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호르무즈 해협 … 기로에 선 韓 외교 시험대
靑 "여러가지 가능성 열어둬"
폭발·화재 원인에 일단 신중
트럼프, 한국선박 피격 단정
이란 "韓 균형잡기 긍정평가"
美 외면땐 경제·안보에 부담
이란과도 공급망 유지 필수
이란 전쟁 개전 이후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균형점을 모색해온 한국이 HMM '나무'호에 일어난 폭발·화재를 계기로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공격에 따른 것이라고 단정 지으며 한국에 개입을 촉구하는 가운데 이란 반관영 매체는 한국의 '신중한 행보'를 강조해 상반된 시각을 드러냈다.
한국이 '넛크래커'라는 최악의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지 않기 위해 미국과 이란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 트럼프, 이란 공격으로 단정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ABC 방송 인터뷰에서 "(이란에는 휴전이) 계속 유지되는 편이 좋을 것"이라며 "휴전이 깨지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 알리듯 여러분에게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화물선 폭발 사고와 관련해 "한국이 개입해야 한다(South Korea should get involved). 피격된 것은 한국 선박이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자국 선박이 피격당했다면 즉시 인력을 파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우선시하며 일단 '신중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내부적으로는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한국 선박이 물리적 피해를 보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이 기다렸다는 듯 '프로젝트 프리덤' 참여를 압박한 것에 대한 부담감이 감지된다. 정부로서는 미국과의 경제·안보 협상은 물론이고 한미동맹을 고려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 요구를 마냥 외면하기가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고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망 유지·확보를 감안하면 호르무즈 해협의 '목줄'을 쥐고 있는 이란과 척을 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란 반관영 메흐르통신은 같은 날 오피니언 코너에서 "미국과 시온주의자 정권(이스라엘)의 이란 본토 공격 상황에서 한국의 행보는 주목할 만했다"며 한국이 전쟁 발발 후 이란에 특사 파견과 인도적 지원 등의 행보를 보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메흐르통신은 "한국은 미국의 압박, 에너지 안보, 인도적 우려 그리고 이란과의 소통 채널 유지라는 복잡한 변수 사이에서 신중한 균형 잡기를 시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썼다.
청와대는 4일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적 동참 요청과 관련해 "정부는 국제 해상 교통로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가 모든 국가의 공동 이익에 부합하고 국제법상 보호돼야 할 원칙이라는 입장 아래 글로벌 해상 물류망의 조속한 안정, 회복, 정상화를 위해 여러 국제적 노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며 정부의 대원칙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러한 원칙과 한반도 대비태세, 국내법 절차 등을 감안해 '프로젝트 프리덤' 관련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 요청에 유의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면서도 한반도 안보 정세와 법적 절차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사실상 '단기간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시사한 셈이다. 청와대는 "현재 폭발과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노력 중이며 확인되는 대로 그에 상응하는 후속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호르무즈 해협 내 HMM 화물선 화재 원인은 아직 파악 중"이라며 "여러 가능성이 있을 텐데 원인부터 먼저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 요청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 다만 확정된 것은 없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 전문가 "작전 참가 신중해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한국이 구체적 원인을 파악하기 전에 서둘러 미국의 군사작전 참여 요청에 호응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폭발 원인과 공격 주체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만큼 한국 정부는 '피격'으로 단정하기보다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우선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이어 "한국 정부는 동맹 차원의 협력 필요성은 인정하되, 원인 규명 없는 군사적 대응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명확한 사실관계가 규명되기 전에 미국의 정치적·전략적 프레임에 갇혀 판단의 주도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 호위 아래 미국 국적 선박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데 성공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는 이날 미국 자회사 패럴라인스 소속 차량 운반선 '얼라이언스 페어팩스'호가 미군 지원 속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밝혔다.
[워싱턴 최승진 특파원 / 서울 성승훈 기자 /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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