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부촌 '투톱'으로 꼽히는 반포와 압구정 사이 완충지대처럼 자리 잡은 조용한 주거지인 잠원동이 북적이고 있습니다. 3300여 가구 규모 '메이플자이'가 입주 준비에 나선 영향입니다.
이제는 잠원동 길거리 어디서 보더라도 색이 바랜 노후 아파트 너머로 신축 아파트가 반짝이는 모습이 보이게 됐습니다. 동네 전반에 걸친 노후 아파트와 신축 아파트의 대조는 묘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한신아파트' 가득하던 잠원동…신축 아파트로 탈바꿈 한창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내달 말 입주를 앞둔 메이플자이는 지난 17~19일 사전점검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메이플자이는 '신반포8~11·17차', '녹원한신', '베니하우스' 등 3개 단지를 통합 재건축한 곳입니다. 대지면적만 11만5700㎡(3만5000평)에 달하는 덕에 남쪽으로는 지하철 7호선 반포역을, 북쪽으로는 지하철 3호선 잠원역을 끼고 있습니다. 지하철 3·7·9호선 고속터미널역도 도보 10분 거리에 불과합니다.
40년 된 아름드리나무 사이사이로 1970년대 조성된 '신반포 아파트'가 자리 잡은 잠원동의 고즈넉한 분위기도 메이플자이가 들어서며 빠르게 변했습니다. 이전까지 잠원동에 들어선 신축 아파트는 반포동이나 압구정동에 가깝게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메이플자이는 잠원동 가운데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잠원동을 채우고 있던 신반포 한신아파트도 점차 찾아보기 어렵게 될 전망입니다. 한신공영은 1977년대 '신반포1차'를 시작으로 '신반포28차'까지 잠원동과 반포동에 28개 아파트 단지를 공급했습니다. 이 가운데 1, 3, 15, 23차만 반포동이고 나머지는 모두 잠원동에 있습니다. 한신공영의 본사도 잠원동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잠원동은 '신반포', '한신아파트'로 대표되는 지역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상당수의 한신아파트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잠원동에 있던 24개 신반포 한신아파트 가운데 절반가량은 이미 다른 아파트로 재건축이 끝났고, 나머지 단지들도 재건축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입주를 앞둔 메이플자이를 비롯해 '아크로리버뷰', '반포센트럴자이', '래미안신반포리오센트', '신반포르엘' 등이 들어섰습니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단지들도 쟁쟁한 하이엔드 명판을 들고나왔습니다. 신반포2차는 '디에이치르블랑', 신반포4차는 '래미안해리븐반포', 신반포7차는 '아크로리버마크'로 재건축이 예정됐습니다. 이렇다 보니 노후 아파트 가격도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상황입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신반포2차는 이달 전용면적 68㎡가 35억원(8층)에 팔려 신고가를 기록했습니다. 해당 면적이 22평으로 분류되는 점을 감안하면 평(3.3㎡)당 매매가가 약 1억6000만원에 달하는 셈입니다. 재건축 이후에는 이웃한 래미안원베일리(신반포1차)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치가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구축은 재건축 기대감…신축은 환경 개선 기대감에 '신고가'
주변 노후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프라가 개선되자 앞서 재건축을 마친 단지들도 가격이 뛰고 있습니다. '래미안신반포팰리스' 전용 104㎡는 지난달 43억9000만원(19층)에 거래됐습니다. 2월 40억5000만원(10층), 3월 42억5000만원(15층) 등 상승을 거듭하면서 신고가를 매달 갈아치운 것입니다.
이어 '신반포자이'가 지난달 전용 114㎡가 49억원(18층)에 신고가를 썼고 '래미안신반포리오센트' 전용 59㎡도 31억원(21층)에 팔리면서 이전 최고가 30억9000만원을 일주일 만에 끌어내렸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대대적인 재건축과 맞물려 잠원동이 한강 변 랜드마크 주거지로 거듭날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합니다. 바로 맞은편에 있던 반포동 한신아파트(신반포1·3·15·23차)가 재건축된 것이 '래미안원베일리'와 '아크로리버파크'이기 때문입니다.
김기원 리치고 대표는 "잠원동에서 길 건너 있는 아파트가 래미안원베일리, 아크로리버파크지 않으냐"며 "현재 진행 중인 동시다발적 재건축을 통해 주거 여건이 한층 개선되면 래미안원베일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잠원동 집주인들도 집을 매물로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인근 개업중개사는 "토지거래허가제 이후 거래가 줄었지만, 그렇다고 신반포 집값이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느냐"며 "이곳 집을 팔고 갈만한 상급지가 없다고 생각하는 집주인이 많다. 다들 들어오고 싶어만 하고 나가진 않으니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고 귀띔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