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유럽연합(EU)은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수입하는 철강 제품 물량을 46%나 줄였다. 그 외 물량에 부과하는 관세는 25%에서 50%로 두배나 올렸다. EU는 한국이 두번째로 많은 철강을 수출하는 나라다. 지난해 미국이 철강에 50%의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주요 시장들이 보호무역장벽을 높이면서 한국 철강 산업이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한국이 EU와 협상한 결과를 다른 국가들의 결과와 비교해보니 한국은 크게 선방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무관세 쿼터는 19.7% 줄어들게 됐는데, 이는 글로벌 쿼터 감소치 46%보다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경쟁국은 물론 튀르키예, 인도보다도 쿼터가 훨씬 적게 감소했다. 일본은 EU에 수출하는 철강 제품이 연 1만t 가량으로 미미해 비교 대상이 되지 못했다.
한국이 EU와 2010년에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이 주효했다는 게 통상당국의 설명이다. FTA 체결국까지 다른 국가들과 차이 없이 쿼터를 줄이면 ‘시장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약속과 충돌할 수 있다는 명분을 끈질기게 설득했다는 것이다. 고려를 침략하려던 거란을 상대로 전쟁 없이 강동 6주를 얻어낸 ‘서희 담판’을 방불케 하는 통상 협상이다.
그러나 한국 수출산업이 맞닥뜨린 현실에서는 이처럼 명분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강대국들은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그간 국제 질서와 어긋난다고 여겨졌던 통상 장벽을 더 두텁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철강 담판’에서도 실은 명분 만큼이나 실리가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EU에 철강을 많이 수출하는 이유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현지에 공장을 많이 건설하면서 중간재나 원자재로서 철강을 공급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EU는 깊이 고려했을 것이다. 한국 철강 수입을 줄이는 일이 역내 고용과 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은 앞으로 한국이 통상 역량을 어떻게 펼쳐나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분석이다. 다른 국가와 단순히 시장을 주고 뺏는 데서 나아가, 공급망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실리 위주의 통상 환경에서 더 큰 협상 레버리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내외에서 새로운 수요를 찾는 것도 빼먹지 말아야 할 과제다.
[강인선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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