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초실감 스마트글라스 시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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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2007년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데이터 트래픽 빅뱅이 일어나 우리 일상은 정보 전달과 획득 방식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당시 필자는 스마트폰 성공 요인으로 손쉬운 화면 확대·축소가 가능한 터치 인터페이스, 와이파이(WiFi) 기반 저렴한 데이터 이용, 앱스토어를 통한 원터치 정보 접근을 꼽았다.

이제 우리는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정보혁명 디바이스로 '초실감 스마트글라스'에 주목한다. 3차원 영상 정보를 스마트폰보다 더욱 현실감 있게 구현하는 스마트글라스는 홀로그램, 라이트필드, 3자유도(DoF)·6DoF 등 기술과 5G·6G 통신, 차세대 와이파이 기술 발전에 힘입어 주목받는다. 특히 장갑 없이도 조작 가능한 직관적 사용자 인터페이스 덕분에 몰입형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제공할 수 있다.

최근 메타, 애플, 삼성 등 글로벌 기업은 인공지능(AI) 글라스와 확장현실(XR) 헤드셋을 선보이며 스마트글라스를 새로운 컴퓨팅 플랫폼으로 진화시키고 있다. 초거대 AI 기술 발전과 맞물려, 초실감 스마트글라스는 사용자의 감각과 행동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AI에 전달하고, AI는 이를 기반으로 상황에 맞는 직관적인 응답을 제공해 인간과 AI의 공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에 따라 초실감 스마트글라스는 디지털 생태계 미래 주도권을 결정지을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다.

◇XR기술 진화와 전환점

초실감 스마트글라스 역사는 1968년 이반 서덜랜드가 개발한 세계 최초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인 '다모클레스의 검'에서 시작된다. 당시 단순한 와이어프레임 수준 시각화 장치였지만, 오늘날 XR 기술 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1990~2000년대에는 다양한 가상현실(VR) 기기가 등장했지만 기술 제약으로 상용화에 실패하며 정체기를 겪었다. 전환점은 2013년 구글의 '구글 글라스'와 메타(당시 페이스북)의 '오큘러스' 인수였다. 이후 메타의 '퀘스트' 시리즈는 독립형 XR 기기로 시장 대중화를 이끌었고, '퀘스트3'는 혼합현실(MR)을 구현하며 기술 진화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애플은 '비전 프로'를 통해 공간 컴퓨팅 기반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제시했고, 2025년 하반기 삼성은 '무한(∞)'과 '해안(HAEAN)' 출시를 통해 AI와 공간지능을 결합한 XR 디바이스로 또 한 번 도약을 예고하고 있다.

◇AI가 촉발한 글로벌 패권 경쟁

초실감 스마트글라스를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단순한 제품 출시를 넘어 생성형 AI 중심 기술 패권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다. 메타의 '오라이언', 애플의 '비전 프로', 구글의 증강현실(AR) 안경 프로젝트 등 빅테크 기업들은 차세대 플랫폼 주도권 확보를 위해 속속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런 흐름은 초실감 스마트글라스가 하드웨어(HW)에 머무르지 않고 AI와 결합된 지능형 인터페이스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중국 스타트업도 실시간 번역과 AI 보조 기능을 갖춘 스마트글라스를 출시하며 지식재산(IP) 선점과 생태계 구축 경쟁에 본격 참여하고 있다. 이제 초실감 스마트글라스는 AI를 현실에 연결하는 디지털 확산의 전진기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사용자 경험의 접점을 장악한 기업이 플랫폼 주도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시장 전망도 밝다. 초실감 스마트글라스는 스마트폰, 워치, 이어폰 등을 통합하는 '궁극의 웨어러블'로 진화 중이며, 이는 디지털 라이프스타일의 근본적 전환을 이끄는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다.

초실감 스마트글라스 활용사례초실감 스마트글라스 활용사례

◇실생활 속 확장되는 활용 분야

초실감 스마트글라스 활용 영역은 의료·국방·안전·제조·물류·교육·관광·스포츠·복지 등 전 산업과 생활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외과의사가 수술 중 3D CT·MRI 영상을 겹쳐 보며 AI로부터 신경 위치와 안전거리를 안내받아 수술 정확도·안전성을 높인다. 국방과 재난 대응에서는 가상 적군·지형정보 투사로 훈련 효과를 높이고, 소방관이 연기 속에서도 건물 구조와 인명 위치를 즉시 파악할 수 있다.

제조·물류 현장에서는 설비 앞에서 작업 지시가 실시간 표시되고, 물류창고에서는 최적 경로 안내로 작업 효율이 향상된다. 교육 분야에서는 의대생이 홀로그램 인체 모델로 해부 실습을 반복하고, AI 튜터의 피드백으로 학습 효과를 높인다.

