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왕조를 이끈 스티브 커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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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왕조를 이끈 스티브 커의 리더십

2026년 4월 17일 밤, 미국 피닉스의 NBA 경기장. 경기 종료가 몇 초 남지 않은 순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스티브 커 감독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스테판 커리와 드레이먼드 그린을 교체 아웃시키고, 세 사람은 잠시 원을 이루어 섰다.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그 짧은 순간, 커 감독은 두 사람에게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정말 사랑한다. 고맙다.”

스코어는 111대 96. 패배와 함께 워리어스의 시즌이 끝났다. 12년간 이 팀을 이끌며 4번의 NBA 챔피언십을 만들어낸 감독의, 어쩌면 마지막 장면이었다. 경기 후 기자들이 자신의 미래를 묻자 커 감독은 ‘이런 일들은 다 유효기간이 있다’고 말했다. 12년을 매일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로 느껴졌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것은 그 자리를 온전히 살아낸 사람에게만 가능한 태도다.

#감독이 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
2014년 스티브 커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미국 프로농구계는 반신반의했다. 정식 프로 코칭 경험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 자주 언급됐다. 그런데 부임이 확정되자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술 연구가 아니었다. 커는 시애틀로 날아가 NFL 시애틀 시호크스의 피트 캐롤 감독을 만났다.

피트 캐롤은 종목은 다르지만 슈퍼볼 우승을 이끈 명장이자, '문화 우선' 코칭 철학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커가 그를 찾아간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배우고 싶었던 건 플레이북이 아니라, 선수들이 매일 아침 자발적으로 훈련장에 들어오고 싶게 만드는 힘의 정체였을 것이다.

캐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그는 감독이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전술이 아니라 문화라고 조언했다. 선수들이 매일 경기장에 들어설 때 느끼는 감정, 훈련장에서 경험하는 분위기, 함께 경쟁하는 방식이 팀을 만드는 출발점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문화는 빌려온 가치가 아니라, 리더 자신의 가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날 밤 커는 호텔 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했고, 그것을 네 가지 가치로 정리했다. 즐거움(Joy), 경쟁(Competition), 마음챙김(Mindfulness), 연민(Compassion)이었다. 이중 마음챙김은 현재의 순간과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태도에 가깝고, 연민은 상대의 사정을 헤아리는 공감적 배려에 가까웠다. 커는 이 네 가지 원칙을 워리어스의 운영 원칙으로 들고 왔다.

#선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것들
대부분 조직에는 핵심가치가 있다. 회사 벽면에 크게 새겨져 있거나, 사내 인트라넷 첫 화면을 장식하고는 한다. 그러나 그 가치가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조직은 드물다. 리더가 '도전'을 외치면서 실패한 사람을 문책하고, '소통'을 강조하면서 회의에서 혼자 말하고, '성장'을 내걸면서 학습할 시간을 주지 않을 때, 가치는 조용히 조롱의 대상이 된다.

커는 실제로 ‘즐거움(Joy)’을 구현하고자 했다. 훈련장에 음악을 크게 틀고, 실수의 순간에 고함 대신 웃음이 먼저 나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연민(Compassion)' 역시 마찬가지였다. 슈퍼스타인 커리에게도, 로스터 마지막 자리를 겨우 지키는 선수에게도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의 실수나 부진을 태도 문제로 단정하기보다, 먼저 상황을 이해하려는 쪽으로 반응했다. 그 반응을 경험한 선수는 ‘안전하다’고 느낀다. 안전함은 팀워크가 되고, 팀워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팀의 체질이 된다. 케빈 듀란트처럼 존재감이 압도적인 선수가 합류했을 때조차, 개인의 무게가 팀의 공기를 쉽게 바꾸지 못했다. 관계의 밀도가 이미 그것을 감당할 만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감독의 스타일로 읽혔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팀 전체의 언어가 됐다. 선수들이 서로를 대하는 방식, 루키를 맞이하는 방식, 패배한 다음 날 훈련장에 들어서는 방식까지. 커가 자리를 비운 날에도 훈련장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리더의 행동이 구성원의 습관이 되고, 습관이 팀의 문화가 되는 과정이었다.

