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저작권 문제, 한국 AI 발전을 늦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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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기나 인터넷처럼 인공지능(AI)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치는 기술이다. 이는 생산성을 높이고 혁신을 촉진하는 것은 물론, 국가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새로운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또 GDP 증가와 노동생산성 향상은 물론, 금융, 제조, 교육, 국방 등 모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소다. 한국에 AI 산업은 최고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이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오히려 선진국 대열에서 뒤쳐질 위험요소기도 하다.

◇한국의 AI 현주소, 보이지 않는 존재감

그렇다면 한국의 AI는 현재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GPT-4o와 같은 '주요' AI 모델의 경우(2024년 기준 총 62개) 미국이 40개, 중국 15개, 프랑스가 3개를 개발했고, 한국은 겨우 1개에 불과하다. 2017년 이후 개발된 '대규모' AI 시스템(10²³ FLOP 이상, 총 81개)은 미국 43개, 중국 19개, 영국이 6개를 개발했다. 미국과 중국의 양강체제에서 한국은 전무하다.

AI 특허와 논문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3년 AI 특허의 70% 가까이가 중국에서, 14%가 미국에서 나왔다. 중국은 2017년부터 특허에서 미국을 앞지르고 있다. 2023년 컴퓨터공학 분야 논문 비중은 중국 23.2%, 미국 9.2%였고, 논문 인용 비중은 중국 22.6%, 미국 13.0%였다. 한국은 AI 모델, 시스템, 특허, 논문 어느 분야에서도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AI 국제 비교(자료=이대희 교수)AI 국제 비교(자료=이대희 교수)

◇저작권, 발목을 잡는 가시

이 수치가 AI 경쟁력을 모두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13위 경제규모이자 정보기술(IT) 강국을 자랑하던 한국에 걸맞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AI 경쟁력이나 위상을 강화하는 요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AI 학습데이터의 저작권 문제다.

2022년 11월 챗GPT가 출시된지 3년이 된 지금도 한국의 저작권 관련 법제는 제자리걸음이다. AI 산업 발전을 위해 저작권 문제해결은 필수적이다.

AI 개발자가 모델을 학습시키려면 데이터(저작물)가 필요하다. 저작물을 이용하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거나 저작권 침해에 대한 예외가 적용돼야 한다. AI 학습에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요구되기 때문에 AI 개발자가 수많은 저작권자에게 일일이 이용허락을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음악저작물 등 일부만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침해에 대한 예외가 적용돼야 하는데 현행법상 공정이용이 바로 그것이다. 공정이용은 저작물 이용의 성격·목적이나 시장에 대한 저작물 이용의 영향 등을 고려해 저작권 침해를 면제하는 제도다.

미국과 한국은 저작권법적 측면에서는 유사한 위치에 있다. 왜냐하면 저작권 예외로서 공정이용 규정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이용 여부는 법원의 판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이로 인해 학습데이터 이용에 있어서 법적 불투명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수십건의 소송이 제기돼 판례가 쌓이고 있으며, 개발자와 언론사간 합의를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가고 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법적 불확실성이 해소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식 해법을 살펴보고 그 시사점을 찾아보자.

◇미국식 해법 1: 합의

미국에서는 개발자와 저작권자가 합의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많다. 오픈AI는 월스트리트 저널, AP, 뉴욕포스트, 워싱턴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사, 빌트, 디 벨트 등의 신문을 보유한 독일의 악셀 슈프링거, 프랑스의 르몽드, 스페인의 최대 미디어그룹 등과 합의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했다.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개발자는 콘텐츠(뉴스기사)를 이용하고, 언론사는 AI 기술을 이전받거나 수익을 제공받는 구조다.

오픈AI에 대해서는 뉴욕타임스와 지프 데이비스(Ziff Davis·CNET 등 보유) 등이 제기한 침해소송도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오픈AI가 만약 소송에서 패소하더라도, 기업가치가 5000억달러에 달하는 오픈AI에는 손해배상도 그저 영업비용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상당수의 언론사들과는 협상을 통해 콘텐츠를 이용하고,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최악의 경우에는 영업비용 정도에 불과한 손해배상을 하는 구조가 된다.

