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8일(현지시간) 상호관세를 부과한 뒤 처음으로 영국과 무역협상을 타결했다. 미국이 영국산 자동차와 철강의 관세를 낮추는 대신 영국은 시장 개방을 확대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우리는 영국과 획기적인 협상을 타결했다”며 무역협상 결과를 공개했다. 주요 합의 내용을 보면 영국은 미국에 에탄올, 소고기, 농산물, 기계류 등의 시장을 개방해 미국 기업에 50억달러 규모의 수출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 100억달러어치 미국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고 맥주 생산 등에 쓰이는 에탄올에 영국이 부과해온 19% 관세를 폐지하기로 했다.
미국은 철강·알루미늄에 부과한 25% 관세를 영국산 제품에는 면제하기로 했다. 또 연간 10만 대 한도 내에서 영국산 차량에 자동차 관세 25%를 10%로 낮추기로 했다. 다만 다른 모든 영국산 수입품에 매기는 10%의 기본관세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과의 협상 결과가 다른 국가와의 협상에 적용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다른 국가들은 기준선이 훨씬 더 높을 수 있다”고 답했다.
韓美 관세 협상 시사점은
美, 기본관세 10%는 유지…철강 0%, 車 연 10만대까지 10%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영국과 처음으로 관세 협상을 타결하면서 향후 한·미 협상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미국과 영국 협상 결과에 비춰볼 때 미국이 부과한 기본관세 10%는 철폐가 어렵지만 자동차, 철강 등 품목 관세는 인하를 노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美, 영국 차 10만 대 10% 관세
9일 백악관에 따르면 미국은 당초 영국에 부과한 10% 기본관세를 유지하면서 품목별로 별도 합의 사항을 정했다. 대표적으로 전 세계 철강·알루미늄에 매긴 25% 관세는 0%로 낮추며, 자동차 관세 25%(최혜국 관세 포함 시 27.5%)는 쿼터를 두고 연간 10만 대까지는 10%로 인하하기로 했다. 영국이 미국에 수출하는 차량이 10만 대가량이란 점에서 사실상 거의 모든 영국산 자동차가 관세 인하 혜택을 보게 됐다.
그 대신 영국은 미국에 소고기, 에탄올, 농산물 시장 개방을 약속했다. 또 100억달러 규모 보잉 항공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번 협정으로 미국은 10% 관세를 통해 60억달러(약 8조4300억원) 대외 수입을 올리고, 목장주·농부·생산자에게 50억달러(약 7조300억원)의 새로운 수출 기회를 제공한다”며 만족감을 보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이번 합의는 양국 일자리를 보호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합의는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처럼 포괄적인 수준은 아니고 일부 품목과 분야에 제한된 형식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관세 협상을 하고 있는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성과를 강조하기 위해 영국과 협상을 조기 타결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에 한국 등에 협상 타결 압박이 강해질 수 있다. 미국은 영국, 한국, 일본, 호주, 인도를 5대 우선협상국으로 삼고 있다.
◇ 정부 “참고하겠지만 한국과 달라”
영국과의 협상 타결은 미국과 관세 협상을 벌이는 한국에도 시사점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우선 관심사인 미국 상품 구매 확대를 핵심 지렛대로 삼아 자동차, 철강 등의 관세를 ‘조정’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그동안 ‘예외는 없다’고 밝힌 자동차와 철강 품목 관세를 영국에 완화해준 점, 자동차 수출에 쿼터를 부여한 점을 주목한다. “우방을 어느 정도 배려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영국은 대미 무역적자국이어서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은 영국에 관세 인하를 대가로 농산물·에너지 등 시장 개방 등을 얻어냈다. 한국도 30개월령 소고기 수입 제한 등 조치를 양보하면 관세를 어느 정도까지는 낮출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한국이 자동차, 철강 등 주력 품목에 영국처럼 저율할당관세(TRQ)를 적용받으려면 무역 균형 차원에서 영국보다 많은 것을 내줘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영국과의 무역에서 119억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과의 무역에선 492억달러 적자를 봤다. 정부 관계자는 “애초 대미 적자국인 영국보단 한국과 상황이 비슷한 일본을 참고해왔다”며 “미국이 경제 안보 동맹을 내세우는 만큼 대미 협상에서 조선, 방산 등 한국만의 가치를 강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현/김대훈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