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기 기름값 30%나 줄였다”… 볼보 최고기술자 지낸 30대의 ‘혁신’[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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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던 중장비 에너지 회수 장치 만든 레디로버스트머신
공기 중에 버려지던 유압 모아 필요할 때 쓰는 세계 유일 기술
정밀한 중장비 조작 가능케 하는 전자유압제어 솔루션이 핵심
탄소-오염물질 배출도 함께 줄어… “월 구독 형태로도 이용 가능”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이사가 자사 중장비 에너지 회수 장치가 설치된 30t급 굴착기에 올라서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정 대표 뒤쪽으로 보이는 굴착기의 붐(Boom)이 아래로 움직일 때 버려지던 유압을 축압기에 저장했다가 다시 사용한다. 장치는 간편하게 탈부착이 가능하다. 김해=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이사가 자사 중장비 에너지 회수 장치가 설치된 30t급 굴착기에 올라서 작동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정 대표 뒤쪽으로 보이는 굴착기의 붐(Boom)이 아래로 움직일 때 버려지던 유압을 축압기에 저장했다가 다시 사용한다. 장치는 간편하게 탈부착이 가능하다. 김해=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정태랑 레디로버스트머신 대표이사(39)는 자신을 “중장비의 움직임에서 에너지가 어디서 새고, 어디서 낭비되는지 뻔히 보여서 괴로웠던 사람”이라고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던 지난달 20일 경남 김해에 있는 레디로버스트머신 공장을 찾았다. 그는 “유압 시스템을 최적화하면 에너지 낭비를 줄이는 건 물론이고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 매달릴 이유는 충분했다”고 했다.

그는 볼보그룹코리아에서 10년 넘게 굴착기와 중장비를 연구했다. 산업 현장의 중장비들이 붐(boom·장비 본체와 작업 수행 부위를 연결하는 지지대 부분)을 내릴 때마다 어마어마한 유압 에너지를 그냥 버리고 있다는 사실에 늘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붐이 내려갈 때 실린더에 가득 찬 압력이 밸브를 통해 유압 탱크로 빠져나가는데, 이때 압력이 풀리면서 버려지는 에너지는 연간 수천만 원, 탄소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자동차 수십 대 분에 해당한다. 이걸 바로잡고 싶었다”고 했다.

● 볼보에서 10년, 그리고 ‘세상에 있어야 할 기술’

정 대표는 부산대에서 로봇융합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볼보그룹에 입사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그룹 내에서 기술상과 특허상을 받았고, 볼보그룹이 전 세계에서 자동차 건설기계등을 통틀어 60명만 뽑아 유지하는 ‘볼보그룹 테크놀러지 스페셜리스트(최고기술자)’에도 들었다. 10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그의 연구는 붐이 내려갈 때 붐 실린더에서 빠져나오는 유압을 별도의 장치에 저장했다가 다시 활용하는 에너지 회수 시스템으로 구현됐다. 그가 개발한 기술의 일부는 에너지를 아껴주는 볼보의 하이브리드 굴착기에도 적용됐다.

그는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기술자로서 인정도 받았지만, 내가 진짜 잘하는 것으로 세상에 없는 걸 내놓고 싶었다”고 했다. 창업 준비 과정에서 투자사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이사와 1시간 미팅 기회를 가졌는데, ‘일에 대한 열정을 회사에서 다 태울 수 없는 사람은 창업해야 한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고 했다. 시드머니로 5000만 원을 투자받았다. 가족과 상의도 마치고, 2021년 회사를 설립한 뒤 이듬해 4월 경남 김해의 한 공장지대에 컨테이너 하나를 놓고 사업을 시작했다.

● 있는 듯 없는 듯한 자연스러운 조작감 레디로버스트머신이 가진 기술의 핵심은 정교한 전자유압제어 솔루션이다. 센서와 전자밸브를 통해 밸브를 미세하게 여닫으며, 운전자가 기존과 똑같이 자연스럽게 작업할 수 있도록 구현했다. 이런 섬세한 제어는 직접 장비를 몰고 땅을 파며, 수년간 현장에서 미세 조정한 결과다. 기존의 시도들은 이런 자연스런 조작감을 구현하지 못했다.

