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의 트라우마: 돈은 지켰지만, 노후는 잃어버렸다[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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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1997년의 겨울을 직접 기억하시거나, 혹은 교과서나 미디어를 통해 ‘IMF 외환위기’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의 혹독한 추위를 접해보셨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가장 혹독했던 겨울 중 하나였던 그해,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우리 삶을 덮쳤습니다. 멀쩡하던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고, 평생을 바쳐 일했던 가장들이 거리로 내몰렸습니다.당시 수많은 직장인이 겪었던 실제 이야기 중 하나를 떠올려 보겠습니다. 대기업 부장이었던 김 선배는 회사 파산 소식을 듣고 짐을 싸 나오면서도 마지막 희망 하나는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20년 동안 흘린 땀의 대가인 퇴직금이 있으니, 이걸로 당분간 버티며 새로운 길을 찾아볼 수 있겠지.” 하지만 그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회사의 금고는 이미 텅 비어 있었고, 회사의 빚을 받아내려는 은행과 채권자들이 남은 자산을 모두 가져간 뒤였습니다. 법적으로 받을 권리가 있었던 퇴직금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내 평생의 노후 자금도 함께 공중분해된다는 사실은, 당시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공포로 각인되었습니다. 공포가 만든 설계도 — ‘수익’보다 ‘안전’ 이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2005년, 정부는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제도 도입의 제1원칙은 명확했습니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근로자의 퇴직금은 안전하게 지키자.” 이를 위해 회사가 퇴직금을 사내에 쌓아두던 관행을 금지하고, 의무적으로 금융기관이라는 ‘외부 금고’에 돈을 맡기도록 강제했습니다. 회사가 부도나도 금융기관에 있는 내 돈은 건질 수 있으니까요. 이것은 분명한 진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트라우마의 함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IMF의 공포가 너무 컸던 나머지, 우리는 제도를 설계할 때 오직 안전에만 몰두했습니다. “원금만 지키면 된다, 절대 손해 보면 안 된다.” 이 강력한 방어 기제는 퇴직연금을 ‘돈이 불어나 연금이 나오는 통장’이 아니라 ‘돈을 가둬두는 강철 금고’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금고 속에 갇힌 20년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지금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의 80% 가까이는 은행 예금처럼 원금과 약속된 이자만 쥐어주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꽁꽁 묶인 채 잠들어 있습니다. 주식이나 채권 펀드처럼 시장 성과에 따라 자산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는 ‘실적배당형’ 상품의 비중은 고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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