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중국 CATL 등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강자를 제치고 일본과 유럽 업체에서 조(兆) 단위 에너지저장장치(ESS) 공급 계약을 잇달아 따냈다. 국내 배터리 업체가 중국을 제치고 유럽·일본기업으로부터 대형 ESS 계약을 수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기차 캐즘(대중화 직전 수요 정체)을 극복하기 위해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라인을 ESS로 전환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LG에너지솔루션이 3~4개 유럽 기업과 추가로 조 단위 공급 협상을 벌이고 있는 만큼 전체 ESS 수주 금액은 10조원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일본 전자업체 옴론에 연말부터 2GWh(기가와트시)가 넘는 가정용·상업용 LFP ESS를 5년간 공급하는 데 합의했다. 추가 수주 논의까지 고려하면 계약 금액은 1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유럽 태양광 업체 F사와 1조원이 넘는 가정용·상업용 ESS 배터리 공급 계약을 다음달 앞두고 있다. 또 다른 3~4개 유럽 업체와는 모두 합쳐 3조~4조원에 달하는 ESS 공급 계약을 조율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이 아니라 일본·유럽 ESS 시장에서 전한 ‘승전보’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기업은 그동안 유럽에서 CATL, 비야디(BYD), EVE 등 중국 업체에 밀려 협상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ESS에는 값싼 LFP 배터리가 주로 들어가는데, 국내 업체의 주력은 삼원계(NCM) 배터리였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런 트렌드를 읽고 일찌감치 LFP ESS 개발에 나섰고, 미국 미시간 공장과 폴란드 공장의 전기차 라인 중 일부를 ESS로 바꿨다. 미시간 공장은 다음달 1일, 폴란드 공장은 연말에 상업 생산에 들어간다. 충북 오창공장은 ESS 라인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5개월 동안 테라젠, 엑셀시오 등 미국 에너지기업들과는 5조원이 넘는 ESS 계약을 맺었다.
성상훈/김우섭 기자 up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