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신진우] “관세 몰라도 車가격은 걱정”… 車 관세에 떨고 있는 미국인들

4 days ago 6

車는 미국인들에게 삶의 일부…“車 가격 오르면 트럼프 지지 안 해”
관세 우려 車 판매 매출 급증…“반짝 효과 사라지면 매출 줄 거란 우려”
미국서 생산 車 가격 인상도 불가피…향후 美 소비자 불만 거세질 듯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하이랜즈랜치의 야외 자동차 매장에 올해 출시된 외국산 신차들이 늘어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 소비자들이 차값 인상을 우려하고 있다. 하이랜즈랜치=AP 뉴시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하이랜즈랜치의 야외 자동차 매장에 올해 출시된 외국산 신차들이 늘어서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모든 수입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자 미국 소비자들이 차값 인상을 우려하고 있다. 하이랜즈랜치=AP 뉴시스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신진우 워싱턴 특파원
광활한 국토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자동차는 필수품이다. 교외는 물론 도심에서도 자동차 없이 움직이는 건 쉽지 않다. 직장과 학교는 물론 장을 보기 위해 마트에 갈 때도 필요한 자동차는 미국인들에겐 사실상 삶의 일부다. 트럭을 운전하는 제이슨 밀러 씨(43)는 “많은 미국인들이 돈을 벌면 차부터 바꾼다. 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자신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물건”이라고 했다.

그런 자동차의 가격이 갑자기 오른다면 당연히 미국인들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는 자동차 값이 크게 오르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자동차에 부과한 25%의 관세 때문이다. 관세 부담이 커지면 자동차 제조사들은 그로 인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차량 가격을 올리게 된다. 고가의 생활필수품인 자동차 가격이 인상되면 당연히 그 부담은 소비자들이 고스란히 안게 된다.

●“車 매장 걸려오는 전화 중 절반이 관세 문의”

최근 미국 내 자동차 판매 매장에는 관세 관련 문의를 하는 고객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 도요타 매장의 세일즈 매니저인 마커스 알렉산더 씨는 ‘자동차 구매 문의를 하는 사람들 중 관세를 언급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모든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직은 관세가 우리 매장 차량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고 있다”면서도 “확실한 건 오늘이 가장 저렴한 날”이라고 말했다.

인근의 다른 자동차 업체 매장에서 근무하는 한 딜러도 “요즘 매장으로 걸려오는 전화 두 통 중 한 통은 관세 문의”라면서 “일단 최대한 솔직하게 답을 해주려고 하는데, 사실 어떻게 될지 잘 몰라서 답답한 건 나도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또 계획보다 구매 시점을 앞당겨 차를 샀다고 밝힌 소비자가 이 매장에서만 최근 일주일 새 수십 명이 넘었다고도 했다. 지금이 ‘마지막 찬스’란 심리로 사실상 ‘공포 구매’에 나섰다는 얘기다. 당장 매출이 올라간 건 좋다던 그는 불안한 심정도 감추지 않았다. “이 ‘반짝 효과(short-lived effect)’가 걷히면 오히려 매상이 확 줄어들 거란 공포감은 분명히 있어요.”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일본 도요타 매장. 알렉산드리아=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일본 도요타 매장. 알렉산드리아=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지난달 미국 포드자동차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 늘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 등이 보도했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의 경우 올해 1분기(1∼3월) 판매량이 지난해 동기보다 17% 증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지난달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각각 13% 늘었다. 같은 시점 기준 일본 업체 도요타와 혼다 역시 각각 7.7%, 13% 증가했다. 현대차 미국법인의 랜디 파커 최고경영자(CEO)는 이 같은 판매량 증가에 대해 “관세를 피하려고 많은 사람이 몰려든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관세 영향으로 자동차 가격이 더 인상되기 전에 구매를 서둘렀다는 것이다. 자동차 업체들은 관세로 인해 부쩍 커진 불확실성에 불안해하고 있다. 현대차 미국 지사의 한 관계자는 “미래 수요를 지금 당겨 쓰는 것인 만큼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또 “관세로 인해 가격 불안정성도 커졌다”고 우려했다.

●美 스텔란티스, 관세 여파로 캐나다·멕시코 공장 일시 중단

자동차 가격이 얼마나 뛸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다만 소비자들이 충분히 체감할 만한 수준으로 오를 거란 측면에선 대부분의 관측이 일치한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JD 파워는 이번 관세가 지속되면 신차 가격은 12%가량 인상돼 현재 750달러의 평균 할부금이 840달러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블룸버그통신은 업계 전문가들을 인용해 자동차 제조사들이 관세에 따른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일부 모델의 가격을 1만 달러 이상 올려야 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관세 폭탄’은 신차는 물론 중고차 가격까지 동반 상승시킬 전망이다. 특히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의 가격 인상도 불가피해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에서 생산된 차의 경우 관세가 붙지 않아 ‘안전지대’에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엔진과 변속기 등 주요 자동차 부품들은 해외에서 들여오는 만큼, 미국 안에서 생산된 차 역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앤더슨 이코노믹 그룹은 “캐나다와 멕시코산 부품에 붙는 관세 등으로 인해 미국에서 판매될 차 가격이 대당 4000∼1만 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불확실성과 혼란이 증폭되는 상황 속에서 자동차 업체들은 힘겨운 대응에 나서고 있다. 최근 현대차 미국판매법인은 현지 딜러사들에 차량 가격 변동 가능성을 고지했다.

미국 자동차 업체 스텔란티스는 관세에 따른 비용 절감 및 생산 조정을 위해 캐나다와 멕시코 공장 생산을 일시 중단한다. 또 미국 중서부 지역 5개 부품 공장에선 직원 약 900명을 일시 해고하기로 했다.

●“車 가격 폭등 시 美 사회 전반서 강력한 저항 일어날 수도”

트럼프 대통령은 2일 ‘글로벌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날을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고 불렀다. 또 “미국의 경제적 독립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다음 날엔 “수술이 끝났고 환자는 살았다. 환자는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커지고, 좋아지고, 회복력도 있을 것”이라며 미국 제조업 부활을 자신했다.

트럼프 정부의 요직에 앉은 인사들도 관세가 가져올 장밋빛 미래만 줄곧 강조하는 모양새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최근 CNN 인터뷰에서 2012년 이전에 미국에 없던 한국산 자동차가 한국의 ‘비관세 장벽’ 덕분에 미국에 대거 들어올 수 있게 됐다는 취지로 비난했다. 그러면서 “우리(미국)는 이 세계의 스모 선수”라며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앞으로 미국을 자동차 산업 등에서 다시 강국으로 만들어 줄 것이고, 미국민들은 그에 만족하게 될 거라 주장했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미국 안팎 전문가들과 주요 매체들의 시선은 무겁기만 하다. 이미 제조업 기반이 많이 무너진 미국 내 인프라 상황 등을 고려하면 지금 와서 제조업에 급하게 호흡기를 달아준들 부활은 쉽지 않을 거란 지적이다. 오히려 상대국에 날린 대규모 ‘관세 폭탄’이 미국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와 ‘물가 폭탄’이 돼 터질 거란 우려만 증폭되고 있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자동차처럼 미국인들의 심리적 정체성과 관련된 품목들의 가격이 뛰면 미국 사회 전반에서 강력한 저항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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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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