관광지에서는 AR로 과거 풍경과 복식을 재현하며, 스포츠에서는 선수들이 AI 코치의 실시간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세를 교정할 수 있다. 또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안경,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안내 등 정보 접근성을 높이고, 공간지능형 AI 비서를 통한 업무 지원 등 개인 생산성 향상 분야로도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기술도약을 위한 골든타임

초실감 스마트글라스가 실생활과 산업 전반에 뿌리내리려면 다각도의 전략적 접근과 기술적 도약이 필요하다. 특히 △공간지능 및 공간컴퓨팅 기술 △개인화 AI 에이전트 기술 △어지러움을 해결하는 고성능 디스플레이 기술 △입체 공간 미디어 기술 등이 대중화를 위한 핵심 과제다.

ETRI는 최근 'ETRI 콘퍼런스 2025'를 통해 초실감 서비스 청사진을 제시했다. △시청촉 융합 기반 원격 실재감 증강 및 상호 교감형 공간상호작용 서비스 개념증명(PoC) △입체 공간 미디어 및 다초점 입체 영상 재현 기술 △XR HMD 및 일반 스크린을 활용한 실시간 원격 협업 메타버스 공연 시연 등이 그 사례다. 특히 이 시연은 800㎞ 구간을 5밀리초(㎳) 이하 초저지연으로 연결한 세계 최초 200Gbps급 6G PoC 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됐으며, 초실감 XR 디바이스 실현 가능성과 미래 활용상을 제시했다.

현재 AI 글라스는 일부 산업 분야에 국한돼 있지만 머지않아 안경 하나로 공간 상황을 인식하고, AR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해 다양한 디지털 서비스를 직관적으로 활용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정부 역할과 전략적 투자 필요성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정책적 지원도 중요하다. 디스플레이가 12대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돼 있지만, 초실감 스마트글라스 분야 구체적 투자 방향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최근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은 초실감 디바이스를 위한 핵심 원천기술 확보 전략을 발표하며, 공간지능 처리와 몰입형 AI 인터페이스 등 중장기 연구 과제를 제시했다. 이는 단일 기기를 넘어 AI 기반 융합 플랫폼으로의 진화를 반영한 정책적 흐름으로 평가된다. ETRI 역시 AI·공간 경계를 허무는 초실감 공간결합기술 '다봄(DAVOM)'을 공개하며, 차세대 실감 디바이스 구현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과 기술 흐름에 발맞춰, 연구개발(R&D) 예산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전략적으로 운용하고, 세계 최고 수준 초실감 스마트글라스 원천기술 확보에 나서야 한다. 기술을 선점하지 못하면 시장도 선도할 수 없다. 지금이 미래 시장 주도를 위한 골든타임이다.

◇대한민국의 기회, 지금부터 시작이다

초실감 스마트글라스는 앞으로 10년간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패권을 좌우할 게임 체인저다. 과거 스마트폰 시대 승자들이 막대한 부가가치를 독점했던 것처럼, AI와 XR이 결합된 초실감 기술에서도 선진국과 선도기업이 시장을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이 이 흐름을 주도하려면 지금이 바로 기술 주권과 시장 주도권 확보 골든타임이다.

다행히 우리는 디스플레이, 통신, 미디어 등 일부 핵심 기술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AI 분야에서는 선진국 대비 격차가 존재한다. 따라서 초실감 스마트글라스와 AI 기술 동시 육성이 필수다.

특히 초실감 스마트글라스는 HW에 국한되지 않고 소프트웨어(SW), AI, 콘텐츠가 융합된 플랫폼 기술이다. 이제 HW 중심 전략을 넘어 통합적 기술 전략과 생태계 연계 전략이 필요하다. 개방형 플랫폼을 선점하면 국내 산업 생태계 주도는 물론 국제 표준화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종 기술 협력과 산·학·연 협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중심이 돼 대학 선행 연구와 기업 응용 기술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런 삼각 협력 구조는 연구성과 산업화 촉진은 물론 중소기업 혁신 제품 개발에도 실질적인 기반이 될 것이다.

앞으로 10년, 우리 목표는 분명하다. 2035년까지 글로벌 초실감 AI 디바이스 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하고, '한국산 기술과 표준'이 전 세계인 일상 속에서 사용되는 미래를 실현하는 것. 정부의 일관된 정책과 R&D 투자, 그리고 산·학·연의 과감한 혁신과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이 바로, 초실감 스마트글라스 기술 미래를 여는 여정에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설 때다.

방승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scbang@etri.re.kr

〈필자〉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전자공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ETRI 연구원생활을 시작해 무선전송연구부장, 미래기술연구본부장, 통신미디어연구소장 등을 역임하고 2022년 말 원장에 취임했다. 그동안 디지털신호처리, 이동통신 등 분야에서 SCI급 논문을 다수 발표하고 1400건 가까운 국내외 특허출원, 721건 특허 등록 실적을 거뒀다. 2006년 국무총리 표창, 2014년 한국공학상, 2021년 해동기술대상을 받았다. 지난해는 통신 강국 발전 공로로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받았고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에 선정됐다. 2023년 제19대 대덕연구개발특구기관장협의회(연기협) 회장으로 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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