부임 첫해 우승, 두 번째 시즌에는 NBA 역사상 최다인 73승을 기록했다. 12시즌 동안 4번의 우승, 6번의 파이널 진출, NBA가 선정한 역대 15대 감독 중 한 명. 커 감독이 매일 보여주었던 리더십이 남긴 성적표였다.

#무너진 시즌에도 지켜낸 가치
2019년 NBA 파이널 5차전, 케빈 듀란트가 코트에 쓰러진다. 아킬레스건 파열이었다. 6차전에서는 클레이 탐슨이 전방십자인대가 끊어진 채 자유투 두 개를 던진 뒤 코트를 떠났다. 그렇게 워리어스는 토론토 랩터스에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그리고 그 여름, 듀란트는 팀을 떠났다.

이듬해 워리어스는 15승 50패를 기록했다. 슈퍼스타, 승리도 없고, 탐슨의 복귀 날짜마저 정해지지 않았다. 언론은 이미 왕조의 끝을 이야기한다. 커 감독이 부임 첫해부터 공들여 쌓아왔던 가치들은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른다.

그 시즌, 커 감독이 가장 자주 꺼냈던 말은 성적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젊은 선수들의 성장, 훈련에서 발견한 작은 변화들, 이 시간이 결국 팀의 자산이 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는 날에도 그의 시선은 결과만이 아니라 사람을 향해 있었다. 가치가 실적의 도구였다면, 성적이 무너진 그 시즌에 가치도 함께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즐거움, 경쟁, 마음챙김, 연민 이 네 가지 가치는 그가 리더로서 매일 지키기로 한 ‘존재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리더십 연구자 짐 쿠제스와 배리 포스너는 《The Leadership Challenge》에서 리더의 신뢰는 자신이 믿는 가치를 분명히 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특히 잘될 때의 언행보다는 어려울 때의 행동이 리더의 진짜 기준을 보여준다. 구호는 승리할 때 더 잘 들린다. 그러나 리더의 본색은 패배한 다음 날 훈련장에서 드러난다.

2021-22시즌, 그렇게 워리어스는 다시 한 번 챔피언이 됐다. 부상 선수들이 돌아왔고 경기력도 회복됐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전력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그 시간에도, 팀 안에는 관계와 기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믿음이 살아있었다. 구성원은 리더의 구호보다 가장 힘든 날의 반응을 더 오래 기억한다. 2022년의 우승은 갑작스러운 반전이 아니었다. 무너진 시간에도 버리지 않은 가치들이 쌓여 만들어낸 결산이었다.

#당신은 어떤 리더입니까
스티브 커가 12년 전 호텔 방에서 적었던 네 개의 단어는 워리어스를 향한 구호이기 전에, 자기 자신을 향한 약속이었다. 즐거움, 경쟁, 마음챙김, 연민. 그는 그 단어들을 조직문화로 만들기 전에, 먼저 자신이 어떤 리더로 존재할 것인지를 정했다.

CCL은 리더십 개발의 출발점으로 자기인식(Self-Awareness)을 꼽는다. 자기인식에는 자신의 가치와 관점, 리더십 정체성을 이해하는 일이 포함된다. 나는 무엇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순간에도 반복해서 지키고 싶은 태도는 무엇인가. 이 답이 선명해야 상황이 흔들려도 리더의 중심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번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커 감독이 선수들을 껴안던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작별 인사가 아니었다. 한 리더가 자신이 믿어온 가치를 끝까지 살아낸 방식이었다. 스티브 커가 호텔 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한 번쯤 자문해볼 필요 있다. ‘나는 매일 무엇을 지키는 리더인가?’

손송민 휴넷리더십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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