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CEO 알렉스 카프가 말하는 팔란티어 그리고 한국[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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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천재·이단아·악당·철학자·몽상가.
이토록 멋진 수식어를 가진 최고경영자라니. 알렉스 카프(Alex Karp) CEO는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 팔란티어를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팔란티어가 현재 기술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남다른 발상, 독특한 사명감, 논쟁적인 원칙-을 인간화한 게 바로 카프 CEO가 아닐까 싶은데요.

환상적인 주가수익률에 열광하는 팬들의 환호와 빅브라더식 발상에 분노하는 안티들의 비난을 모두 받는 인물.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겸 CEO를 만났습니다. 인터뷰 내용과 함께 알렉스 카프라는 인물을 소개합니다. (인터뷰 현장에서 그가 발언한 내용은 따옴표 안 굵은 글씨로 표시했습니다.)

10월 13일 서울 성수동의 팔란티어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만난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인터뷰 초반 자신이 ‘김치찌개 러버’임을 밝히는 중이다. 홍진환 기자

10월 13일 서울 성수동의 팔란티어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만난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CEO. 인터뷰 초반 자신이 ‘김치찌개 러버’임을 밝히는 중이다. 홍진환 기자
*이 기사는 10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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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각김치를 외친 철학박사 CEO

내성적이고 ADHD가 있고 극단적으로 솔직하다. 인터뷰 맡은 기자를 긴장케 하는 카프에 대한 인물평이었습니다. 주어진 시간은 단 10분. 서울 성수동의 떠들썩한 팝업스토어 행사장 한켠에서 과연 인터뷰가 제대로 될까, 걱정했는데요.그는 초반부터 이런 말로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이건 몰랐을 텐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다 한국인이었고, 첫 여자친구도 한국인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거예요. 그리고 총각김치!”

사교성 없기로 소문난 곱슬머리의 아프리카계 유대인(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CEO가 총각김치를 외칠 줄이야. 그는 이렇게 덧붙였죠. “한국인의 특징은 높은 수준의 역량과 매우 세련된 미적 감각을 가졌다는 점이죠. 그리고 모두가 이걸 할 줄 알았어요.”

고교 시절 한국인 친구들에게 배웠다며 펜 돌리기를 보여주는 알렉스 카프 CEO. “한국 친구들은 모두 이걸 할 줄 알았어요!” 홍진환 기자

고교 시절 한국인 친구들에게 배웠다며 펜 돌리기를 보여주는 알렉스 카프 CEO. “한국 친구들은 모두 이걸 할 줄 알았어요!” 홍진환 기자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펜 돌리기를 해 보입니다. “제가 한국인들과 같이 학교에 다녔다는 걸 이걸 보면 알 수 있죠.”

미술작가인 어머니 얘기도 꺼냅니다. “저희 어머니는 한국 미술품을 수집하시죠. 예전엔 1년에 석 달은 한국에서 지내셨어요.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미술을 연구하기 위해서요.”

카프는 필라델피아의 마그넷 스쿨(시험 보고 들어가는 공립학교)인 센트럴고등학교를 1985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하버드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대학교에서 사회 이론 박사 학위를 취득했죠. 그가 과거 인터뷰에서 설명한 대로 “기술 학위도 없고, 정부·산업계와 아무 문화적 연관성도 없고, 부모님은 히피족”인, 한마디로 실리콘밸리와 워싱턴 모두에서 아웃사이더나 다름없는 배경인데요.조부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투자업체를 운영 중이었던 카프. 2003년 36살이던 그를 팔란티어 창업에 끌어들인 건 스탠퍼드대 로스쿨 시절 절친인 피터 틸(Peter Thiel)이었습니다. 이른바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로 불리는 전설적인 실리콘밸리 투자자이죠.

2001년 9·11 테러의 충격을 겪은 뒤 피터 틸이 생각한 건 이거였습니다. 페이팔용으로 설계된 사기 탐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테러 공격을 차단하는 기술 기업을 만들자. 그렇게 모은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이 카프였고, 틸은 그에게 CEO직을 제안했죠.

왜? 틸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알렉스는 CIA에 보낼 세일즈맨 같진 않아 보이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팔 때 역설은 당신이 그 사람과 똑같아야 그가 믿을 수 있단 거예요. 하지만 동시에 그와 매우 달라야만 당신이 자신에겐 없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죠.”

