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K콘텐츠의 무한동력 엔진, '창의성'에 다시 주목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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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K콘텐츠는 이제 한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드라마, 예능, 애니메이션 등 방송영상콘텐츠는 전 세계 시청자에게 사랑받으며 수출산업으로 성장했고, 게임, 웹툰, 캐릭터 등도 다양한 권역의 해외시장에 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콘텐츠 수출은 2023년 기준 133억달러에 달했으며, 2024년에도 웹툰, K팝 등 장르의 해외 확산에 힘입어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수출액은 전년 대비 약 1.8%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콘텐츠 수출이 1억달러 증가할 때 연관 소비재 수출이 1.8배 확대된다는 점은 콘텐츠가 강력한 산업 파급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K컬처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국가 이미지 제고 효과 역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최근 글로벌 통상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K콘텐츠는 플랫폼 기 반의 유통 구조 다변화와 팬덤 중심의 소비자 연결력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 큰 인기를 모은 OTT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골든아워'는 K콘 텐츠의 높은 창의성과 글로벌 확산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 작품은 의학과 판타지를 결합한 독창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작가 한산이가의 원작 웹소설에서 출발해 홍비치라 작가의 웹툰으로 확장되었고, 이후 드라마로 제작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됐다. 기존 메디컬 드라마의 문법을 전복한 기획력과 강한 몰입감을 갖춘 이 시리즈는 공개 직후 한국을 비롯해 태국, 대만, 말레이시아, 칠레, 페루 등 17개국에서 넷플릭스 1위를 기록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인도 등 총 63개국의 톱10 리스트에 오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2023년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성과발표회 현장 모습.2023년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 성과발표회 현장 모습.

웹소설에서 웹툰, 그리고 영상 콘텐츠로 이어지는 이 작품의 확장 과정은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이 각기 다른 매체의 특성과 이용자 환경에 맞춰 콘텐츠를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세계 보편의 정서와 재미, 감동을 구현해낸 대표적인 사례다. 하나의 원천 IP가 다양한 플랫폼을 넘나들며 강력한 생명력을 발휘한 것은, 결국 창의적인 기획력과 상상력의 힘이 산업 전반의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K콘텐츠의 창의성에 대한 글로벌 수요와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입증하고 있지만, 산업 내부에서는 구조적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깊어 지고 있다. 제작비 급등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 글로벌 OTT에 대한 높은 의존도, 장르 편중, 현지화 전략의 한계, 투자 위축 등은 콘텐츠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콘텐츠 기업들의 2025년 1·2분기 경영 체감도는 둔화된 성장을 우려하는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불안정한 국제 통상 환경과 급변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넘어, 이제는 콘텐츠 본연의 경쟁력에 다시 주목할 때다.

콘텐츠산업 경쟁력의 핵심은 '창의성과 다양성에서 비롯된 문화적 독창성' 에 있다. 콘텐츠는 기술이나 플랫폼이 아닌, 창의적 아이디어와 표현에서 출발한다. 4차 산업혁명, 생성형 인공지능(AI), 플랫폼 다변화 등 급속한 변화 속에서도 '창의성'이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기술은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며, 플랫폼은 유통의 통로다. 진정한 경쟁력은 감동을 주는 이야기, 새로 움을 제시하는 시선,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창의적 IP에 있다. 이러한 콘텐츠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트랜스미디어 구조를 형성한다. OTT와 FAST 역시 기술의 산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콘텐츠가 창의적일 때에만 시장에서 의미 있는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웹툰 엑스퍼트 프로그램 1기 수료식 사진웹툰 엑스퍼트 프로그램 1기 수료식 사진

이는 시대를 초월해 살아남은 콘텐츠들이 증명하고 있다.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들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최근 4K 고화질로 복원된 그의 영화들은 올해 전 세계 70개국 이상에서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무성영화라는 형식적 제약을 넘어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유머와 감성이 기술과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미디어는 변화해도, 콘텐츠 IP는 영원하다. 기술과 플랫 폼이 어떻게 진화하든, 창작자의 고유한 시선과 상상력이 담긴 콘텐츠야말로 가장 오래 살아남는 힘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인재양성 사업구조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 인재양성 사업구조

창의성 확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은 창의적 아이디어와 창작 역량을 갖 춘 전문 인재의 발굴과 체계적인 양성이다. 콘텐츠는 결국 사람의 감정과 경험, 통찰이 응축된 결과물이며, 산업은 결국 '사람'으로 작동한다. 이에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분야별 특성에 맞춘 실질적 콘텐츠 전문인력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예를 들어 △웹툰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기획자·편집자·프로듀서 를 육성하는 '웹툰 엑스퍼트 프로그램' △기획부터 제작·마케팅 전 과정을 포괄하는 '애니메이션 PD 양성 프로그램' △해외 진출 역량 강화를 위한 '수출 마케팅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실무형 재교 육 프로그램 '콘텐츠 스텝업' △신기술 융합 인재 양성을 위한 '뉴콘텐츠 아카데미(NCA)' △게임 분야 전문인력 양성 기관인 '게임인재원' △현장 기반 도제식 창의교육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 등도 활발히 운영 중이 다. 앞서 언급한 '중증외상센터: 골든 아워'의 홍비치라 작가는 '콘텐츠 창의인재 동반사업'의 2012년 수료생 출신으로, 최근엔 해당 사업의 멘토로 참여해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창의인재에 대한 오랜 투자가 산업 내 선순 환을 만든 좋은 사례다.

콘진원의 인력양성 프로그램은 생성형 AI의 실무 적용 역량을 높이는 교육도 포함하고 있으며, AI 시대에 대응하는 인재 양성에도 집중 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콘텐츠 기획·제작·유통 전반에 빠르게 도입되 고 있지만, 콘텐츠의 경쟁력을 주는 창의성과 감수성은 기술로 대체될 수 없다. AI는 창의성을 위한 도구이며, 이를 활용한 다양한 실험과 시도 는 창작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추경예산 165억원 규모로 확대된 문체부와 콘진원의 'AI 콘텐츠 제작지원' 사업 역시, 창의적 인재와 기업들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 도록 돕는 마중물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콘텐츠산업의 본질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기술도 플랫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은 언제나 창의성이다. 그리고 그 창의성은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지금이야말로 콘텐츠산업 의 미래를 위해 창의성과 인재에 다시 집중해야 할 때다.

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 hsyooa@hanmail.com

〈필자〉유현석 한국콘텐츠진흥원 원장직무대행은 1992년 LG애드에 입사한 이래, 지난 30년간 다양한 콘텐츠 기획 및 제작에서 전문성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2022년 9월 한국콘텐츠진흥원 부원장으로 임명된 이후, 2024년 9월부터 원장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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