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거장 '천국과 지옥' 리메이크작이 할리우드에 전하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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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의 <천국과 지옥>(1963)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원래 2010년 개봉을 목표로 마틴 스코세이지가 제작을, <졸업>(1967)의 마이크 니콜스가 연출을, <한니발>(2001)의 데이빗 마멧이 각본을 맡아 진행했었다. 최종적으로는 모두 다 손을 떼고 <똑바로 살아라>(1989), <올드보이>(2013) 리메이크 등을 연출한 스파이크 리가 메가폰을 들어 완성했다. 제목은 원작을 존중하되 변화를 주어서 <천국부터 지옥까지>이다.

위대한 영화의 리메이크가 그렇듯 <천국부터 지옥까지>도 ‘굳이 왜 만들었을까?’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굳이‘ 리뷰하는 이유는 스파이크 리가 원작의 설정을 살짝 바꿔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자신이 몸담은 쇼비즈니스를 향하고 있어 그가 그동안 할리우드에서 추구해 온 예술적 비전을 확인할 수 있어서다. 그리고 <천국과 지옥>을 리메이크한 의도와 맞닿아 있어서다. 그래서 <천국부터 지옥까지>의 주인공은 음반 레이블의 대표다.

영화 '천국부터 지옥까지' 포스터. / 이미지 출처. © Apple TV+

영화 '천국부터 지옥까지' 포스터. / 이미지 출처. © Apple TV+

데이비드 킹(덴젤 워싱턴)은 한때 잘 나갔던 뮤지션이었다. 지금은 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인수합병을 둘러싸고 큰 회사에 먹히느냐, 전도유망한 음반 회사를 인수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고민하는 동안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목숨보다 귀한 아들이 납치당했다. 납치범은 큰돈을 요구하고 이 돈을 그대로 넘겼다간 인수합병이고 뭐고 회사가 망하는 판국이라 마음은 아프지만, 아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야 그 정도… 하는 사이 아들이 돌아온다.

기쁨도 잠시, 납치범이 착각해 킹의 일을 돕는 톰(제프리 라이트)의 아들을 데려갔다. 톰은 돈을 주고 그의 아들을 구하자며 킹을 설득하지만, 킹은 선뜻 나서지 않는다. 아들도 무시하겠다, 회사도 구할 수 있겠다, 톰의 아들 납치는 뒷순위다. 그렇게 남의 일 보듯 망설이는 동안 여론이 나빠졌다. 킹의 레이블 음반을 불매하겠다는 댓글도 달린다. 아들도 아빠에게 목소리를 높인다. 레이블 설립 당시의 초심을 잊고 있던 킹은 비로소 돈보다 사람의 가치가 우선이라는 걸 깨닫고 톰의 아들 구하기에 나선다.

영화 '천국부터 지옥까지' 스틸 컷. / 사진 출처. © Apple TV+

영화 '천국부터 지옥까지' 스틸 컷. / 사진 출처. © Apple TV+

<천국부터 지옥까지>와 <천국과 지옥>의 제목에는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실은 전치사 하나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이야기 설계가 달라져 둘은 다른 메시지의 영화가 된다. <천국부터 지옥까지>의 영문 제목은 ‘Highest 2 Lowest’이고, <천국과 지옥>은 ‘High and Low‘다. <천국부터 지옥까지>는 지위 혹은 심리의 ‘이동 to’, 그러니까 마음이 변화하는 양상을, <천국과 지옥>은 서로 ‘독립 and’된 계급의 공간을 나눠 벌어지는 사연에 집중한다.

오인된 아들 유괴와 그에 따른 주인공의 딜레마를 다룬 설정은 공유해도 <천국과 지옥>은 빈익빈 부익부의 주제를 강조하려 전반과 후반이 구별되는 연출을 선보인다. 전반부는 언덕 ‘꼭대기 High’의 호화 빌라에 사는 주인공의 사연을 실내의 무대극으로, 후반부는 언덕 ‘아래 Low’ 빈민촌에 거주하는 유괴범을 경찰들이 쫓는 야외의 추격전으로 구성한다. 기차에서 주인공이 유괴범과 돈과 아이를 교환하는 장면이 전후반을 가르는 선(線)처럼 삽입되면 정적이었던 카메라가 동적으로 변화하는 식이다.

영화 '천국부터 지옥까지' 스틸 컷. / 사진 출처. © Apple TV+

영화 '천국부터 지옥까지' 스틸 컷. / 사진 출처. © Apple TV+

<천국부터 지옥까지>도 레이블을 가진 ‘부자’ 대표와 그에게 발탁 기회를 얻지 못한 ‘가난한’ 뮤지션의 대립을 고층 빌딩에서 지하 연습실의 구도로 가져간다는 점에서 원작의 유산을 따른다. 다만, <천국과 지옥>이 삶이란 무엇인가, 의 관점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다면 <천국부터 지옥까지>는 돈만 좇는 쇼 비즈니스 업계를 향한 경종의 의미를 담는다. 원작 때문에 천국, 지옥이 들어간 제목을 기계적으로 가져간 것과 다르게 이 영화는 ’욕심에서 초심으로‘가 더 적절해 보인다.

혹은 ‘최절정부터 밑바닥‘까지도 어울린다. 뮤지션으로 인기 정점을 찍고 지금은 사업가로 잘 나가는 킹은 언제부터인가 음악의 퀄리티보다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판단하는 속물로 전락했다. 납치 사건을 겪으면서 돈보다 더 귀한 가족의 중요성, 우정의 가치, 무엇보다 사람의 귀함을 다시금 자각한 킹은 음악이 좋아 음악 외의 쓸모는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임하소서’, 돈만 아는 비즈니스의 최고 지위에서 내려와 다시 시작한다는 자세로 신인을 발굴하고 레이블을 재정비하는 것.

스파이크 리가 그 어렵다는 걸작의 리메이크를 연출한 것도 이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돈 되는 영화만 투자되고 작품의 퀄리티는 그다음으로 밀린 할리우드의 현재에 반기를 들며 존경하는 감독의 최고 작품을 만들어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 선한 의도가 영화에 드러남에도 불편한 건 선배 감독으로 후배에게 훈계조의 태도로 메시지를 전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다. 영화라도 잘 리메이크했으면 모를까, 한때 최고 감독에서 꼰대(?)가 되어버린 스파이크 리의 초상, 그 자신의 이미지가 '천국부터 지옥까지'가 되어버렸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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