“뛰어난 기술 기업은 예술가 공동체”

소설 ‘반지의 제왕’ 속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수정 구슬 ‘팔란티르’에서 이름을 따온 팔란티어. 이름대로 정부기관이나 기업이 가진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해 그 연관성·패턴·추세를 다 꿰뚫어 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일을 하는데요.

사업모델은 좀 특이합니다. 고액 연봉을 받는 팔란티어 엔지니어가 고객사 현장에 직접 투입돼, 고객사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문제해결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을 도맡아 하죠. 사실상 엔지니어가 ‘스타트업 CTO’가 된 것처럼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입니다. ‘전방 배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Forward Deployed Software Engineers)’라고 불리는 이들 한명 한명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 기업인데요.

팔란티어 팝업스토어에 전시돼 있던 티셔츠. 카프 CEO의 얼굴 이미지가 큼지막하게 들어갔다. 홍진환 기자

팔란티어 팝업스토어에 전시돼 있던 티셔츠. 카프 CEO의 얼굴 이미지가 큼지막하게 들어갔다. 홍진환 기자
그래서 카프가 강조하는 게 예술가 정신입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 ‘기술 공화국(The Technological Republic)’에서 이렇게 말해요. “소프트웨어와 기술 개발은 이론이 아닌 관찰에 기반한 예술이자 과학이다. (…) 가장 생산적인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예술가 공동체와도 같아서 기질적으로 까다롭고 재능 넘치는 영혼들로 가득 차 있다.”실제 팔란티어는 신입 직원들에게 즉흥 연극에 관한 책을 나눠준다죠. 무대 위에서 즉흥 연기를 펼치는 배우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는 서로 통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위계질서? 권위? 계층? 예술가와 맞지 않는 그런 것들은 팔란티어에 필요 없습니다. 대신 서로 부딪히고, 들이받고, 논쟁하는 조직문화를 추구하죠.

그리고 이 ‘기술 개발=예술’이라는 사고방식은 인터뷰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그에게 이렇게 물었죠.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엔 약합니다. 한국이 실리콘밸리처럼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뭐라고 보나요?’ 그러자 이런 답이 돌아옵니다.

“실리콘밸리처럼 되려 하기보다는, 한국만의 독특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더 낫습니다. 아마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하이브리드 형태가 되겠죠. 어설프게 2등이 되기보다는 독창적인 것이 더 낫습니다. 만약 저라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파트너십에 집중하고 그것을 어떻게 해낼지 배우려 할 겁니다.”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모자를 벗을까 쓸까를 물어보는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로고가 박힌 검은색 모자는 팔란티어가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한 굿즈였다. 판매가는 8만7000원. 홍진환 기자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모자를 벗을까 쓸까를 물어보는 알렉스 카프. 팔란티어 로고가 박힌 검은색 모자는 팔란티어가 팝업스토어에서 판매한 굿즈였다. 판매가는 8만7000원. 홍진환 기자
-그럼 한국의 미래가 밝다고 보시나요?

“그럼요. 음악 그룹을 만드는 능력과 기술을 다루는 능력 사이엔 엄청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기술 회사를 만드는 것과 음악 밴드를 만드는 건 사실 그렇게 다르지 않아요. 한국은 비영어권 국가 중 유일하게 음악·예술을 상당한 수준으로 수출하는 나라예요. 다른 어떤 나라도 그렇게 하지 못해요. 그리고 한국은 생존의 역사가 있죠. 무(nothing)에서 시작했고, 억압받았어요. 아시아에서 유일한 기독교 국가이기도 하고요. 제 생각엔 사고방식 전체, 즉 도덕성의 구조 같은 것이 (미국과) 비슷해요.”

갑자기 K팝으로 튄 그의 대답이 본인 저서 속 내용과 일맥상통해서 흥미로웠는데요. 혹시 K팝도 듣느냐는 질문엔 이렇게 답합니다.

“안타깝게도 제 취향은 아니지만, 잘 팔린다는 건 알죠. 그건 뭐랄까, 카리스마가 있어요. 카리스마 있는 사업을 구축하는 건 사실상 미국만이 해온 일입니다. 제가 영어권 밖에서 그걸 본 유일한 곳이 바로 한국이죠. 제가 보기에 여러분은 그것이 얼마나 독특한지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아요.”

“팔란티어의 경쟁상대는 …”

카프 CEO는 “팔란티어는 매출이 스타트업처럼 성장하고 마진은 높다”고 강조합니다. “미국에서 천문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면서, 이른바 ‘AI 버블론’에 대한 질문엔 “우리 제품 수요는 매우 강력해서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죠.

