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보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스타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다. 스타 부재와 흥행 정체로 위기감이 감돌던 한국 여자골프에 오랜만에 거물 신인이 등장했다. 지난 14일 경기 양주 레이크우드CC(파71)에서 막을 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메르세데스-벤츠 제40회 한국여자오픈(총상금 15억원)에서 생애 첫 메이저 왕관을 쓴 김민솔(20)의 이야기다. 그의 등장은 단순한 신인 선수의 메이저 우승을 넘어 한국 여자골프에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250m 장타 앞세운 '괴물 신인'의 등장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는 최근 몇 년간 매해 역대 최대 규모 흥행 기록을 새로 써왔다. 하지만 골프계 안팎에서는 '외화내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투어 외형은 커졌지만 대기업 스폰서는 줄었고 새로운 스타가 보이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왔다. 특히 팬들은 호쾌한 장타와 역동적인 플레이를 원했지만 국내 투어는 여전히 정교함과 안전함을 우선하는 '또박이' 플레이가 주류를 이뤘다. 단조로운 경기 스타일, 거물급 스타의 기근은 한국 여자골프가 쌓아올린 성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키웠다.
김민솔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가 여기 있다. 178cm의 독보적인 신체 조건에서 뿜어져 나오는 250m를 넘나드는 호쾌한 장타는 골프팬들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윤이나, 방신실, 황유민의 계보를 이어 장타를 앞세운 공격적인 플레이로 투어 전체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새로운 '메기'가 나타난 셈이다.
프로 데뷔 햇수로 3년 차를 맞은 그가 쌓아 올린 성과는 독보적이다. 지난해 드림투어(2부)에서 4승을 거둔 뒤 8월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에 초청 선수로 출전해 정규 투어 첫 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올해 6월 메르세데스-벤츠 한국여자오픈까지 단 10개월 만에 정규투어에서 4승을 쓸어 담았다.
◆'게임으로서의 골프'를 배우다
김민솔의 가장 큰 자산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성장형' 선수라는 점이다. 두산건설은 2023년 골프단을 출범하며 아마추어 간판이었던 김민솔을 선제적으로 영입했다. 오세욱 두산건설 골프단 단장은 "경남 사천에서 초등학교 선수로 뛰던 시절부터 그를 눈여겨봤다"고 회상했다. 뛰어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며 지역을 대표하는 유망주로 꼽혔기 때문이다.
의외로 아마추어 시절의 김민솔은 압도적인 다승왕 스타일은 아니었다. 1년에 1승씩 꾸준히 챙기는 모범생에 가까웠다. 대다수 유망주가 그렇듯 빈틈없이 완벽한 스윙으로 공을 똑바로 보내는 것이 골프의 전부라고 믿는 정석 플레이어였다. 오 단장이 김민솔을 영입한 후 던진 첫마디는 "이런 방식으로는 '괴물'이 될 수 없다"는 따끔한 지적이었다고 한다.
첫 번째 벽은 프로 전향 직후에 찾아왔다.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던 김민솔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2024년 8월 프로로 전향했다. 하지만 드림투어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냈고 그해 겨울 치러진 정규 투어 시드순위전에서 본선 83위에 그치며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다. 교과서 같은 스윙의 세계에 갇혀 있던 천재가 스코어를 만들어내는 '게임'으로서의 필드에서 고배를 마신 순간이다.
좌절은 길지 않았다. 2025년 드림투어에 다시 나선 김민솔은 개막 후 두 대회 연속 우승을 시작으로 12개 대회에서 4승을 쓸어 담으며 파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정규투어에서 진짜 반란에 성공했다. 그해 8월 추천 선수로 나선 KLPGA 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총상금 14억원)에서 나흘 내내 선두를 지키는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정규 투어 직행 티켓을 따냈다.
조금 돌아와 정규투어에 선 김민솔은 매서운 속도로 내달렸다. 첫 승 이후 50일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동부건설·한국토지신탁 챔피언십에서 당대 최고의 장타자 방신실과의 맞대결을 이겨내며 2승을 수확했다. '중고 신인'으로 맞이한 올 시즌 역시 세 번째 대회 만에 일찌감치 마수걸이 승리를 신고하더니 내셔널 타이틀인 한국여자오픈까지 접수했다. '깜짝 신데렐라'가 아닌 투어의 판도를 흔들 '괴물'임을 증명해낸 셈이다.
◆지독한 간절함과 포커페이스… "'제2의 박인비' 될 재목"
주변 전문가들이 말하는 김민솔의 특별함은 우직함, 그리고 그 안에 숨은 뜨거운 열정이다. 오 단장은 "골프를 정말 잘 치고 싶다는 간절함이 애절하게 느껴질 정도"라며 "피드백을 줄 때 모든 조언을 빨아들이겠다는 듯 귀를 쫑긋 세우고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에서 스타의 가능성을 본다"고 말했다. 이어 "무언가를 목표로 삼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우직하게 노력해 완벽히 제 것으로 만들고, 그 무기를 장착한 뒤 한단계 올라선 선수가 되곤 한다"고 덧붙였다.
소속사인 와우매니지먼트그룹의 이수정 상무 역시 그의 눈빛과 태도에 주목했다. 박인비, 유소연 등 한국 여자골프의 황금기를 이끈 전설들을 발굴한 이 상무는 "4년 전 항저우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김민솔을 처음 보고 '제2의 박인비를 찾았다'고 직감했다"고 귀띔했다. 탁월한 체격 조건은 물론이고 감정 기복 없이 자신의 에너지를 샷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는 진중함이 대선수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는 평가다. 그는 "시드순위전 탈락이라는 커다란 좌절을 겪고도 곧바로 다음 해 반전을 이뤄낸 경험은 앞으로 김민솔이 세계적 톱랭커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무살 골퍼, 더 높은 비상을 준비하다
이번 메르세데스-벤츠 한국여자오픈은 김민솔이 한 단계 더 진화했음을 증명한 무대였다. 그는 이 대회 직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선수들도 혼쭐이 나는 미국 LA 리비에라CC에서 열린 US여자오픈에 출전해 공동 54위, 다소 아쉬운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성적보다 중요한 경험을 얻었고 한단계 성장하는 밑거름으로 삼았다. 김민솔은 한국여자오픈 우승 후 인터뷰에서 "US여자오픈에서 핀을 직접 보지 않고 의도적으로 다른 방향을 겨냥해야 하는 홀이 많았다"며 "코스를 어떻게 요리할지 끊임없이 고민했던 매니지먼트 경험을 이번 대회에 그대로 적용했다"고 밝혔다.
실제 이번 한국여자오픈은 페어웨이 폭을 극단적으로 좁히고 그린을 단단하게 다져 까다로운 정교함을 요구했다. 출전 선수 대부분이 오버파로 무너진 지옥의 코스였다. 김민솔 역시 나흘 동안 페어웨이를 지킨 횟수가 56개 홀 중 15개 홀에 불과해 페어웨이 안착률은 26.79%에 그쳤다.
하지만 김민솔은 평균 238m에 달하는 압도적인 비거리에 70.83%의 높은 그린 적중률로 영리하게 스코어를 지켜냈다. 첫날 1오버파를 쳤지만 사흘 내내 언더파를 기록하며 최종 합계 4언더파로 우승컵을 안았다. 이번 대회에서 최종 언더파를 기록한 선수는 우승자 김민솔과 준우승자 양윤서(3언더파) 단 둘뿐이다. 오 단장은 "과거에는 똑바로 치는 것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같은 거리라도 굴릴지 띄울지 스스로 계산해 게임을 주도하고 있다"며 "이번 우승은 한단계 성장한 김민솔이 직접 거머쥔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민솔은 대회가 끝난 다음날인 15일로 만 스무 살이 됐다. 첫 메이저 우승컵을 자신의 생일 선물로 만들었던 셈이다. US여자오픈을 치르고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난도 높은 코스에서 대회에 나선 살인적인 일정에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아직 어두워지면 잠이 온다"며 해맑게 웃는 소녀. 하지만 필드에서는 베테랑들을 위협하는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1부 투어 진입 후 단 10개월, 이제 막 프로로서 날개를 펼치는 시점에 벌써 메이저 대회를 포함해 4승을 달성해냈다. 첫번째 메이저 우승의 영광을 일찌감치 자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발탁해준 후원사 두산건설에 돌리는 의젓함도 갖췄다.
우승 직후 김민솔은 "올 시즌 대상,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에 신인왕까지 투어 전관왕을 달성하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숨기지 않았다. 이미 그는 현재 대상 포인트와 상금 레이스 1위를 달리고 있으며 시즌 첫 다승자로 다승왕 경쟁에서도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그는 "오는 8월 열릴 두번째 메이저 대회도 꼭 우승하고 싶다"고 밝혔다. 자신이 정규 투어 직행 티켓을 따냈던 바로 그 무대,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이 KLPGA챔피언십으로 승급해 열리는 첫 대회인 만큼 그에게는 더욱 의미가 크다.
앳된 얼굴에 압도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김민솔에게는 '보스 베이비'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는 이제 두번의 껍질을 깨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김민솔이 앞으로 몇개의 껍질을 더 깨고 어디까지 날아오를지 한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위기감에 휩싸였던 한국 여자골프에 오랜만에 확실하게 '볼 맛' 나는 진짜 스타가 나타났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2 hours ago
1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국전 앞둔 남아공 주장 윌리엄스의 [WC 현장인터뷰]](https://pimg.mk.co.kr/news/cms/202606/20/news-p.v1.20260620.c305501a667a49c68f24da3998e1d7f5_R.jpg)



