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북한이 준공식을 준비하면서 의도했던 몇 가지 목적을 살펴보는 것은 우크라이나 파병과 희생자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북한 내부에서 영향을 끼칠지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시간 — 왜 하필 해 질 녘이었나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시간이었다. 이번 행사는 해가 지는 시간에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행사장에 참석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빛이 사람의 머리카락을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시간이다. 그리고 한낮의 사진과 밤의 사진은 다르게 작동한다. 낮은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간이고 밤은 집중해서 보게 하는 시간이다. 여기서 조명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빛나게 한다. 동시에 밤은 의례(의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추모, 영혼, 한(恨) 같은 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시간이다.

● 굿 — 한국인이 직관적으로 알아보는 형식
야간 음악회와 눈물 흘리는 유가족 사진을 보면,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딘가 익숙한 형식이 떠오른다. ‘굿’이다. 연설문에서 김정은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데려다 우리 국기를 덮어 꼭 따뜻한 조국땅에 묻어주자 했던 그 소원”을 강조했다. 뒤집어 읽으면, 그 소원이 온전히 이뤄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시신이 돌아오지 못한 죽음. 유가족 입장에서 가장 아픈 종류의 죽음이다. 이런 죽음은 응어리를 남긴다. 슬픔을 개별적으로 놔두면 분열과 한으로 이어지지만 의례화되면 결속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평양은 희생자 유족들의 ‘한’을 개별 가정에 두지 않고, 국가 차원의 의례로 끌어올려 집단적으로 풀어내는 무대를 만들었다. ● 피에타 — 빌려온 도상기념관 실내에 세워진 조각의 구도가 묘했다. 김정은이 흰 꽃을 들고 걸어가며 위를 바라보는 지점에 있는 조각의 사진을 한참을 들여다 봤는데, 개인적으로 떠오른 건 서구 미술사의 대표 도상인 ‘피에타’였다.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의 형상.
피에타는 본래 기독교의 도상인데, 북한은 이 보편적 슬픔의 구도를 빌려와 체제 충성의 서사로 다시 코드화했다.

● 고개 숙인 지도자 — 익숙하지 않은 신체
노동신문보다 하루 늦게 28일 인터넷에 공개된 1시간 30분짜리 조선중앙TV 에서 김정은은 조각상 뿐만 아니라 유족들을 향해서도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사실 이건 우리 뿐만 아니라 북한 내부에서도 자주 보던 자세는 아니다.
우크라이나 파병은 북한 내에서 큰 관심거리이고 뉴스이다. 소문으로 돌던 파병과 희생이 사실로 확인된 상황에서 많은 주민들이 슬퍼하는 상황에서 지도자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은 ‘함께 애도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유가족 입장에서도 자식의 죽음이 최고지도자가 전례없는 모습으로 고개를 직접 숙일만한 가치있는 죽음으로 격상되면서 보상과 위로의 효과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 장면은 김정은을 ‘정(情)이 있는 지도자’로 다시 포장한다. 핵·미사일의 차가운 이미지에 인간적 온기를 입히는 작업이다. 사진 한 장이 하는 일치고는, 작지 않다.
● 들리지 않는 것 — 잘려 나간 현장음
마지막으로 한 가지. 행사를 다큐멘터리처럼 편집해 북한 내외부적으로 배포했을 영상에서 유가족들의 울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배경 음악과 아나운서가 읽는 대본만 들린다. 슬픔의 소리 (통곡, 흐느낌, 절규) 가 그대로 들어가면 통제 불능의 정서가 생긴다. 슬픔이 너무 생생해지면 “왜 죽었나”라는 질문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파병으로 청년들이 죽었다는 사실은 본래 어느 체제에서든 부담스러운 문제다. 유가족의 분노, 동년배의 두려움, 사회의 동요 등 모두 잠재된 위험이다. 평양은 이 위험을 정면으로 다루는 대신, 무대 위에서 의미를 바꿔버리는 길을 택했다. 죽음은 희생으로, 슬픔은 한풀이로, 한풀이는 충성으로, 충성은 단결로.
이 전환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는 지금 판단할 수는 없다. 다만, 북한은 생각보다 사진과 영상을 활용해 질문을 차단하는 한편 원하는 스토리를 만들어가는데 탁월하다는 것을 이번 준공식과 야간 음악회는 잘 보여주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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