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설]허공의 구도자 얀 루스, 두려워도 다음 한 걸음

4 days ago 1

이설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발을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게 줄을 건너가는 노인의 모습은 유령 같기도 하고 그냥 땅 위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이청준 ‘줄’) ‘지상 위 300미터를 걸을 때 그녀는 가장 편안했다. 1밀리미터의 벗어남도 허락되지 않는 길. 일직선의 앞길. 그것은 운명이었다.’(막상스 페르민 ‘눈’) 허공에서 외줄을 걷는 장면은 묘한 전율을 안긴다. 이걸 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결기가 서늘한 대리만족을 줘서일까. 홀로 꿈의 높이를 살아가는 듯한 허 노인(‘줄’)과 네에주(‘눈’)의 모습은 어떤 공상과학 작품보다 비현실적이고 아름답다. 활자와 스크린으로만 접하던 이 감동을 서울 한복판에서 경험했다. 1일 슬랙라인 세계 챔피언 출신 얀 루스가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와 코리아나호텔 사이 160m 줄을 오간 것. 120m 상공에 걸린 폭 2.5∼5cm 줄이 출렁일 때마다 지상은 숨을 죽였다. 루스는 긴장한 관중에게 장난치듯 자세를 요리조리 바꾸며 묘기까지 부렸다. 시민들은 “일상을 깬 해방감을 맛봤다”, “자유로움을 느꼈다”며 뜨겁게 반응했다. 고소공포에 대한 설왕설래도 이어졌다. 아찔한 높이에서 외줄을 타는 건 본능을 거스르는 특별한 능력 덕분 아니냐는 논쟁이다. “당연히 무섭습니다. 높은 곳에서 일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에요.” 루스의 답은 명확했다. 공포와 불안을 느끼지만 그것을 다스려 극복한다는 설명. 그가 과거에 밝힌 불안과 공포 극복법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공포까지 계산해 준비한다. 안전장치가 있어도 높은 곳에 오르면 심박수가 빨라지고 근육이 굳는다. 이를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인정하고 관찰한다. 호흡과 자세를 바꿔 중심을 잡고 공포를 잠재우는 훈련을 한다. 둘째, 시선을 고정한다. 줄 위에서는 줄만 바라본다. 허공이나 발아래로 시선이 분산되는 순간 뇌는 균형감각을 잃는다. ‘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는 허 노인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셋째, 결승점을 보지 않는다. ‘다음 한 발을 딛는 1초 동안 체중을 정확히 싣는다’로 목표를 쪼갠다. 완주를 목표 삼으면 중압감만 커진다. 축구장 35개 길이 메시나 해협을 건널 때도 200m씩 목표 구간을 나눴다. 넷째, 위기에 침착히 대응한다. 돌발 상황은 통제할 수 없다. 강풍이 불면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엉킨 줄은 풀어낸다. 줄타기는 바람과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