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 인사이트]‘독성 생산성’을 해독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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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죽어서나 실컷 자면 되지.” 요즘 직장인들이 일하느라 밤을 새우면서 만성적인 수면 부족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하는 얘기다. 이들은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건강과 인간관계를 쉽게 희생시킨다. 이른바 ‘독성 생산성(toxic productivity)’에 취해 있기 때문이다. 독성 생산성은 우리 삶을 갉아먹는 문제로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머서에 따르면 전 세계 노동 인구의 82%가 번아웃의 위험에 처해 있는데 그 원인으로 과도한 업무량, 피로, 재정적 부담 등이 꼽혔다.

독성 생산성은 왜 생기는 것일까?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고된 일을 미덕으로 여기고, 휴식을 게으름과 동일시하는 사회적 환경에서 독성 생산성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규범처럼 깊이 자리 잡는다. 또한 독성 생산성은 완벽주의를 장려하는 문화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업적을 곧 자신의 가치라고 믿는다.

소셜미디어 또한 경쟁의식을 조장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압박을 증폭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상에서 상대방이 나보다 더 우월해 보일 때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증이 심해지는데 이는 곧 일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바쁜 상황으로 내몰게 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팬데믹으로 인한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감이 과도하게 퍼지고, 혜성처럼 등장한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생산성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도 독성 생산성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래 일할수록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다. 업무 협업용 소프트웨어 회사인 슬랙의 조사 결과 근무 시간이 아닌 때에도 일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직원의 생산성이 그렇지 않은 직원보다 오히려 20% 낮았다. 반면 이들의 업무 관련 스트레스는 2.1배 높고, 전반적인 근무 환경에 대한 만족도는 1.7배 낮았으며 번아웃은 2배 더 심했다. 할 일은 너무 많은데 시간이 부족한, 일명 ‘시간 빈곤(time poverty)’ 현상을 연구하는 로라 기어지 영국 런던정경대(LSE) 교수에 따르면 표준 근무시간을 넘겨 주말과 공휴일에도 근무하는 직원들은 내재적 동기, 즉 일이 즐거워서 더 열심히 하고자 하는 동기가 감소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대부분 직장에서 휴식은 나쁜 말처럼 여겨지고 야근과 주말 근무를 자청하거나 휴가를 반납하는 이들이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휴식이 스트레스 감소, 정신 건강 개선, 업무 복귀 후 생산성 향상 등에 기여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직장인들은 항상 휴식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글로벌 온라인 여행 플랫폼인 익스피디아에 따르면 전 세계 근로자의 62%가 휴가나 휴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핀테크 기업 소벳에 따르면 특히 여성들이 휴가를 쓰는 데 남성들보다 19% 더 불편함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에 만연한 독성 생산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리더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오늘날 많은 리더들은 밤늦게 이메일을 보내고, 휴가를 포기하고, 과로를 미화하는 등 건강하지 못한 업무 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건강한 업무 환경을 조성하려면 리더 본인부터 건강한 업무 습관을 실천하는 롤모델이 돼야 한다. 예컨대, 휴가 일정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일명 ‘시끄러운 휴가(loud vacationing)’를 쓰는 관행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리더부터 휴가를 편하게 자주 얘기하기 시작하면 구성원들도 휴가를 자유롭게 써도 된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다.

또한 리더가 구성원의 일을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커머스 솔루션 기업 쇼피파이는 3인 이상이 참여하는 정기 회의를 모두 취소하고 수요일은 아예 회의가 없는 날로 지정했다. 또 50명 이상의 직원이 참여하는 회의는 목요일에 6시간 동안만 진행하도록 했다. 그 결과 회사 전체적으로 총 32만2000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독성 생산성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과 Z세대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반발이 커지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인 변화의 징조이다. 본인 스스로에게 자유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솔직하게 물어보자.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더 많은 시간을 회의에 쏟았어야 했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디지털 아티클 ‘독성 생산성을 해독할 때’를 요약한 것입니다.

제니퍼 모스 직장문화 연구자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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