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
“나만 할 수 있는 선거운동 위해… 68개 전 종목 체험 후 SNS 올려
선거 후 이기흥에 먼저 전화… 이 회장도 ‘잘 하라’며 화답
두 아들도 축구선수 꿈꾸며 훈련… 학부모로 느낀 점 정책에 반영
기업 후원 누구보다 잘할 자신… 체육 도움 되면 어디든 달려갈 것”
《“선수 때부터 계란으로 바위를 여러 번 쳐 봤다. 두려움 없이, 열심히 치고 또 치다 보니 결국 바위가 깨지더라.” 14일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집고 새 체육회장에 당선된 유승민 당선인(43)의 지론이다. 실제로 그는 여러 차례 계란으로 바위를 깨곤 했다. 많이 이들이 기억하는 대표적인 사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탁구 단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하오를 이긴 것이다. 이전까지 왕하오와 여섯 번 붙어 여섯 번 모두 패했던 그는 올림픽 금메달을 놓고 벌인 경기에서 4-2로 승리했다. 21년이 지난 지금까지 올림픽 탁구 단식에서 중국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사람은 유 당선인이 유일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중 치러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이름값이나 경력을 감안할 때 당선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혈혈단신으로 아침부터 밤까지 선수촌을 누볐다. 하루 3만5000보씩 걸어 다니느라 살이 5kg 넘게 빠졌다. 처음엔 눈길도 주지 않던 선수들이 하나둘씩 아는 척을 했다. 그는 결국 4명을 뽑는 선거에서 2위로 당선되며 IOC에 입성했다. 그리고 이번 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대이변을 일으켰다. 8년간 회장직을 맡으며 ‘콘크리트 지지층’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던 이기흥 현 대한체육회장을 꺾고 한국 체육의 수장이 된 것이다. 다음 달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앞두고 있는 유 당선인을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났다.》―이번 체육회장 선거 결과를 기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이길 수 있었나.
“많은 분들이 기적이라고 말씀해 주시지만 준비의 결과인 것 같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 준비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번 선거 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 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만약 졌다 하더라도 아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선택받지 못했다면 ‘내가 부족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저를 믿고 뽑아 주신 만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 선거인단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하나.
“선수 출신이자 젊은 후보로서 다른 후보들이 못 하는 나만의 선거운동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거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대한체육회 산하 68개 종목을 모두 체험한 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것이었다. 해당 종목을 몸소 체험하는 게 그 종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하루에 스무 종목을 찍은 날도 있다. 강이 얼어 있어 카누, 조정 같은 수상 종목은 못 했다. 패러글라이딩도 예약을 해 놓고 날씨 사정이 좋지 않아 못 했다. 나중에라도 반드시 체험해 볼 생각이다.”
“단일화를 추진하던 다른 후보님들께도 솔직히 얘기했다. 부족한 점, 단점은 고치고 보완하면 되는데 나이가 적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체육회장으로 일하는데 나이보다는 일을 잘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대한체육회장이라는 자리는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다. 젊은 사람들의 패기와 나이 있으신 분들의 연륜이 조화되는 게 중요하다. 저보다 경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동시에 젊은이답게 창조적인 일들을 많이 해 나가겠다.”
―선거 승리 후 이기흥 후보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고 들었다.
“이 후보뿐만 아니라 함께 경쟁했던 모든 후보들 한 분 한 분께 전화를 드렸다. 이 후보께서도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로 ‘잘 혀, 잘 혀’라고 말해 주셨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했던 스포츠인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마음 아픈 네거티브도 있었다. 하지만 선거 땐 적으로서 치열하게 다투었을지 몰라도 결과가 나온 순간부터는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스포츠다.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공정한 룰로 경쟁하고, 승부가 결정된 후에는 서로를 존중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유 당선인에게 ‘하드워커(hard worker·열심히 일하는 사람)’란 별명을 붙여줬다. 끊이지 않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IOC 선수위원이 되면서 가장 먼저 결심했던 게 ‘누구보다 부지런한 일꾼이 되자’는 거였다. 저도 인간이니만큼 힘들고 피곤할 때가 있다. 하지만 체육인들과의 약속,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크다. 머리는 ‘오늘은 하루 쉴까’라고 속삭이는데 몸이 먼저 밖으로 나간다. 사실 몸이 힘든 건 힘든 것도 아니다. 다양한 분을 상대하고 예상치 못했던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정신적인 부분이 힘들 때가 있다.”
