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공기, 분위기, 나무의 느낌까지 겨울이 오기 전에 다 받아 가서 우리 올겨울을 잘 지내봐요."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열린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에서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오른 가수 이소라는 기대감에 찬 눈빛을 자신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때. 향긋한 풀 내음이 가득한 서울숲에서 오랜만에 관객들과 만난 그는 "다르긴 다르다"며 "올 2월에 공연하고, 얼마 전에 병원 갔다 온 걸 빼고는 (밖으로 나온 게) 반년만"이라며 웃었다.
'슬픔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소라는 이날 한껏 밝은 목소리로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야외 공기를 마시며 "다르긴 다르다"고 운을 뗀 그는 "오늘은 오랜만에 만나는 거니까 다정한 모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정한 거 좋지 않나"라며 미소 지었다.
심지어는 "저 떼창 한번 받아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난 행복해'로 무대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소라의 바람과 달리 관객들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차분하게 흘러나온 그의 목소리에 객석은 단숨에 압도된 듯 고요해졌다. 이소라의 작은 숨소리까지도 귀에 정확하게 담기는 적막 속 마음을 울리는 가사, 흡인력 있는 목소리가 가슴을 쿡쿡 찔렀다. 이어 '처음 느낌 그대로'까지 절절한 감성의 발라드가 가을 밤바람을 타고 서울숲을 에워쌌다.
'재즈 페스티벌에 웬 이소라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수 이소라'의 뿌리는 재즈에 있다. 그는 인천대학교 재학 당시 아카펠라 재즈 그룹인 낯선 사람들의 보컬로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솔로로 전향한 뒤 발라드를 주로 선보이면서도 재즈, 록 등의 장르를 다채롭게 선보이며 놀라운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이날 현장에서도 보사노바 리듬이 부드럽게 흐르는 '청혼'을 불렀고, 다채로운 악기 사운드가 매력적으로 보컬과 어우러지는 '트랙9'도 선보였다. '트랙9'는 59년 전통을 자랑하는 스위스의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가창했던 노래다. 생동감 있는 리듬, 자유로움, 악기들의 조화가 특징인 재즈의 흐름과 결이 닮아 있는 이 곡의 분위기에 관객들은 푹 빠져들었다.
공연장 한편에서 쉬지 않고 우는 귀뚜라미도 한 명의 연주자가 되어 음악과 어우러졌다.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고, 싱그러운 풀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여기에 훌륭한 음악까지. 모든 감각이 깨어나고 마음의 풍요가 이는 그 공간에서는 모두가 '부자'가 됐다.
공연의 마지막은 '첫사랑'이 장식했다. 평소 앙코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이소라는 이 곡을 끝으로 무대를 내려갔다. 동시에 "12월에 또 볼 일이 있을 것 같다"고 예고해 팬들을 기쁘게 했다.
2017년부터 시작한 '서울숲재즈페스티벌'은 도심 속에서 재즈를 즐기고 마음의 여유를 찾는 축제로 사랑받아왔다. 국내외 유수의 재즈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면서 재즈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소라 외에도 이날 주목받은 무대는 알 디 메올라였다. 1974년 칙 코리아가 이끌었던 전설적인 퓨전 재즈 그룹 리턴 투 포에버의 멤버로 데뷔한 그는 현재까지도 수많은 아티스트의 롤모델로 꼽히는 기타리스트다.
알 디 메올라는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때로는 부드럽고 섬세하게, 때로는 힘 있고 단단하게 연주를 이어가 박수받았다. 정교한 세공사처럼 스트링을 한 줄 한 줄 정성스럽게 튕기는 모습에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장인 정신으로 빚어내는 연주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페스티벌 첫날에는 그룹 루시의 베이시스트 조원상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이 밖에도 올해 '서울숲재즈페스티벌'에는 마이크 스턴 밴드, 피달소, 드니 성호 트리오, 요탐 실버스틴과 송영주 트리오, 토마스 히와 퀸텟, 박상아 퀸텟, 임채희 트리오, 김민지 퀄텟, 유호정 재즈 바이올린 훅, 김연송, 리샤오촨 멜로디어스, 전자공방x난아진, 비츠냅, 더 사운드 오브 얀씨클럽, 아론 팍스 리틀 빅 등이 출연해 다채로운 재즈의 분위기에 취할 수 있었다.
재즈를 잘 모르더라도, 충분히 그 음악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됐다. 18인조 빅밴드 어노잉박스는 이곳저곳 관객들이 있는 곳을 활보하며 흥겨운 분위기의 퍼레이드를 선보였고,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스카와 재즈를 결합한 음악을 하는 스카재즈유닛은 나무가 우거진 장소에서 관객들과 함께 몸을 흔들며 최고의 해방감을 선물했다.
한편 '서울숲재즈페스티벌 2025'는 행사장 내부로 다회용기에 담은 음식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 환경보호에도 특히 신경을 썼다.
또 행사장 곳곳에 다양한 이벤트 부스를 마련해 관객들에게 즐길 거리를 두 배로 제공했다. 현장 스태프들은 친근하게 소통하고 안내하며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저녁이 되자 공연을 보는 관객들에게 다가와 촛불 모양의 조명을 나눠주는 센스를 보이기도 했다. 덕분에 한층 운치 있는 객석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할 수 있는 펫존도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