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속한 고령화로 한국이 기준금리를 더 이상 인하할 수 없는 ‘실효하한 금리’(ELB)에 이를 가능성이 큽니다. 양적완화(QE), 원화 절하 등을 통한 대응이 어려운 만큼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통화정책의 보조 도구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는 18일 미국 워싱턴DC 국제통화기금(IMF) 본부에서 ‘한국의 통합정책체계(IPF) 여정: 실효하한금리 시대의 도전과 대응’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총재는 한국이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통합정책체계’를 시행한 경험을 소개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외채관리와 외환보유액 축적 등을 통한 외환시장 개입이 필요하다는 점을 학습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엔 외국계 은행의 파생상품 거래에 따른 환율 변동 위험 관리를 시작했다.
IMF는 애초 이런 외환 개입을 반대했지만 당시 IMF 아시아태평양국장으로 일하던 이 총재 등의 설득으로 2014년 정책 체계를 받아들였다.
이 총재는 양적완화 등 선진국 중앙은행이 쓰고 있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비기축통화국이 활용한 사례도 소개했다.
이 총재는 한국이 초저출산과 빠른 고령화로 금리가 실효하한에 도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위기가 아닌 상황에서 신흥국이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 구조가 취약하고 외화부채 규모가 크며 기대인플레이션이 안착되지 않은 신흥국이 대규모 확장적 재정·통화 정책을 시행하면 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경우 외부의 투기적 공격으로 통화 가치가 급격하게 하락할 위험도 경고했다. 양적완화에 대해선 “고유동성 자산을 시장에서 흡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은행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유동성 제약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대안으로 중앙은행의 대출지원제도를 제안했다. 중앙은행이 민간 금융회사에 저금리로 직접 자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한은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제도를 운용한다. 이 총재는 “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금리를 동결하면서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활용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선별적으로 금리를 낮춰줬다”며 “부작용이 우려되는 비전통적 통화정책보다 대출지원제도와 같은 준재정적 수단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13년간 IMF 총재로 재임했던 미셸 캉드쉬 전 총재의 이름을 딴 ‘캉드쉬 강연’으로 열렸다. IMF가 회원국 중앙은행과 협력을 강화하고 통화정책 및 글로벌 경제·금융 이슈를 깊이 있게 논의하기 위해 주최하는 연례행사다. 이 총재는 2022년 취임한 뒤 저명한 중앙은행 총재가 할 수 있는 강연을 도맡아 하고 있다. 미국 캔자스시티연방은행이 주최하는 ‘잭슨홀 심포지엄’과 유럽중앙은행(ECB)의 신트라포럼에서도 강연했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