![작년엔 도란·올해는 페이즈…MSI 진출 이끈 'T1 신입생' [이주현의 로그인 e스포츠]](https://img.hankyung.com/photo/202606/01.44718282.1.jpg)
![[SD 사포판 라이브] 멕시코전 패배 털고 다시 뛰는 태극전사들…밝은 분위기 속 회복훈련, 시선은 남아공전 몬테레이로](https://dimg.donga.com/wps/SPORTS/IMAGE/2026/06/20/134148145.1.jpg)
![“고향팀에 와서 좋아...가족들도 신났다” 김하성의 새 동료 조이 바트의 이적 소감 [현장인터뷰]](https://pimg.mk.co.kr/news/cms/202606/20/news-p.v1.20260620.17f8dbb8ffec4a2e9a10b835347b869f_R.jpg)

![[헬스캡슐]은행잎 추출물, ‘베타아밀로이드 응집 억제’ 효과 확인 外](https://dimg.donga.com/wps/NEWS/IMAGE/2026/05/26/133978263.3.jpg)



!['꽃청춘' 3인방, 무계획 제주의 높은 벽..결국 티켓 구하기 실패[별별TV]](https://image.starnewskorea.com/21/2026/05/2026052421091553722_1.jpg)

![[오피셜] ‘불꽃슈터’ 전성현, KT서 ‘퍼펙트 10’ 파트너 문성곤과 재회…서민수도 3년 계약](https://pimg.mk.co.kr/news/cms/202605/28/news-p.v1.20260528.c55346b19e8f45bfb362482843760fb3_R.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