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이 거스른 법칙[이은화의 미술시간]〈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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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화학상은 ‘거울상 분자’의 비밀을 밝힌 프랑스 화학자 앙리 카간과 일본 화학자 소아이 겐소(硤合憲三)에게 돌아갔다. 두 과학자는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닮았지만 서로 겹쳐지지 않는 분자를 선택적으로 만들어내는 연구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오른손과 왼손처럼 모양은 비슷해도 완전히 포개지지 않는 분자들은 우리 몸에서 서로 다른 작용을 한다. 겉보기에 같아도 실은 다른 것이다. 이 흥미로운 과학적 발견은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한 점을 떠올리게 한다. 1937년 마그리트가 그린 ‘복제 금지’(사진)에는 거울 앞에 선 남자가 등장한다. 짙은 갈색 머리에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거울에는 그의 정면 대신 뒷모습이 비친다. 더욱 기묘한 것은 거울 앞에 놓인 책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은 정상적으로 반사되고 있다. 거울이 법칙을 어긴 것은 오직 남자뿐이다. 그림 속 인물은 영국의 부유한 시인이자 초현실주의 예술 후원자 에드워드 제임스다. 1937년 제임스가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하자 마그리트는 얼굴 대신 영원히 뒷모습만 보여주는 기묘한 초상화를 완성했다. 얼굴 없는 초상화를 받은 제임스의 반응은 어땠을까. 뜻밖에도 작품에 매우 만족해하며, 그해 자신이 출판할 책 표지로 사용하기 위해 화가의 허락까지 구했다. 마그리트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 화가였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춘다고 믿지만, 눈에 보이는 것이 과연 진실일까? 과학이 익숙한 세계에 숨겨진 원리를 밝혀낸다면, 예술은 우리가 믿어온 상식을 흔들며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비록 접근하는 방식은 달라도 과학과 예술 두 세계가 던지는 질문은 어쩌면 같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것은 정말 당연한 것일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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