―그래도 힐링이 필요하지 않나. 정신적인 리프레시는 어떤 식으로 하나.
“두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유일한 힐링 포인트다. 지난 주말(18일)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축구를 하는 큰아들(성혁 군)이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경남 함안을 찾았다. 함안에 간 김에 그곳에서 훈련 중인 여자축구 선수들도 만났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아들(성공 군)도 축구를 한다. 두 아이가 모두 축구를 하는 학부모이다. 학부모로서 직접 보고 느낀 현장의 어려움을 정책적으로 잘 풀어가 보려 한다.”
―대한체육회장으로서 임기 내에 반드시 해내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학교 체육 활성화와 일반 학생들의 스포츠 활동을 조화롭게 해 모든 이들이 체육을 즐겁고 행복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먼저 엘리트 체육의 기반이 되는 학교 체육이 활성화돼야 한다. 현재 학생 선수들을 가로막고 있는 각종 규제가 적지 않다. 이런 부분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엘리트 체육은 언제 망가져도 이상하지 않다. 지금 구조에서는 엘리트를 원하는 학생 선수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을 시행하려 하나.
“대표적으로 전국소년체육대회의 위상을 예전처럼 높이는 데 집중하려 한다. 스포츠는 목표와 동기가 있어야 발전한다. 그런데 요즘 소년체전은 명맥만 이어가고 있을 뿐 선수가 1등을 하고 메달을 따 와도 그리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서 역대 최다 타이인 13개의 금메달이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한국 체육의 위기를 말한다.
“파리 올림픽에서 32개 종목이 열렸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딴 13개의 금메달은 양궁, 사격, 펜싱, 태권도, 배드민턴 등 다섯 종목에서 나왔다. 우리가 잘한 종목도 생각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던 종목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웃 나라 일본은 파리에서 20개의 금메달 등 45개의 메달을 땄다. 우리와의 차이는 육상과 수영 등 기초 종목을 비롯해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정상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8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때 전통의 메달밭인 양궁이나 펜싱이 컨디션 난조 등으로 무너지면 우리나라의 메달은 급격히 줄어들 우려가 있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기초 종목부터 차근차근 다시 키워야 한다.”
―대한체육회 내부에 대해 강도 높은 개혁을 예고했는데….
“체육회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능력 있는 직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수동적으로 일해 온 것 같다. 능력과 창의, 추진력이 같이 올라와야 한다. 젊은 회장답게 젊은 분위기, 적극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또 국제 업무와 같이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에서는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돕겠다. 대부분의 국가올림픽위원회(NOC)는 전문적으로 국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 체육회는 2년마다 한 번씩 사람을 바꿨다. 이런 부분들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체육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의 후원도 중요한데….
“경기인 출신이지만 기업 후원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고,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국가대표 선수단이 ‘30대 기업 어디로부터도 후원을 못 받았다’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 체육이 잘되려면 기업들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된다. 선수 시절 삼성 로고가 달린 유니폼을 입었다. 이를 통해 삼성이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 잘 알고 있다. 스포츠에 관심 있는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
―이기흥 회장 시절 체육회와 정부가 상당히 불편한 관계였는데….
“사실 체육회와 정부가 왜 척을 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정부가 말도 안 되는 불합리한 지시를 한다면 싸우는 게 당연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상호 협력해야 한다. 우리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만 있다면 자존심을 굽히고 머리를 숙일 수 있다.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주변 사람이 힘들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 정부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육기관, 기업 등 체육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갈 생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건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당선인(43) |
△1982년 인천 강화 출생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복식 4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단체전 동메달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단체전 은메달 △2016∼2024년 IOC 선수위원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선수촌장 △2019∼2024년 대한탁구협회장 △2025년 대한체육회장 당선 |
이헌재 스포츠부장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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