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디지털 달러’ 패권 굳히기…“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골든타임 놓친다”

2 days ago 2

국회서 한·미 규제 심층 분석 세미나
美 OCC 규정 예고, 韓 대응 비상
이자 0%·준비금 100% 의무화
퍼블릭 체인 빗장 푸는 미국
규제에 묶인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韓 개인정보법 충돌…법제도 정비 시급

17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진행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을 비롯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17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진행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을 비롯한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앞세워 ‘디지털 달러’ 패권을 굳히기 위한 촘촘한 규제망을 펼쳐 들었다.

반면 한국은 국회에 관련 법안만 난립할 뿐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자칫 글로벌 디지털 금융 질서에서 완전히 소외될 수 있다는 뼈아픈 경고가 나왔다.

민병덕·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디지털자산 전문 연구기관 MRI(Monetary Research & Initiatives)가 주관하고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가 후원한 이번 세미나는 미국 통화감독청이 지난 2월 25일 전격 발표한 결제 스테이블코인 세부 규정안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것에 대비해 한국의 입법 전략을 시급히 재점검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김종승 엑스크립톤(xCrypton) 대표가 발제자로 나서 미국 통화감독청의 규정안에 담긴 핵심 이행 체계와 글로벌 규제 수렴 양상을 정밀 분석했다.

이어 한서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국내에 발의된 디지털자산 법안들의 한계를 짚으며 한국형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반드시 담아야 할 필수 요건들을 제시했다.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이 좌장을 맡은 종합 토론에는 이종섭 서울대 교수를 비롯해 니키 아리야싱헤(Niki Ariyasinghe) 체인링크랩스 아시아태평양·중동 부사장, 박혁재 베이스(Base) 동아시아 총괄 등 글로벌 블록체인 인프라의 최전선에 있는 인사들이 패널로 참여했다.

◆ 달러 패권, 디지털 영토로 무한 확장…한국 통화주권 ‘비상’

17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진행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순서대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17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진행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순서대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차세대 금융 인프라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씨티그룹은 오는 2030년까지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모가 최소 1조 9000억달러에서 최대 4조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가상자산 정보 플랫폼 코인게코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시장에 유통되는 법정통화 담보형 스테이블코인의 90~95%는 테더(USDT)와 유에스디코인(USDC) 등 달러 표시 자산이 독식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대해 국제결제은행(BIS)은 스테이블코인의 광범위한 확산이 비미국 거주자들의 달러 자산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여 각국의 독자적인 통화정책과 외환 규제의 유효성을 크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전 세계의 결제, 송금, 자본 이동 데이터가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달러 기반의 디지털 네트워크 위에 축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회의원들 역시 사안의 중대성을 강하게 성토했다. 민병덕 의원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확산에 수동적으로 편입될 것인가, 아니면 원화 기반의 독자적인 디지털 금융 질서를 준비할 것인가의 중대한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짚으며, 이 문제가 단순한 산업 정책을 넘어 국가의 통화주권이 걸린 과제임을 역설했다.

박민규 의원은 미국의 통화감독청 규정안이 글로벌 규제 기준을 선제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내 디지털자산기본법 논의의 핵심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고, 신장식 의원은 혁신과 안정, 글로벌 개방과 국가 주권 사이의 정교한 균형을 설계하는 것이 국회의 막중한 역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美 OCC 규정안, 시장 구조 근본적 개편 예고

미국 지니어스 법안과 통화감독청(OCC) 규칙제정 예고(NPRM) 이자 지급 금지 조항 비교. OCC는 계열사나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이자 우회 지급까지 위반으로 간주하는 등 한층 강화된 규제안을 제시했다. [자료=엑스크립톤]

미국 지니어스 법안과 통화감독청(OCC) 규칙제정 예고(NPRM) 이자 지급 금지 조항 비교. OCC는 계열사나 제3자를 통한 간접적인 이자 우회 지급까지 위반으로 간주하는 등 한층 강화된 규제안을 제시했다. [자료=엑스크립톤]

발제를 맡은 김종승 대표는 미국 통화감독청이 발표한 규정안이 미국 연방 규제 역사상 이례적으로 방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총 5개의 하위 파트와 211개에 달하는 공개 의견수렴 질문으로 구성된 이 문서는 사실상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생태계의 향방을 결정지을 청사진이다.

