5 days ago 4

# 1

그는 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테르툴리아노 막시모 아폰소라는 고전적인 이름을 가진 그는 삶이 가져다준 쓴 경험으로 다소 침체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런 그에게 동료 교사가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 <경주는 빠른 자에게>라는 제목의 영화를.

썩 내키지는 않지만 시간을 때우기에 적당한 코미디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비디오 가게에 들러 비디오를 대여해 온 그는 영화를 보면서도 크게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다. 무엇 때문일까? 분명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왔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비디오 플레이어에 꽂혀 있는 <경주는 빠른 자에게>를 떠올리고 그것이 이유라고 확신하며 화면을 응시한다. 그리고 발견한다. 자신의 얼굴과 꼭 닮은 얼굴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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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세상에 닮은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한다. 쌍둥이를 보라. 하지만 쌍둥이조차 모든 것이 정확히 꼭 닮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화면 속의 조연과 자기 자신이 흡사하긴 하지만 다른 점을 찾아내면서 서서히 진정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는 더욱 큰 충격에 빠진다. 비디오 케이스를 살펴보니 영화는 5년 전에 제작된 작품이다. 5년 전 자신의 사진을 찾아낸 그는 사진 속 자신이 화면 속 조연배우처럼 콧수염이 있고 얼굴도 갸름하다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당신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우연히 보게 된 영화에서 조연배우의 얼굴이 나와 똑같은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혹은 길을 가다가 보게 된 누군가가 혹은 어딘가에서 보게 된 사진 속 인물이 나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어느 정도의 충격이 어떤 모양으로 찾아오게 될까.

주제 사라마구의 『도플갱어』는 쌍둥이보다 더 흡사한, 마치 복제인간 같은 도플갱어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와 대면한 역사 교사 아폰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볍게 볼 요량으로 대여한 비디오에서 스치듯 지나간 조연 배우의 모습이 자기 자신의 모습임을 보게 되고 충격을 받은 아폰소는 그 배우에게 집착하게 된다. 수많은 생각과 방법을 동원해 그의 예명이 아닌 진짜 이름을 알아내게 되고 전화번호와 집 주소까지 알게 된다.

드디어 몇 번의 노력 끝에 그와 단둘이 대면하게 되고 두 사람은 단순히 얼굴과 체격이 똑같이 생긴 것뿐 아니라 몸의 흉터나 점까지도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생일까지도.

아폰소의 복제품 같던 배우는 그러나 아폰소보다 담이 센 것인지 유들유들한 성격인지 그 스스로도 충격을 받았을 텐데 오히려 '누가 서로의 복제본인지’ 알아보자며 태어난 시간을 말하라고 한다.

- 우리 둘 중에 누가 상대의 복사본인지 알게 되겠죠. 내 생각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복사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살아가는 게 불편하기는 하겠죠.

안토니오 클라로라는 이름의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폰소에게 태어난 시간을 묻는다. 아폰소의 대답을 듣고 클라로는 자신이 30분 먼저 태어났으니 아폰소가 '복제본’이라고 말한다. (솔직히 클라로가 아폰소의 대답을 듣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나 확신은 없다)

그렇게 해서 서로 피하기로 약속했지만 운명은 두 사람을 그냥 놓아두지 않고 흔들어 버리고 섞어 버린다.

도플갱어.
나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기분이 될까?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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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서 나와 닮은 사람들은 당연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쌍둥이보다 더 닮은 아니, 나의 복제본 같은 도플갱어는 존재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도플갱어를 만나면 한쪽은 목숨을 잃는다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만약 내가 나의 도플갱어와 만나게 된다면 나는 살아남는 쪽이 될까 아니면 반대가 될까...

이런 상상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 2

이런, 구덩이에 떨어져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베르토도 나샤도 그와 몇 마디 나누고는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가버렸다. 게다가 그가 6주 동안 백업을 해두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나샤는 왜 업로드를 하지 않았냐고 살짝 책망 섞인 작별 인사를 남겼다.

