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여사 위에 도사’의 나라… 새해 복 많이 받는 방법

1 day ago 5
을사년(乙巳年) 운세 혹시 보셨는지요? 저는 안 봐요. 사주팔자는 겁나서 안 보고 살았어요(나쁘게 나오면 어떡해요). 하지만 신문 ‘오늘의 운세’를 꼭 챙겨보는 독자가 적지 않다는 건 잘 안답니다. 어쩌다 빠지면 항의가 빗발쳤거든요.

10년 전인가, 논설실장 되고 얼마 안 됐을 때 한 극단대표님이 저녁 초대를 하셨어요. 선배와 함께 댁에 가니까 기(氣)로 사람본다는 분이 와계셨는데 저를 보더니 “당신은 그냥 동아일보 사람”이라지 뭐예요. 하하. 더 궁금한 것도, 바랄 것도 없어서 또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이던 2021년 9월 TV 토론회에서 발언하던 윤 대통령의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가 그려진 장면이 TV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 채널A 화면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이던 2021년 9월 TV 토론회에서 발언하던 윤 대통령의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가 그려진 장면이 TV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 채널A 화면 캡처
왜 제 얘기부터 했는지 알아채셨죠? 실은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이 후보 때부터 손바닥에 왕(王)자 쓰고 나오더니, 부부가 영적 대화 나누다 못해 부인은 타칭 ‘지리산 도사’에게 충성을 외친 사실이 비상계엄 직전 드러났다고 쓸 작정이었어요. 그런데 설 연휴 전 책방에서 책을 잔뜩 사서 나오려는데 또 한 권이 눈에 확 띄지 뭐예요. 강신무가 쓴 ‘중년의 샤머니즘’이라는 책이었어요. ● 영적으로 연결된 윤석열 대통령 부부

지난해 9월 추석을 맞아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초청해 한가위 명절 인사 행사를 진행하던 윤 대통령 부부. 대통령실 제공

지난해 9월 추석을 맞아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을 초청해 한가위 명절 인사 행사를 진행하던 윤 대통령 부부.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부부는 영적으로 연결된 관계라고 했다. 2021년 녹취된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7시간 통화에 따르면, 진짜 스님은 아니지만 도를 닦는 ‘무정 스님’이 김건희에게 “너는 석열이하고 맞는다”라며 소개해서 만났단다. “우리 남편도 약간 그런 영적인 끼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랑 연결이 된 것”이라고 했는데 “너희들은 완전 반대다. 김건희가 남자고 석열이는 완전 여자다”라는 건 딱 들어맞았다.

무정은 윤석열이 검사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녹취에 따르면 “(무정) 스님이 우리 남편 20대 때 만났다. 계속 사법고시 떨어져서 한국은행 취직하려고 하니까 너는 3년 더해야 한다고 했는데 붙더라”고 했다. 그런 무정과는 중간에 의절했다. “왜냐면 우리 남편 앞에서 갑자기 문재인은 망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남편 망한다는 말밖에 더 돼요? 열 받아서 다신 보지 말자고.”(이명수 ‘세븐 스캔들’. 사실 문재인이 망하는 바람에 윤석열이 흥한 게 아닌가?)

김건희는 자신의 ‘영빨’을 자신하고 있었다. “세간에서 내가 무당을 많이 만난다고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저는 무당 싫어해요. 웬만한 무당이 저 못 봐요. 제가 더 잘 봐요.” 그러면서 이명수의 손금과 관상을 봐줄 테니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했다. “나 공부 많이 했어요. 근데 이건 공부로 해결될 문제는 아냐. 약간 타고나야 하는 거 알잖아요?”(그런데 왜 이명수한테 속아넘어갔을까)

● 이태원 해결책, 명태균에게 물은 김건희

명태균 씨가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

명태균 씨가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지방검찰청으로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
나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고,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세상도 존재한다고 본다. 종교를 갖든 안 갖든, 무속을 믿든 안 믿든 개인의 자유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에 불과한 김건희가 고도의 전문성과 능력이 필요한 정책적 문제까지 ‘예지력’ 있다는 명태균에게 자문한 건 국정농단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요원’, 그리고 장관과 고위공직자들은 몽땅 부지깽이란 말인가.

2022년 10월 이태원 참사 한 달 뒤 국회가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계획서를 통과시키자 김건희는 명태균에게 텔레그램으로 물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이 상태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주세요” “사태 파악은 이미 다 됐으니”.

명태균은 “국정조사 위원으로 의사조율과 전투력, 언론플레이 능한 의원들을 포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점식, 배현진, 송언석”이라고 ‘나의 완벽한 비서’처럼 답했다. 실제로 그해 12월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송언석은 “(시신이) 해밀턴호텔 옆에 골목만 있었던 게 아니다. 현장에서 무려 300미터나 떨어진 곳에도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고 말해 ‘2차 가해’라는 비판까지 받았다.

● 남에게 척을 치면 운명이 꼬인다

올 초 ‘중년의 샤머니즘’을 내놓은 유명옥은 1965년 을사년 생이다. 1997년 만신 김금화로부터 신내림굿을 받아 강신무가 됐다. 호기심 많고 지적 탐구를 좋아해 2000년 독일 유학 준비를 하고 있는데 다른 무당들이 그의 학마살(學魔煞)을 들면서 유학에 성공하면 자기들 손에 장을 지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속으로 다짐했다. 두고 보시라. 당신들 신령님이 맞는지, 나의 신령님이 맞는지.

