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가전매장. 로봇청소기가 진열된 공간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은 국내를 비롯해 전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중국 로보락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적 가전매장도 로보락을 로봇청소기 전시공간에서 가장 전면에 진열했다.
한 30대 여성 A씨가 퇴근 후 가전매장에서 로봇청소기를 둘러보다 "삼성이나 LG (로봇청소기) 중에 어떤 게 더 잘 나가나요"라고 묻자 "삼성이나 LG보단 로보락 제품이 압도적으로 잘 팔리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로보락 플래그십 모델이 물걸레를 이용한 바닥 청소 성능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도 부연했다.
로보락 1위 수성 속 삼성전자 점유율 22% '약진'
17일 글로벌 주요 시장조사기관들에 따르면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4억7000만달러(약 6708억원)으로 추산됐다. 3억3000만달러(약 4709억원)를 기록했던 전년보다 42.4% 증가한 수치다.
주요 브랜드별 점유율은 매출액 기준으로 로보락이 46%를 차지해 선두를 달렸다. 1년 사이 점유율을 11%포인트 늘린 셈이다.
눈에 띄는 업체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전년보다 점유율을 6%포인트 끌어올려 22%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해 4월 물걸레 자동 세척·살균·건조 기능을 갖춘 '비스포크 AI 스팀'을 출시해 한 달도 지나지 않아 1만대 이상 판매했다. 로보락 등 중국 브랜드들이 일찌감치 같은 기능을 갖춘 제품을 출시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선방했다는 평가다.
업계에선 로봇청소기 수요가 비교적 높은 5월 전 신제품을 내놓은 영향도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5월과 11월엔 주요 전자상거래 플랫폼들을 중심으로 연중 최대 할인행사가 진행되는데 이 시기에 앞서 신제품을 적기 출시하면서 판매량을 높였을 것이란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같은 해 6월 기존 플래그십 핵심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가격을 낮춘 신제품 '비스포크 스팀'을 추가로 선보여 공략 가능한 소비자층을 확대했다.
다만, 점유율을 20%대로 올리면서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지난해 로보락이 플래그십 모델과 중급형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제품을 앞세워 온·오프라인 판매채널에서 흥행몰이에 성공해서다.
LG전자, 뒤늦은 신작 출시로 점유율 '추락' 고전
반대로 LG전자는 힘이 빠졌고 중국 에코백스는 벼랑으로 몰렸다. LG전자는 전년보다 7%포인트 떨어진 9%에 그쳤다. 마찬가지로 두 자릿수 점유율을 나타냈던 에코백스는 14%에서 4%로 내림폭이 컸다.
LG전자는 삼성전자보다도 4개월 늦은 지난해 8월에서야 물걸레 자동 세척·건조 기능을 갖춘 'LG 로보킹 AI 올인원'을 선보였다. 물걸레 자동 세척·건조 기능이 기본값으로 자리를 잡은 국내 시장에 뒤늦게 합류하면서 상반기 로봇청소기 수요를 공략하지 못한 것이다.
LG전자의 부진은 삼성전자의 약진으로 이어졌다. LG전자가 삼성전자와 같은 시기 신제품 경쟁에 나서지 못하면서 점유율을 모두 내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LG전자가 LG 로보킹 AI 올인원을 판매한 기간은 약 4개월에 불과하다.
에코백스는 제품 경쟁력보다 내부 사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업계 일각에선 에코백스 한국총판이 2023년 말 변경된 이후 국내 판매채널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판매량이 감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보락 올해 부진할 수도"…삼성과 맞대결 주목
올해 로봇청소기 시장은 삼성전자가 로보락 점유율을 갉아먹는 구도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로보락이 지난 2월 출시한 플래그십 모델 'S9 맥스V 울트라'는 전작과 성능 차이가 크지 않아서다. 청소 기능과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강화하고 4cm 높이 문턱을 오갈 수 있지만 20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이 오히려 전작 수요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로보락의 올해 신작은 전작보다 기기 두께가 얇아진 것 외에는 성능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데 가격이 훨씬 비싸졌다"며 "다른 업체들이 잘 해서라기보다 로보락 신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올해 로보락 점유율이 떨어질 가능성이 큰데 삼성전자가 작년 추세를 이어간다면 로보락 점유율을 가져오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로보락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S9 맥스V 시리즈 출시 전 사전 알림 신청 이벤트 당시 참여자 수는 총 5만2056명. 역대 로보락 신제품 출시 행사 가운데 최다 기록이다.
에코백스와 드리미는 '세계 최초' 타이틀을 앞세운 기술경쟁력을 발판 삼아 국내 시장을 공략하는 중이다. 에코백스는 지난 2월 바닥 물청소와 동시에 물걸레 세척이 이뤄지는 기능을 갖춘 '디봇 X8 프로 옴니'를 출시했다. 드리미는 '로봇 발'을 장착한 'X50 울트라'를 지난 1월 선보였다.
특히 로보락과 에코백스는 스마트홈 연동 표준인 '매터'(Matter)를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접근성이 한층 개선됐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애플, LG전자 스마트홈 플랫폼과도 연동이 이뤄지면서 사용자층을 확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본격적인 반격을 예고했다. 올해 국내 시장 1위를 탈환하겠다는 목표다. 임서액 삼성전자 한국총괄은 "올해는 로봇청소기 점유율 1위를 목표로 한다"며 "가장 중요한 부분인 보안에서 강짐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