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보수 진영 내 단일화 논의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가 19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중재로 한 자리에 만났다. 김 후보는 전날 벌어진 대선 후보 초청 TV 토론을 두고 "이 후보가 어제의 MVP(최우수선수)"라며 '러브콜'을 보냈지만, 이 후보는 단일화를 둘러싼 입장 변화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김·이 후보는 이날 서울시청에서 열린 '약자와 동행하는 서울' 토론회에 나란히 참석했다. 양쪽 후보와 모두 정치적인 인연이 있는 오 시장이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했다. 범보수 진영 단일화 구상인 이른바 '반(反)이재명 빅텐트'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전날 벌어진 대선 후보 초청 TV 토론회에서 두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경제 공약을 일제히 비판하는 등 '임시 동맹'을 맺은 모양새가 연출되면서다.
먼저 김 후보가 이 후보와의 정책적 공감대를 강조하면서 운을 뗐다. 두 사람의 정책적 지향점이 자유시장 경제철학에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단일화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후보는 "이 후보와 저는 생각이 같기 때문에 정책 방향도 함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미리 서로 짠 것도 아닌데 참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김 후보는 또 "어제 토론회를 두고, 저를 지지하시는 많은 분이 'MVP는 이준석이다, 김문수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며 "이 후보가 토론을 워낙 잘한다. 많이 배웠다"고 했다.
지난 2022년 국민의힘이 이 후보를 징계하고 당대표에서 몰아낸 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김 후보는 "이 후보는 제가 속한 국민의힘의 당대표를 지냈다"며 "저보다도 당의 정책이나 이념, 인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이어 "지금 우리 당이 잘못해서 이 후보가 밖에 나가서 고생하고 계시는데, 고생 끝에 대성공을 이루셨다"고 했다.
자리를 마련해준 오 시장도 추켜세웠다. 김 후보는 "제가 경기도지사를 지내던 시절부터 오 시장의 서울시 정책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오 시장의 역점 사업인 디딤돌소득과 서울런 정책을 자신의 대선 공약에 반영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김 후보는 "서울에서 지난 몇 년간 실행된 정책인 만큼 타당성 검증이 끝났다고 본다"며 "전국 단위로 확대 실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저희 셋 모두 서민 가정 출신 정치인"이라며 잠시 우호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오 시장의 디딤돌소득과 서울런에 대해 "계층이동을 위한 사다리를 복원하겠다는 의식이 발현된 정책"이라며 "강북구 삼양동의 오세훈, 노원구 상계동의 이준석, 경북 영천 김문수의 삶이 2000년대생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에게도 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만 김 후보와의 단일화 관련 제안에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 후보는 토론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단일화를 반대하는) 저의 정치적 입장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했다. 당대표 징계 사건을 두고는 "제가 큰 성과를 낸 직후에 '저 인간 때문에 표 떨어진다'고 내쫓더니만, 요즘 들어 다른 소리를 하는 것 보니 환절기인가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과의 논의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 후보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이 없고, 과학기술 기반 사회를 향한 비전에 공감대가 있는 안 의원의 말씀에는 어느 정도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했다. 다만 '이재명 후보를 겨냥한 공동전선을 구축하자'는 안 의원의 제안에는 "지금 단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 참석에 앞서 이 후보는 서울 광화문광장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완주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은 이준석과 이재명의 일대일 대결의 장이 되어야 한다"며 "충무공의 기개로 맨 앞에서 싸우겠다. 단 하나의 필승 카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시욱/하지은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