그럴 만도 한 게 지난 2분기 팔란티어 매출은 사상 처음 10억 달러를 돌파하며(전년 동기 대비 48% 증가) 월가를 놀라게 했습니다. 설립 뒤 20년간 줄곧 적자를 기록했던 과거를 완전히 지운 채, 이제 8분기 연속 흑자 행진이죠. 매출총이익률(매출 원가를 뺀 이익의 비율)은 무려 80%. 고객 유치 초기엔 플랫폼 개발에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일단 한번 구축해 두면 이후엔 수익성이 크게 높아지는 사업구조 덕분입니다.

그게 바로 지난 1년 324%, 2년 동안 1007%라는 경이적인 주가 수익률의 비결이기도 하죠. 팔란티어는 서학개미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데요. 정부와 기업을 고객으로 둔 B2G, B2B 기업 팔란티어가 14~15일 이틀에 걸쳐 사상 처음 한국에 팝업스토어를 연 이유였죠. 카프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은 우리의 가장 큰 개인 투자자 그룹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개인 투자자들을 사랑해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분들이죠.”

미국에선 팔란티어가 ICE의 불법 이민자 적발,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적잖은 비판을 받는 카프 CEO. 그는 자신을 “진보적이지만 깨어있진 않다”고 설명한다.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국경 단속이나 미군에 대한 지원은 자유세계 수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진환 기자

미국에선 팔란티어가 ICE의 불법 이민자 적발, 이스라엘의 전쟁 수행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적잖은 비판을 받는 카프 CEO. 그는 자신을 “진보적이지만 깨어있진 않다”고 설명한다. 민주당 지지자이지만, 국경 단속이나 미군에 대한 지원은 자유세계 수호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진환 기자
팔란티어는 2011년 미국 네이비실 대원들에게 사살당한 오사마 빈 라덴을 추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단 점이 알려지며 명성이 높아졌죠. 이제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는 테러범 추적과 마약밀수범 적발 같은 정부 업무뿐 아니라, 투자은행의 사기거래와 자금세탁 적발, 제약사의 신약 개발 데이터 분석, 페라리의 더 빠른 포뮬러1 자동차 개발에도 쓰입니다.

팔란티어 플랫폼을 도입한 기업 중엔 극적인 생산성 향상을 경험한 사례가 많죠. 최근 햄버거 체인점 웬디스의 공급망 담당자는 팔란티어의 AI 플랫폼(AIP) 도입으로 15명이 하루 동안 걸렸던 작업을 5분 만에 처리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는데요. 일단 작은 프로젝트에서 효과를 체험한 기업은 팔란티어 기술 적용 범위를 점점 넓혀가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당연히 들지 않나요.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로 대체될 그 15명의 일자리는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인간은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걸까요.

카프 CEO는 이런 비관론을 거부합니다.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없애는 게 아니라, AI를 통해 ‘진짜 노동’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질 거란 논리인데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한국처럼 고도로 훈련된 전문 기술 인력이 있는 곳에서는 그런 문제(AI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심각하지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배를 용접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요. 그런 사람은 해고당하지 않아요. 솔직히 미국에는 그런 인력을 위한 일자리가 무궁무진하고,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해 팔란티어는 ‘업무 지능: AI 낙관 프로젝트’라는 캠페인을 최근 시작했는데요. 그 선언문엔 이런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쓸모없거나 무의미해지는 AI 미래를 강요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르게 봅니다. AI는 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을 변화시킵니다. AI는 사람들의 삶의 목적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켜 인간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서학개미의 3대 최애 종목(테슬라, 엔비디아 다음) 팔란티어. 무려 600배에 달하는 PER에도 그칠 줄 모르는 팔란티어 사랑을 보며, 자연스레 떠오르는 의문은 이거죠. 이 미친 주가를 정당화하는 팔란티어의 독보적인 기술 경쟁력은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요. 다른 데이터 분석, AI 설루션 빅테크 기업들이 뒤쫓아와서 팔란티어 지위를 위협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투자자의 관점에서 물어봤습니다. 팔란티어의 경쟁자는 누구일까요?

“아시다시피, 우린 주로 우리 자신과 경쟁합니다. 가끔 어리석은 짓을 하면서요. 딱히 누구와 경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건 좀 더 아시아적인 관점, 즉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더 나아지게 만들려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게 도움 됩니다.”

명상과 태극권, 크로스컨트리 스키 마니아다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By.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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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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