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수입 자동차 25% 관세가 지난 3일 발효됐다. 대미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에 ‘관세 폭탄’이 떨어진 것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액은 347억달러(약 51조원)로 세계 자동차 수출액(707억달러)의 절반(49.1%) 가까이를 차지한다. 미국의 자동차 관세 폭탄이 한국 수출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트럼프 행정부는 5월 3일부터 엔진과 변속기, 전기 부품 등 자동차 핵심 부품에 대해 25%를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어서 부품업계의 관세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 대미 수출 직격탄 맞은 車
한국 자동차산업은 생산 물량 기준 세계 7위다. 제조업 노동자 10명 중 1명이 차·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한다. 전체 자동차 수출액의 절반에 육박하는 미국의 관세 장벽은 수출 급감과 국내 생산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국내 공장에서 생산된 자동차 413만 대 가운데 수출 물량은 67.3%(278만 대)에 달한다. 전체 자동차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차량 대수 기준으로 51.5%(143만 대), 수출액 기준으로는 49.1%(347억달러)에 이른다.
작년 49만 대를 생산해 85% 가까이를 미국으로 수출한 한국GM은 미국의 관세 부과 여파로 철수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차값이 3만달러(약 4400만원)를 넘지 않는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가 주력인 한국GM에 25% 관세가 붙으면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본사가 관세가 없는 미국으로 생산 물량을 돌리면 한국GM은 존립이 위태로워진다. GM이 한국 철수를 결정하면 당장 부평·창원공장 직원 1만1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는다. 1차 협력사 276곳을 포함해 2, 3차 협력사 등 3000여 곳도 부도 위기에 내몰린다. 한국GM이 창출한 직간접적 일자리는 15만 개가 넘는다.
현대자동차그룹도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하다. 지난해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판매한 차량 171만 대 중 미국 생산량은 42%인 71만 대에 그쳤다. 100만 대 가까이가 미국의 관세에 노출된 셈이다. 영업이익률이 높은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 등 고가 모델이 주로 한국에서 생산돼 타격은 더 클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생산 확대로 관세에 대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준공식을 한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 20만 대(30만 대→50만 대)를 추가 증설하기로 했다. 지난해 9월엔 미국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통해 관세 우회로를 확보했다. 현대차가 전기 상용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을 반조립 상태로 수출하면 GM이 미국 현지에서 조립·판매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유럽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를 부산공장에서 위탁 생산해 미국 등에 수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르노코리아도 미국의 수입차 관세로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걱정이다. KG모빌리티는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는 물량은 없지만 호주와 헝가리, 튀르키예 등 해외 시장 경쟁 격화를 우려하고 있다.
◇ 영세 부품 업체는 생존 위기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는 생존 위기에 몰렸다. 완성차 수출이 타격을 입어 국내 생산량이 감소하면 차 부품·소재 협력사의 타격이 더 클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한 관세 대상 자동차 부품은 150개에 달한다. 내연기관 엔진, 전기모터, 차량용 리튬이온배터리 등 구동 계통부터 차축, 운전대, 타이어 등 조향 계통까지 망라됐다. 사실상 모든 자동차 부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얘기다. 국내 자동차 부품 업계의 대미 수출액은 지난해 82억2200만달러(약 12조원)에 달한다.
타이어 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국내 타이어 3사의 북미 시장 매출 비중은 한국타이어 24%, 금호타이어 31%, 넥센타이어 24% 등이다. 한국타이어는 미국 테네시주 공장의 연간 생산 규모를 현재 550만 개에서 내년 1분기 1200만 개로 늘릴 계획이다. 금호타이어도 미국 조지아주 공장에서 연간 330만 개의 타이어를 만들지만 미국 판매분 상당수를 베트남 공장(1350만 개)에서 수입해 타격이 예상된다.
美 현지 생산 확대, 무상정비 혜택 축소…비용절감으로 '관세 폭탄' 뚫는다
美 생산 늘리고 차값 인상도
글로벌 완성차업계는 미국의 ‘관세 폭탄’ 파도를 뚫기 위해 현지 생산량을 늘리거나 서비스 축소를 통한 비용 절감에 나섰다. 관세 부과가 장기적으로 차값 인상으로 이어져 수요 둔화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생산을 늘리기로 했다. GM은 인디애나주 포트웨인 공장의 픽업트럭 생산을 늘리기 위해 생산직 수백 명을 고용한다. GM은 이 공장에서 쉐보레 실버라도, GMC 시에나 등을 생산하고 있다.
GM에 이어 미국 시장 2위인 도요타는 일본과 중국에서만 생산하는 전기차를 2027년까지 미국과 태국, 아르헨티나에서도 만들기로 했다. 미국에서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태국과 아르헨티나에선 전기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식이다. 생산 기지를 다변화해 관세 리스크를 분산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닛산도 미국 현지 생산 확대를 검토 중이다. 실적 부진으로 미국 생산을 줄이려던 계획을 철회한 것. 일본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해 온 SUV 로그를 올해 여름부터 미국에서 생산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반면 미국에 공장이 없는 독일 아우디는 대미 자동차 수출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 당분간 관세가 붙지 않는 재고를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재규어 랜드로버도 미국 수출을 4월 한 달간 중단하기로 했다. 재규어 랜드로버의 글로벌 판매에서 미국 비중은 25%에 달한다.
현대차는 비용 절감을 위해 2026년식 차량부터 ‘무상 정비 서비스’(3년 또는 3만6000마일) 혜택을 종료하기로 했다. 미국이 자동차 부품에도 관세를 물리기로 한 만큼 무상 정비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도요타도 가격 인상이나 무상 정비 혜택 축소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 미국법인 관계자는 로스앤젤레스(LA) 지역 언론 KTLA에 “재고가 다 판매되면 몇 주 안에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미국의 관세 인상으로 차량 판매 가격이 최대 1만달러(약 1400만원)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는 미국의 25% 자동차 관세 부과에 대응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몇몇 모델 가격을 10% 인상하기로 했다. 폭스바겐도 자동차 관세를 적용받는 차량에 별도의 수입 수수료를 붙인다는 계획을 최근 딜러사들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