김 대표는 이 규정안의 핵심 쟁점을 다섯 가지로 압축해 설명했다. 가장 논쟁적인 대목은 이자 및 수익 지급의 전면 금지 조항이다.

미국 규제 당국은 상위 법률인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의 원문을 더욱 폭넓게 해석하여 발행자가 직접 이자를 주는 것은 물론 계열사나 파트너 등 제3자를 거쳐 우회적으로 수익을 지급하는 행위까지 이른바 ‘반박 추정(rebuttable presumption)’ 원칙을 적용해 원천 차단했다.

규제 당국이 위반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스스로 위반이 아님을 서면으로 소명해야 하는 강력한 구조다. 이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에 널리 퍼져 있는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수익 창출 모델이나 거래소의 스테이킹 상품 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초강경 조치다.

17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진행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17일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진행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김종승 엑스크립톤 대표가 발표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스테이블코인의 가치 안정을 위한 준비자산 요건도 MMF(머니마켓펀드) 규제에 준할 만큼 엄격해졌다. 발행 잔액의 100%를 현금, 만기 93일 이하의 단기 국채, 역환매조건부채권 등 극도로 안전한 8종의 자산으로만 상시 유지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통화감독청이 ‘토큰화된 준비자산’을 적격 자산으로 공식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블록체인 위에서 준비금의 실시간 검증과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조치로, 향후 온체인 금융 인프라의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투자자 보호를 위한 환매 규정도 촘촘하게 짜였다. 발행자는 투자자의 환매 요청 시 2영업일 이내에 반드시 현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다만 과거 ‘테라·루나 사태’와 같은 뱅크런(대규모 인출) 상황을 방어하기 위해 24시간 내에 전체 발행 잔액의 10%를 초과하는 대규모 환매 요청이 몰릴 경우에는 지급 기한을 7일로 자동 연장할 수 있는 비상 장치를 마련했다.

이 밖에도 250억달러 이상의 초대형 발행자에게는 준비금의 0.5%(최대 5억달러)를 미국 내 4380여 개 지역 커뮤니티 은행의 보험 예금으로 강제 분산 예치하도록 해 특정 대형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을 막았다. 외국 발행자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려면 재무부의 동등성 평가와 통화감독청 등록을 반드시 거치도록 미국 시장 진입 장벽도 높였다.

◆ 기술이 곧 규제다…글로벌 상호운용성과 온체인 감독의 시대

미국의 규제는 단순히 법적 요건을 넘어 시스템 내부의 기술적 거버넌스까지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통화감독청은 ‘기술 중립’ 원칙을 내세우면서도 발행 기업 이사회 산하에 기존 금융권에는 없던 ‘IT·보안 책임자(ITSO)’를 반드시 임명하도록 강제했다.

또한 다자간 연산(MPC)이나 다중 서명(멀티시그)과 같은 최고 수준의 개인키 분산 보안 체계를 갖춰야 하며 스마트계약 코드가 의도대로 작동하는지 정기적인 외부 감사를 받도록 사실상 의무화했다.

규정안 내 210번 질문에서는 위조 토큰을 막기 위한 전자서명 의무화 방안을 묻고 있으며 더 나아가 블록체인 상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레그테크(RegTech) 기반의 ‘온체인 자동 감독’ 체계 도입까지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 한국 입법은 ‘백가쟁명’ 속 표류…낡은 규제 탓

제22대 국회 주요 디지털자산 법률안별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및 최소 자기자본 요건 비교. 발의안 대다수가 발행 주체에게 50억 원 이상의 최소 자기자본을 요구하고 있다. [자료=법무법인 광장]

제22대 국회 주요 디지털자산 법률안별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및 최소 자기자본 요건 비교. 발의안 대다수가 발행 주체에게 50억 원 이상의 최소 자기자본을 요구하고 있다. [자료=법무법인 광장]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을 구체화하는 사이 한국의 관련 법안 논의는 기초적인 교통정리조차 되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서희 변호사는 제22대 국회에 무려 7개의 서로 다른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이 난립하며 이른바 ‘백가쟁명’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들은 크게 포괄적인 ‘디지털자산기본법’ 계열과 목적을 한정한 ‘스테이블코인 전용법’ 계열로 나뉘며 발행 주체의 최소 자본금 요건이 5억원에서 50억원까지 차이가 크고 상환 기한 역시 3일에서 10일까지 통일되지 않은 실정이다.