그렇다. 미키는 익스펜더블이다. 개척지에서 단 하나뿐인 익스펜더블. 그는 계속 새로 만들어질 수 있고 실제로 그가 죽으면 그가 또 만들어진다. 그의 이름은 미키이고 지금 구덩이에 떨어져 죽음을 기다리는 존재는 미키 7이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출처. IMDb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출처. IMDb

미키 7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단순히 미키 1이 했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살았던 삶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내일 아침 그는 미키 8으로 깨어날 것'이라고.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미키 7은 미키 1과 같은 존재인가? 미키 8 또한 같은 존재인가?

이런 문제는 쉽게 답을 낼 수 없다. '원본' 미키의 모든 신체적 정신적 요소와 지속적으로 업로드된 기억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으니 이후 복제되는 미키는 모두 같은 존재(더구나 이전 버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멀티플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존재는 역시 이 세상 유일무이한 그 자신이 아닌가.

한편, 그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혹은 그가 그 자신임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억'에 관한 부분은 어떨까? 그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긴 하지만 지금 미키 7처럼 6주간이나 업로드하지 않아 기억의 공백이 생긴 경우는 어떨까? 하긴, 미키 7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차후 복제본인 미키 8은 그저 '미키'이겠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출처. IMDb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출처. IMDb

그러나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 7』의 미키 7처럼 개척지 생명체의 도움으로 살아남아 아직 존재하는 와중에 미키 8이 이미 태어나 있다면 '미키'는 과연 누구일까? '미키'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두 생명체의 다른 점이라고는 6주간의 기억의 유무일 뿐이다. (버전에 따라 발현되는 성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오리지널 '미키'의 이런저런 성향 중 어느 부분이 더 크게 나타나느냐에 따른 것일 테다. 마치 부모의 유전자가 자녀들에게 각기 다르게 발현되는 것처럼 말이다)

# 3

데커드는 앞에 앉는 아름다운 레이첼에게 질문을 하나씩 던진다. 튜링 테스트이다. 그녀의 기억들에 관한 것이다. 레이첼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그녀의 눈은 저 먼 시간 어딘가를 헤매는 듯 보인다. 한참을 그렇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은 데커드에게 회장이 묻는다. 최신 버전 리플리컨트인 레이첼은 진짜 인간 같지 않느냐고.

레이첼은 리플리컨트. 그녀의 기억은 모두 가짜로 그녀에게 심어진 것들이다. 하지만 레이첼의 입장에서 그 기억은 전부 자신의 것이고 진짜일 수밖에 없다. 외형도 기억도 감정도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단 그녀가 레플리컨트라는 것을 아는 진짜 인간들이 있어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스틸컷 / 출처. IMDb

영화 <블레이드 러너>(1982) 스틸컷 / 출처. IMDb

오리지널과 복제본.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규정.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기억. 이런 화두를 가지고 일찍부터 많은 철학적 고민을 담은 작품들이 있어왔고 우리는 스스로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해 왔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그 증거는 무엇이고 당신의 기억은 오리지널이 틀림없는가?

어쩌면 SF 작품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런 질문들을 우리는 곧 스스로에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 4

최근 개봉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 또한 그런 점에서 출발한다. 영화 <미키 17>은 제목부터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원작 소설보다 더 많은 복제 버전이 존재하고 블랙코미디 스타일이 가미되고 단순하고 명쾌하게 끌어가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출처. 한경DB

영화 <미키 17> 스틸컷 / 출처. 한경DB

그럼으로써 원작 소설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존재'의 의미를 묻기도 하는데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원작 소설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느껴보시라고 말씀드린다.

신지혜 칼럼니스트•작가

▶ [<미키 17> 릴레이 리뷰 ①] "죽는 건 어떤 기분이야?"…복제인간 미키17에 대한 봉준호의 시선
▶ [<미키 17> 릴레이 리뷰 ②] 18번째 복제인간과 마주한 미키...인간을 위해 죽는 모든 존재에게 묻는다
▶ [<미키 17> 릴레이 리뷰 ③] 미키17의 세계관, 소설 <미키7>의 103쪽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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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 『도플갱어』, 주제 사라마구, 해냄
- 『미키 7』, 에드워드 애슈턴, 황금가지

[참고영화]
-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 1982년 작
- <미키 17>, 봉준호, 2025년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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