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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관광객과 시민들이 야외에서 음식과 음료를 즐기고 있다.(사진=픽사베이) |
[민서홍 건축가]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말처럼 아파트는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가 됐다. 2022년 기준 서울의 주거 형태는 아파트가 59.5%, 다세대주택 29.7%, 단독주택 9.4%를 차지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2024년 기준 파리의 인구밀도는 약 2만1000명/㎢로, 서울(약 1만5000명/㎢)보다 약 40% 높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보다 건축물 높이를 엄격히 제한하는 파리가 왜 더 사람들로 빽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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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서울의 인구밀도 차이는 주거지의 용적률 차이에서 비롯한다. 용적률은 대지 면적 대비 건물의 연면적(바닥면적의 합계)을 의미하는데 파리 주거지의 평균 용적률은 약 300%로 서울 주거지 평균 용적률 약 150%보다 2배 가량 높다. 즉, 같은 땅에 연면적이 더 넓은 건물을 지어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할 수 있다는 뜻이다. 파리는 7~9층 규모의 중층 아파트가 도시 전역에 촘촘하게 들어서 있다. 이 아파트들은 건폐율과 용적률이 높아 땅을 최대한 활용한다. 반면 서울은 고층 아파트가 많지만 단지형 개발 방식으로 녹지와 도로 등 비거주 공간이 많아 토지 활용의 효율성이 떨어진다.
서울과 파리의 인구밀도 차이는 가구 구조와 주택 유형에서도 나타난다.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 15.5%에서 꾸준히 증가해 2025년 현재 약 42%로 추정된다. 반면 파리는 1인 가구 비율이 50%를 넘으며 전체 주택 중 50%가 소형주택이다. 즉, 같은 면적에 더 많은 가구가 거주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서울은 아직도 방 세 개를 갖춘 중형 아파트 수요와 공급이 가장 많다. 2022년 기준 서울의 가구 수는 약 410만, 주택 수는 약 384만 호로 약 26만 호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는 ‘인구 감소와 가구 증가’라는 사회 변화에 서울의 주택 공급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파리 주거지의 보행 환경은 서울과 크게 다르다. 7~9층 중층 아파트의 저층에는 연도형 상가가 자리해 거리에 활기를 불어넣고 걷기 좋은 골목과 크고 작은 광장이 이어진다. 파리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거리 곳곳에서 자유롭게 식음료를 즐기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반면 서울의 고층 아파트 단지는 전형적인 입주민 전용 ‘게이티드 커뮤니티’(Gated Community)로, 외부인의 접근을 엄격히 통제하고 단지 외곽에 담장을 설치해 차도 옆 좁은 인도를 따라 걷는 불쾌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는 도시 활력을 떨어뜨리고 도시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서울을 찾는 관광객들이 삼청동, 연남동, 성수동 등 활기찬 거리로 발길을 돌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울시는 제2·3종 일반주거지역 용적률을 법 상한선인 250·300%까지 완화하는 임시 조치를 발표했다. 또한 역세권 준주거지역의 종 상향 적용 범위를 구체화해 지하철역 반경 350m 이내 부지에 대해 공공 기여를 낮추는 정책도 마련 중이다. 이는 건설 산업 활성화와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한 긍정적 움직임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가 재건축·재개발 시장을 자극해 또 다른 고층 아파트 단지의 확산으로 이어질 위험도 적지 않다. 인구는 감소하고 가구 수는 증가하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려면 단순히 고층 아파트를 늘리는 방식이 아닌 중층 고밀 도시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도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파리가 서울보다 인구밀도가 높은 이유는 단순히 건물 높이의 차이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중층 고밀도 건축, 높은 용적률과 건폐율, 소형 주택 중심의 주거 구조, 그리고 효율적인 토지 이용에 있다. 서울은 고층 아파트가 많지만 낮은 용적률과 건폐율, 그리고 4인 가족 중심의 주택 공급 구조로 인해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서울이 걷기 좋은 도시, 활력 넘치는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보행 환경 개선과 함께 중층 고밀 도시로의 전환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다.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경쟁력을 강화하는 섬세한 도시 정책이 절실하다. 걷기 좋은 도시는 편의성을 넘어 지속 가능한 도시의 핵심이다. 서울도 활기찬 거리와 조화로운 주거 환경을 꿈꿀 수 있다. 이제는 그 꿈을 현실로 만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