여기에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간의 미묘한 시각차도 입법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은행 중심의 컨소시엄이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고, 여당 주도의 법안에도 은행권이 발행 주체 지분의 과반(50%+1주)을 가져가야 한다는 ‘51% 룰’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금융위원회는 이러한 진입 장벽이 핀테크 등 기술 혁신 기업의 참여를 원천 차단해 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예금토큰 중심의 생태계를 강조하며 민간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향후 입법 논의는 더욱 안갯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서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규율체계와 한국 디지털자산 입법 과제’ 세미나에서 발제자로 나선 한서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안갑성 기자]

한 변호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생존하기 위한 최우선 해결 과제로 ‘글로벌 상호운용성’과 ‘국내법의 구조적 충돌 해소’를 꼽았다.

미국 등 주요국이 개방형인 퍼블릭 블록체인 기반의 유통망을 사실상 표준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한국만이 폐쇄형 프라이빗 체인을 고집한다면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퍼블릭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영구적으로 분산 저장하는 기술적 특성을 가지므로 특정 데이터의 완전한 삭제를 엄격하게 요구하는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신용정보법’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영지식 증명(ZK Proof) 같은 첨단 암호화 방식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암호화된 데이터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과감한 특례 조항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한 변호사는 강조했다.

상호주의에 입각한 외국 발행자 규제 설계도 시급하다. 만약 한국이 자국 투자자 보호만을 명분으로 외국 스테이블코인 발행자에게 국내 유통량의 100%를 국내 금융기관에 예치하도록 과도한 빗장을 건다면 훗날 국내 대기업 지사가 무역 결제를 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미국에서 사용할 때 똑같은 규모의 원화를 현지 은행에 묶어둬야 하는 막대한 역차별 비용 부메랑을 맞을 수 있다.

◆ 미 OCC “5월 1일 의견제출 마감…골든타임 놓치면 통화 종속 현실화”

한국이 제도화의 첫 단추를 꿰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사이 글로벌 자본 시장은 이미 원화의 잠재력을 이용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월가 금융사들이 설립한 가상자산 거래소 EDX마켓의 글로벌 법인은 원화 가치를 추종하는 무기한 선물 상품 출시를 공언하며 일평균 거래대금 5억달러라는 구체적인 목표까지 제시했다.

케이맨제도에 소재한 브레인파워랩스는 이미 지난해 10월 원화 가치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KRWQ’를 역외에서 발행해 이더리움과 베이스 네트워크 등 글로벌 체인에서 공격적으로 유통시키고 있다. 안방을 내어줄 위기가 이미 현실화한 것이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한국 금융당국과 산업계가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체적으로 통화감독청의 의견 수렴 마감일인 오는 5월 1일 이전에 한국의 공식적인 의견서를 미국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는 강력한 제언이 쏟아졌다.

외국 발행자의 준비금 산정 방식(Q170)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고, 분산원장의 ‘공개’ 범위(Q9)에 대한 기술적 유연성을 요구함과 동시에 향후 양국 간의 동등성 협정(Comparability Agreement) 체결 의지를 조기에 표명해 협상의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결제 스테이블코인의 명확한 법적 정의, 1대1 준비금 의무, 조건부 이자 지급 허용, 퍼블릭 체인 수용을 위한 개인정보법 정비, 뱅크런 대비 환매 보장 장치, 그리고 글로벌 상호운용성 등 6대 핵심 조항의 뼈대를 당장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대표 역시 “미국 통화감독청의 최종 규칙은 의견 수렴 결과에 따라 이자 반박추정 범위가 축소되거나, 과도하게 넓은 ‘고객’의 정의가 좁혀지는 등 시장 친화적으로 변동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한국은 미국의 규제가 확정된 후 수동적으로 뒤따라갈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글로벌 표준 수립 과정에 목소리를 내며 한국형 입법의 방향타를 꽉 쥐어야 할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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