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문화재단 제7회 성정예술상 수상
국내 최초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하고
美브루크너 협회서 음반상 받는 등
깊은 해석 돋보이는 명연주 여럿 남겨
부천필·코심·포항시향 등 거쳐 충북도향
태교·청소년 음악회 등 도민 위해 연주
“음악가의 소양, 다른 사람 위해 사는 것”
“제대로 연주 안 하면 지옥 가요. 불량식품 팔면 나라에서 잡아가는 것과 같아요. 영육의 양식도 그런데 하물며 음악은 영혼의 양식이니 ‘불량 음악’을 하면 안 되지요.”
지휘자 임헌정(71)이 충청도식 화법 특유의 과장과 능청을 섞어 장난기 가득 웃음을 지어 보였다. “농담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깊이 팬 주름만큼이나 확신에 찬 어조였다. 그가 ‘오케스트라의 트레이너’ ‘통찰력 있는 음악 해석’으로 이름난 지휘자인 이유를 이 말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7회 성정예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휘자 임헌정(71)을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났다. 성정문화재단(이사장 김정자)이 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예술가를 기리기 위해 2018년 제정한 상으로, 매년 1명에게 상금 3000만원과 상패를 수여한다. 임헌정은 1989년부터 25년간 부천 필하모닉, 이후 코리아 심포니(현 국립심포니)와 포항시향까지 상임지휘자를 맡아 다수의 명연주를 남겼다. 지난해부터는 고향 청주에 있는 충북도립교향악단 5대 예술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동시에 서울대 음대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후학도 길러냈다.
뚝심과 도전은 임헌정의 음악 여정에 빼놓을 수 없는 단어다. 1999~2003년 부천필과 함께 국내 최초로 선보인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는 우리나라 음악사에 남는 사건이 됐다. 당시 ‘그 어려운 걸 왜 하느냐’는 의심의 눈길이 많았지만 “레퍼토리를 넓혀야 한다” “단원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 예술의전당과 부천필이 개런티 없이 공동 주최한 결과는 대성공. 국내에 ‘말러 신드롬’이 일었다. 그는 “무엇보다 단원들의 순수한 열정이 대단했다”고 돌아봤다.
말러는 그를 ‘일으켜 세워준’ 음악이기도 했다. 서 있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던 1996년, 서울대 개교 50주년 연주회에서 말러 2번 교향곡을 의자에 앉아 연주하다가 5악장에서 터져나온 ‘신의 경지에 닿은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난 일이 있었다. 이때 그는 “인간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음악이 아니라 소리일 뿐”이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겼다. 건강도 회복했다. 이 밖에 2017년 미국 브루크너 협회에서 올해의 음반상을 안겨준 코리아 심포니와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연주(2014~2016)도 명연주로 회자한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오케스트라가 가장 운영하기 어려운 조직일 것”이라며 “돈이나 제도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올바른 지휘자, 간섭 없는 지원에 더해 단원들의 열정도 있어야 최상의 단계”라고 했다. 또 “성정예술상처럼 예술가를 격려해주고 방향을 이끌어주는 분들께 고맙다“며 ”연주회가 있다면 언제든 지휘로 재능 기부를 하겠다”고 했다.
요즘 그는 서울의 집과 청주를 오가며 충북도향을 지휘한다. 고향 청주는 그에게 ‘호기심’을 심어줬다. TV도 라디오도 없던 시절 한 농가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우암동 뒷산 너머에 누가 살까” 궁금해 한 게 그의 유년시절이었다. 피아노 선생님이 된 누나를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웠다. 그는 “인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호기심”이라며 “요즘은 숙련공만 많고 예술가가 보이지 않아 안타깝다. 결국은 악기 소리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기계적으로만 연주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충북도향은 고정 단원이 40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지만, 음악적으로 소외된 곳이 없도록 지역 이곳저곳을 다닌다. 임헌정은 “어린 시절에 좋은 음악을 들어야 한다”면서 지역내 태교 음악회, 초등학생·청소년 음악회 등을 열고 있다. 악단의 연주 역량을 총동원해 말러 4번 교향곡 ‘천상의 삶’,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도 아우른다. 올 연말엔 베토벤 3번 ‘영웅’을, 내년엔 9번 ‘합창’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는 “서울 같은 큰 도시에선 인간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적다”며 “음악가에게 중요한 것은 항상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고의 경지를 지향하는 동시에 듣는 사람을 위해서 연주하는 게 음악가의 의무죠. 과거 부천에서도, 지금 충북에서도 시민과 도민을 위해 연주해요. 둘 중 하나라도 안 한다면 ‘음악을 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