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산업혁명 노동가 ‘셔츠의 노래’를 낭만적으로 표현한 화가 밀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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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존 에버렛 밀레이 ‘한 땀! 한 땀!’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복고주의 경향이었던 라파엘 전파 스타일에서 벗어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그린 작품 ‘한 땀! 한 땀!’(1876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국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복고주의 경향이었던 라파엘 전파 스타일에서 벗어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주제로 그린 작품 ‘한 땀! 한 땀!’(1876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바느질! 바느질! 바느질!/ 가난과 굶주림, 더러움 속에서/ 나는 두 겹 실로 / 셔츠와 수의를 꿰매고 있네.”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인 19세기 영국, 수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은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1970, 80년대 한국 여공들의 고단한 삶을 담은 노래 ‘사계’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라고 한탄했듯, 영국 시인 토마스 후드는 끊임없이 바느질하며 노동에 지쳐 수의를 꿰맬 지경이라는 내용을 담은 ‘셔츠의 노래’를 1843년 익명으로 발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는 이 시에서 영감을 얻어 ‘한 땀! 한 땀!’(1876년)을 그렸다.

이 그림은 밀레이의 대표작과 스타일이 매우 다르다. 밀레이는 비극적 죽음을 맞은 햄릿의 연인을 그린 ‘오필리아’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1851~1852년 그린 ‘오필리아’는 당시 영국 화가들이 시작했던 ‘라파엘 전파 운동’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필리아’에는 실성해 물에 빠져 익사한 오필리아의 모습이 알록달록한 꽃과 함께 로맨틱하게 그려져 있다. ‘라파엘 전파’의 화가들은 그리스 신화나 역사를 그리는 고전주의에 반발해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미술로 돌아가자는 복고주의를 표방했다. 밀레이는 이 밖에도 존 키츠의 시를 모티프로 한 ‘이사벨라’를 그렸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얻은 ‘축복받은 베아트리체’도 라파엘 전파의 대표작이다. 몽환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대체로 두드러진다.

그런데 ‘한 땀! 한 땀!’은 과거가 아닌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했다. 18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와 거리를 두며 이런 스타일의 그림을 자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평론가들로부터 상업적인 그림 양식에 무릎을 꿇었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이런 풍속화와 초상화를 그리면서 밀레이는 동시대에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화가가 됐다.

비록 밀레이가 ‘셔츠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림 속 바느질하는 여인은 평온하고 낭만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림을 마주하면 전성기 스타일보다 색채는 매우 절제됐지만, 물감을 두껍게 겹겹이 쌓아 올려 붓 터치가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장식적인 느낌이 강하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장에선 비슷한 스타일을 하고 있는 밀레이의 후기 작품 ‘뻐꾹’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두 그림을 통해 19세기 영국의 컬렉터들은 어떤 작품을 좋아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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