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지역 소방 간부들이 자녀 결혼식 일정을 ‘비상발령 동보 시스템’을 통해 전 직원에게 공지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시스템은 원래 화재·재난 등 위급 상황 시 소방 인력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구축된 긴급 통신망이다.
11일 전남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순천소방서는 지난 9일 오후 3시9분께 전남소방본부 비상발령 동보 시스템을 통해 고위 간부 자녀의 결혼식 일정을 발송했다. 메시지에는 결혼식 일시와 장소, 연락처, 축의금 계좌번호 등이 포함됐다. 15분 뒤인 오후 3시24분에는 나주소방서 소속 간부의 자녀 결혼식 일정이 같은 방식으로 발송됐다.
전남소방본부의 비상발령 동보 시스템은 소방대원의 카카오톡 메신저를 통해 재난 상황 발생 시 신속하게 상황을 전파하는 목적으로 운영된다. 실제로 이 시스템은 대응 단계 발령, 음주기강 공지, 당직·숙직 일정 등 공적 목적의 내부 알림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일선 소방대원들 사이에서는 “자녀 결혼식이 비상 체계로 알릴 일인가”라며 반발이 커지고 있다. 내부 게시판에는 “비상망으로 경조사를 알리는 건 권한 남용” “과장 이상급이 되면 본인 경조사를 대대적으로 알린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일부 대원은 가족의 부음도 해당 시스템을 통해 공유된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 소방대원은 “하위직 직원들은 재난 대응 지시를 그대로 따르는데, 간부들은 공적 시스템을 사적으로 이용해도 묵인된다”며 “본부 감사실이 이번 사안을 제대로 조사해 공정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순천소방서는 내부 게시판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소방서 측은 “비상발령 동보시스템을 통해 사적인 메시지가 전달된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앞으로는 공적 시스템 운영에 더 엄격하고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