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 러시아가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기념일(전승철) 80주년 열병식에 집결했다.
이날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사열대 정중앙에 나란히 앉아 군사 행진을 지켜봤다. 두 정상은 가슴에 러시아 승리의 상징인 주황-검정 게오르기 리본을 달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전날 크렘린궁에서 7시간 이상 정상회담했음에도 이날 붉은광장에 입장할 때부터 함께 등장하고 수시로 통역을 통해 대화하며 남다른 밀착을 자랑했다.
러시아는 4년째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으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지만, 이날 시 주석의 지원으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열병식에는 시 주석 외에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 등 러시아에 우호적인 27개국 정상이 참석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했다.
관중석에서 북한 대표단도 포착됐다. 신홍철 주러시아 북한 대사와 훈장이 가득한 군복 차림의 북한 군 장성들은 관중석 1열에 앉아 있었다.
‘전승절 방러 가능성’이 제기됐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도 있었더라면 처음으로 북한, 러시아, 중국 지도자가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연출됐을 터.
북중러 정상들의 회동은 아니었지만, 푸틴 대통령은 북한 대표단을 별도로 만나며 특별한 대우를 했다. 열병식 행사가 끝나고 붉은광장에 도열해 있던 북한군 대표단과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한 것이다.
가장 처음 만난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상장)에게는 “당신의 전사들에게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란다”고 격려한 뒤 먼저 두 팔을 뻗어 끌어안았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 없었다.
김영복 부참모장은 이날 함께 열병식에 참석한 리창호 참모부 부참모장 겸 정찰총국장(상장), 신금철 작전국 처장(소장)과 함께 북한군의 러시아 쿠르스크 파병 초기부터 전선에 파병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투가 벌어진 러시아 남서부 접경지 쿠르스크에 파병돼 러시아군을 지원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북한군 파병에 대해 김 위원장에 감사를 전했는데 이날 ‘포옹’으로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앞서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올해 열병식에 북한군은 행진하지 않는다면서도 ‘흥미로운 만남’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푸틴 대통령과 북한 군 대표단의 만남을 예고한 것이었다.
이로써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은 러시아에 대한 중국의 경제·외교적 지원과 북한의 직접적인 군사 지원을 푸틴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과시한 행사가 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진실과 정의는 우리의 편”, “온 나라와 모든 국민이 ‘특별군사작전’에 참전한 이들을 지지한다”, “우리에게 승리만을 가져다주는 불굴의 의지” 등의 발언으로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에 대한 승리를 강조했다.
붉은광장을 가로지른 군인·무기 행렬도 작년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것이 눈에 띄었다. 올해 열병식에는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 작전을 시작한 이래 최대인 130대 이상의 군사장비가 동원됐다. 작년과 비교하면 3배 규모라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열병식이 진행되는 동안 붉은광장 주변의 통신은 모두 차단됐다.
소련 시절 전차인 T-34-85가 군사장비 행진의 선봉에 서는 전통이 올해도 이어졌지만, 규모가 달랐다. 지난해 T-34-85는 열병식에 등장한 유일한 전차였지만 올해는 총 7대의 T-34-85가 줄지어 붉은광장을 달렸다.
이어 각종 장갑차와 전투차량, 자주포, 다연장로켓시스템, S-400 방공미사일 시스템 등이 행진했다.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이스칸데르 단거리탄도미사일, 야르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위압감을 풍기며 지나갔다.
작은 비행기처럼 생긴 드론(무인기)들이 군용트럭에 실린 채 등장하자 사람들은 “저게 뭐야”라고 외치며 놀라워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실전 능력을 확인받은 ‘오를란’, ‘란체트’, ‘게란’ 등 러시아산 드론들이었다.
드론 부대가 열병식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 드론들이 최대 50㎞ 비행할 수 있고 체공 시간이 40분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전투기와 폭격기가 붉은광장 상공에 흰색과 러시아 국기색 비행기구름을 만드는 것으로 열병식이 마무리됐다. 공군 비행은 2022년과 2023년에는 취소됐었다.
무기 퍼레이드에 앞서 진행된 군인 행진에는 약 1만1천500명이 참가했다. 군인 경력이 없는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이 넥타이 정장 차림으로 열병식 시작을 알리자 군인들은 일제히 “우라”(만세)라고 외친 뒤 군악대 연주에 맞춰 행진했다.
국방부, 연방보안국(FSB) 소속 군인, 우크라이나 전선에 참전한 군인 등 러시아 군인들과 함께 중국,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이집트, 몽골, 미얀마 등 러시아 우방 13개국의 군부대가 붉은광장을 누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