오픈AI가 주요 언론사와 합의했다는 것은, 방대한 학습데이터 속에서 개별 저작물이 사용되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소송 가능성이 높은 언론사부터 우선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저작권자들은 AI 학습에 자신의 저작물이 이용되었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결국 미국 AI 기업들은 소송 가능성이 높은 언론사 등과는 합의를 통해 해결하고, 불가피하면 손해배상으로 감수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식 해법 2: 공정이용의 판단

미국에서는 AI 저작권 소송이 30여개 정도 제기돼 있어서 법원이 공정이용 여부를 판단할 기회가 매우 많다. 올해 1월 한국방송협회가 제기한 소송 1건이 진행되고 있는 한국과 다르다. 실제로 미국 연방지방법원(샌프란시스코)은 지난 6월 2개의 사건(앤쓰로픽 및 메타)을 통해 처음으로 AI 학습이 공정이용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공정이용이라는 판시는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해적판 다운로드도 공정이용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 양 사건의 판결이 입장을 달리하기 때문에 이는 향후 지켜보아야 할 사안이다.

더군다나 지난 8월 25일에는 앤쓰로픽과 저작권자들이 화해로 사건을 종결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저작권 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화해안은 앤쓰로픽이 최소 15억달러를 '화해 기금'에 납입하고, 이로부터 50만여권 서적의 저작자에게 3000달러를 지급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법원은 해적판 다운로드가 공정이용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으므로, 화해에 의하여 앤쓰로픽은 50만여권 서적에 대한 법정손해배상(750~15만달러)의 위험을 피하게 됐다. 또 저작권자들도 3000달러라는 비교적 큰 금액의 배상을 받게 되므로 저작권자에게도 유리하다. 3000달러는 향후 다른 소송에서 손해배상을 산정하는 기준액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과제: 법적 불투명성 해소

미국과 한국은 저작권법 측면에서 동일함에도 AI 산업을 선도하는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시장원리나 소송을 통해 법적 불투명성을 해소해가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법원이 공정이용을 판단할 기회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 AI 학습이 적법한지 여부는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 있다. 저작권 침해에 대해서는 형사적 제재까지 가해지는 상황에서 AI 개발자가 학습데이터를 이용하는 모험을 할 수가 없다. 결국 법적 불투명성은 AI 산업의 발전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저작권 분야에서 이같은 법적 불투명성을 조속히 해소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원칙적으로 개발자가 학습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지만, 저작권자가 이용하지 못하도록 유보한 경우(옵트아웃)에는 이용하지 못도록 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유보 방식의 현실성과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 여전히 논란이 많다. 또 저작권자의 이익을 손상할 수 있는 상업적 목적의 AI 학습을 허용하는 저작권의 제한도 적합하지 않다.

◇가시를 뽑아내자

AI의 가치사슬은 데이터 수집, 학습 및 미세 조정, 서비스 제공, 이용자의 프롬프트 입력, AI 결과물의 생성으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AI 학습이라는 시작단계에도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법적 돌파구가 필요하다. 일단 학습데이터 이용의 허용이라는 것을 대전제로 해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의 연방지방법원도 AI 학습은 공정이용이라고 판시했다. 학습데이터 이용이 가능하다고 물꼬를 텄다면, 이용의 요건으로서 이용허락을 받을 수 없는 경우를 설정하거나, AI 결과물에 의한 저작권 침해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이러한 정책전환은 입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거인의 발에 박힌 가시는 작아 보이지만 치명적이다. 한국 AI 산업의 발목을 잡는 저작권 문제가 바로 그런 성격을 가진다. 올해 인공지능기본법이 제정되고, 새 정부가 AI 3강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대통령도 저작권 문제를 언급했다. 그러나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입법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AI 산업의 성장을 위한 법적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대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it-law@korea.ac.kr

〈필자〉고려대 법학과에서 학사·석사를 받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를 받았다. 2007년부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중재조정센터 패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운영하는 'AI-저작권 제도개선 워킹그룹(협의체)' 좌장이기도 하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 부위원장, 위원장직무대행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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