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요르단-이집트 직접 지목…네타냐후 “창의적 구상” 지원사격
年2조원 美원조 받는 요르단 고심…난민 수용하기엔 정치적 부담 커
압둘라 국왕, 오늘 트럼프와 회담
요르단, 이집트 등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을 수용하라고 압박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 “가자지구의 일부 구역을 중동 국가에 배분할 테니 대신 난민을 받아들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가자지구를 소유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며 가자지구를 미국이 장악해 대대적인 개발에 나서겠다는 구상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도 재확인했다.
이런 압박이 계속되면서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63)이 큰 고민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요르단은 2023년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4850달러(약 703만 원)로 세계 114위에 불과하다. 비(非)산유국이며 이미 팔레스타인 난민을 대거 수용해 경제 사정이 엉망이다. 가자지구 주민을 추가로 받아들이는 건 어려운 상황이며, 요르단 정부도 이에 대해 ‘불가 입장’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원조를 무기로 요르단을 압박할 가능성이 높아 압둘라 2세 국왕이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중동 각국에 가자 나눠 줄 것”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챔피언결정전 ‘슈퍼볼’을 관람하기 위해 뉴올리언스주 루이지애나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가자지구를 큰 부동산 부지(real estate site)로 생각해 보라. 미국이 소유하고 개발할 것”이라는 기존 발언을 되풀이했다. 이어 “일부 팔레스타인 난민은 미국으로 입국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특히 그는 “가자지구의 일부 구역을 중동 국가들에 줘 재건하게 할 수 있다”며 “(가자 재건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동의 부유한 국가가 돈을 대기를 바란다. 요르단과 이집트의 협력도 바란다”고 콕 집어 거론했다. 정상회담이 예정된 압둘라 2세 외에 사우디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도 직접 만나겠다고 강조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같은 날 내각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창의적이고 혁명적”이라며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며 반겼다.
네타냐후 총리는 8일 미국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아랍권과 국제사회가 그간 가자지구를 ‘지상 최대의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비판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그는 “모든 나라와 공상적 박애주의자들이 감옥이라고 하는 곳에서 사람들을 내보내려 한다”며 “왜 가자 주민을 감옥에 가두려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진짜 문제는 가자 주민을 받아들일 국가를 찾는 것”이라며 사실상 아랍권 국가들을 압박했다.●美, 요르단 연 2조 원 원조…트럼프 압박 가속화
미국 언론들은 요르단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특히 큰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은 요르단에 현금을 포함해 식량 보급 및 학교 건설 등 인도주의적 지원 등을 이유로 매년 15억 달러(약 2조1750억 원)를 원조하고 있다.
막대한 원조의 배경은 요르단이 1994년 일찌감치 이스라엘과 수교한 데다 자국 내 미군기지도 허용하는 등 미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조를 무기로 난민 수용을 압박하기 좋은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요르단의 열악한 경제 현실 외에도 이미 요르단 인구 1150만 명 중 약 12.9%(200만 명)가 팔레스타인인일 정도로 많다는 것. 오래전 팔레스타인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을 합치면 이 비율은 더 올라간다. 또 팔레스타인계는 전통적으로 군주제에 부정적이라 왕정을 유지해야 하는 압둘라 2세로선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자지구 주민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하마스 등 무장단체에서 활동했던 극단주의자들이 넘어올 우려도 있다.한편 2007년부터 가자지구를 통치해 온 하마스는 9일 “가자지구는 사고팔 수 있는 부동산이 아니다”며 “부동산 업자의 사고 방식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중동 및 북아프리카의 22개 이슬람 국가를 회원국으로 하는 아랍연맹 또한 27일 팔레스타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아랍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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