정 대표는 이어 “운전자가 아무런 차이를 느끼지 못하면서도, 시스템은 알아서 에너지를 회수하고 효율을 높인다. 이 소프트웨어는 붐의 움직임, 압력, 위치, 엔진 부하 등 수많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밸브의 개폐 정도와 타이밍을 최적화한다. 그 결과, 운전자는 기존과 똑같은 감각으로 장비를 조작하면서도 연료는 절약되고, 작업 효율은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유압 실린더에서 빠져나가는 압력을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는 학계에서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정 대표는 “실제로 고객이 쓰기 쉽게 구현한 건 우리 소프트웨어 컨트롤이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정 대표는 자신의 전자유압제어 기술과 관련한 논문을 건설 자동화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술지(Journal of Automation in Construction)에 제1저자로 논문을 싣기도 했다. 작년 5월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주는 ‘대한민국 엔지니어상’도 받았다.

● 굴착기가 ‘에코 모드’와 ‘파워 모드’로 변신

레디로버스트머신의 에너지 회수 장치가 굴착기에 부착된 모습. 레디엑스(READiX) 글자가 보이는 부분이 회수 장치다. 레디로버스트머신 제공

레디로버스트머신의 에너지 회수 장치가 굴착기에 부착된 모습. 레디엑스(READiX) 글자가 보이는 부분이 회수 장치다. 레디로버스트머신 제공
레디로버스트머신의 주력 제품 레디엑스(READiX)는 굴착기의 붐이 내려갈 때 버려지는 유압·위치에너지를 축압기에 저장했다가, 엔진 보조 동력이나 붐을 들어 올릴 때 재사용한다. 정 대표는 “축압기에는 질소 가스가 차 있고, 유압 오일이 들어가 압축되면서 에너지가 저장된다. 이후 붐을 들어 올릴 때 이 에너지를 방출해 엔진을 보조하거나, 붐을 빠르게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스템은 ‘에코(Eco) 모드’와 ‘파워(Power) 모드’로 구분된다. 에코 모드는 저장된 에너지로 엔진 부하를 줄여 연료를 절감하고, 파워 모드는 저장된 에너지를 붐을 들어 올릴 때 사용해 작업 시간을 줄여 준다.

정 대표는 “30톤급 굴착기 기준, 하루 200∼250리터의 경유를 사용하는 장비에서 월 200만∼300만 원의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이는 연간으로 수천만원의 비용을 아껴주는 것이고, 탄소배출량도 30% 가까이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했다.

간편한 구조 덕분에 다양한 브랜드 및 연식의 중장비에 부착해 사용할 수 있다. 설치에 2∼3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기술의 효과는 현장에서 입증되고 있다. 부산의 건설폐기물 처리업체 두승, 현대제철의 슬러지 덤핑장, 일본 오사카의 고철업체 등에서 연비가 20∼36% 개선됐다. 특히 현대제철에서는 ‘한 대의 장비가 1년 만에 시스템 설치비를 모두 회수할 정도로 연료비 절감 효과가 컸다’는 평가가 나왔다.

레디엑스는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 기반으로, 모바일 앱에서 모드 변경, 에너지 절감량 확인, 장비 오류 진단까지 가능하다. 이 데이터는 장비의 유지보수와 수명 연장, 예방 정비 등 지능형 서비스로 확장되는 데 쓰인다. 전기 및 수소 굴착기 전용 에너지 회수 시스템(레디 이엑스)도 있다. 수천만 원이 드는 일시불 구매뿐만 아니라 월 구독으로도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고 있다.

● “다양한 유압식 중장비로 적용 확산”

레디로버스트머신의 기술은 굴착기뿐 아니라 트랙터 등 농기계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정 대표는 “트랙터에 쓰이는 유압장치에도 적용 가능한지 최근 국내 트랙터 회사와 협업해 개념실증(PoC)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농기계는 완제품 형태로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부품으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했다.

또 하나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는 전자유압제어 기술 자체를 유압 관련 제조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소프트웨어로 판매하는 것이다. 정 대표는 “축압기를 만드는 회사에 소프트웨어만 납품하는 계약도 진행 중이다.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비즈니스로도 확장하고 있다”고 했다.

레디로버스트머신은 올해 5월 일본 법인을 설립했다. 유럽과 동남아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중소벤처기업부 글로벌 팁스에 선정돼 해외 진출에 도움을 받고 있다.

정 대표는 “기술 개발만 하다가 사업을 하니 힘든 일이 많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기술은 세상에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모든 중장비에 우리 기술을 적용하고 싶다”고 했다.

김해=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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