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올해 역대 최대 수준의 예산 조기 집행을 실시한 후 당정이 ‘선제적’으로 추가경정예산 논의를 하겠다고 14일 밝혔다. 그러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대선용 추경은 없다”고 못박았다.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주당이 주장해온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에는 선을 그어 추경 논의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이 추경 논의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힌 건 이날이 처음이다.
○“민주당, 때 기다려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이 대표의 지역화폐 포퓰리즘 공약을 위한 이재명의 대선용 추경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전일 이재명 대표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경제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추경을 제안하자 이를 겨냥한 것이다. 권 대표는 “정부와 함께 역대 최대 수준의 예산 조기 집행을 통해서 경제 상황을 점검한 후 선제적으로 추경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민주당은 때를 기다리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의 추경 요구는 올해 조기 대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이재명표’ 정책인 지역사랑 상품권의 예산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여당 주장이다. 이번주 들어 민주당은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에 대한 재정 투입을 의무화하는 지역화폐법 개정안을 재발의하기 위해 의원들의 동의도 받고 있다. 이 법안은 지난해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해 무효화됐다. 추경을 통한 지역사랑상품권 예산 확보가 어려워질 경우를 대비했다는 게 정치권 분석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이날 “(지역화폐법 재추진은) 아무리 생각해도 추경과 상품권 발행 예산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자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재명 대표의 목소리만 반영하는 미래세대 수탈법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한국판 잃어버린 10년 될 것”
반면 민주당은 내수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반드시 추경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민생회복지원금과 지역화폐 발행 등을 통해 각 지역의 직접 소비를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내란 사태의 장기화로 우리 경제의 소비 동맥 곳곳이 막혔다”며 “소비 위축에 고환율, 고유가까지 또 겹치면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이 될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도 정부는 예산의 조기 집행만을 되뇌고 있다. 예산의 총량, 총지출에 변화가 없는데, 어떤 효과가 있겠나”라며 “민생회복지원금과 지역화폐 발행을 위한 긴급 추경으로 소비 심폐 소생을 실시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다만 지난해 말 감액 예산을 일방적으로 처리한 민주당이 연초부터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데 대한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권 대표는 “국가 핵심예산을 마구 칼질해서 일방적으로 감액 예산을 처리한 민주당이 새해 벽두부터 추경을 재촉하는 것은 참으로 뻔뻔하다”며 “이 대표의 목적은 지역화폐를 통한 현금 살포 포퓰리즘뿐”이라고 주장했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당정이 야당 주도의 감액 예산안을 그대로 통과시킨 것은 한번 휘둘리면 매년 예산 협상때마다 끌려다닐 게 뻔했기 때문”이라며 “다수당임을 앞세워 예산안을 주무르려고 했던 게 결국은 자충수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