무속인 유명옥의 책 ‘중년의 샤머니즘’ 표지. 운명과 예언이 아니라 노력과 대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속인 유명옥의 책 ‘중년의 샤머니즘’ 표지. 운명과 예언이 아니라 노력과 대처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유명옥은 정말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가 웃자고 말하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운이 70%, 재주가 30%가 아니었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점복 행위를 통해 자신의 운명과 미리 안다고 해도(운칠), 부단히 노력하지 않으면(기삼) 운명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성이면 감천이다이라는 소리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운명을 바꾸는 요인으로 가장 내 가슴을 찌른 대목은 “척(慼)지지 말라”는 것이었다. ‘척’이란 타인이 나에게 서운한 마음이나 원한을 갖게 하는 거다. 척신이 들러붙으면 온갖 괴로움을 주고 인생을 순탄치 못하게 하며 인간관계가 꼬이게 된다고 했다. 대통령 부부도 가슴에 손을 얹어보면 알 것이다. 앰한 사람 쫓아내고, 무고하고, 돈을 가로채 척지지 않았는지.

● 사태 파악 못하는 샤머니즘 중독자들

12·3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를 받고 구속 수감 중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그는 스스로 무속인을 자처하는 동시에 다른 무속인에게 찾아가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주변인들의 ‘영전’ 여부를 묻는 등의 행동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동아일보DB

12·3 비상계엄을 사전 기획한 혐의를 받고 구속 수감 중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그는 스스로 무속인을 자처하는 동시에 다른 무속인에게 찾아가 김용현 전 국방장관 등 주변인들의 ‘영전’ 여부를 묻는 등의 행동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동아일보DB
무당이란 고조선 이래 줄곧 공동체의 안녕과 치유, 영적인 조화와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유명옥은 적었다. 그러나 윤 정권에서 일부 무당(또는 법사, 도사)은 ‘영적인 능력’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다 구속되는 등 한국무속문화 망신 다 시키는 중이다.

김건희도 명태균도 절대 자기네가 무당이라고 하지 않았다. 무당보다 더 잘 본다고, 예지력이 있다고 했을 뿐이다. ‘중년의 샤머니즘’에 따르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무당들 대부분은 경계성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다. 경계성 인격장애란 성장기에 부모에게 학대나 방임을 당한 경험이 있어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인간관계가 불안정하며, 감정기복이 심하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성공욕이 엄청난 반면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타인에게 지극히 착취적이며 사기성까지 있다.

우리가 좀 아는 그들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점복자들을 찾는다고도 ‘답정너’ 스타일이다. 샤머니즘 중독자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지도,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도 못한다. 흑백논리와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쉽게 격노하고 공격성을 보인다. 혼자선 극복 못하는 절망, 고독을 치유하려다 친절한 영적 사기꾼에게 홀딱 빠져 가스라이팅을 당하기 일쑤다. 유명옥은 “샤머니즘 중독자들은 정신과적 상담과 약물치료, 인지행동 치료가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는 대통령 후보 부부의 심신 건강진단 공개가 필요할 판이다.

● 귀신도 빌면 돌아선다고는 했다

우리가 무속의 부정적 측면만 연달아 목격해서 그렇지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연세대 교육대 학장을 지낸 김인회는 한국인의 인간중심 논리, 반(反)권위주의, 평등주의적 성향이 무속문화에서 왔다고 했다(2023년 저서 ‘한국무속문화의 실상과 한국인의 교육철학’).

제주 성산일출봉 인근 바닷가에서 여명 무렵 무속인과 제주도 주민이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 우리 역사에서 무속인은 사회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긍정적 역할을 해 왔다. 2016년 제8회 제주 국제사진공모전 수상작.

제주 성산일출봉 인근 바닷가에서 여명 무렵 무속인과 제주도 주민이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 우리 역사에서 무속인은 사회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고 아픔을 치유하는 긍정적 역할을 해 왔다. 2016년 제8회 제주 국제사진공모전 수상작.
귀신도 빌면 돌아선다고 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들었던 그 말이 나는 참 좋다. 두 손으로 싹싹, 정성을 다해 비는 것이 문제를 푸는 기본 방식이다.

그렇다고 무속문화만으로 이 글을 맺을 순 없다(빌기만 하고 문제해결 않고 돌아서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무속 근처까지 안 가도, 요즘 ‘근본주의’라고 하는 전투적 신앙 또는 이데올로기까지 안 가도 새해 복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 나는 고민했다.

● “내가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는 황금율

‘축의 시대’쓴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인류는 한번도 ‘축의 시대’(기원전 900년~기원전 200년) 통찰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했다. ‘축의 시대’란 중국에서 공자와 묵자, 노자가 활동했고 인도에서 ‘우파니샤드’와 고타마 싯다르타가 나왔고, 이스라엘에서 예언자가, 그리스에서 소크라테스가 제자를 기르는 등 인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현자들이 탄생했던 때다.

그 책에서 찾아낸 ‘황금률’, 그들의 일치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네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참 쉽지 않은가. 점치러 돈 싸들고 어디 갈 것도 없다. 좀더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행동하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했다. 내 운명을 바꾸진 못해도 친절한 태도쯤은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친절하게 새해 인사드린다. 독자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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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니스트·고문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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