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215〉선도형 R&D 지원체계로의 전환을 위한 필요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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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 세종대 교수·전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최영진 세종대 교수·전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트럼프 제2기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국가 간 기술주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으며, 동맹 중심에서 개별국 기술자립 경쟁구도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 시대에서 국가혁신시스템의 근본적 재편이 요구되며, 선도형 연구개발(R&D)로의 전환을 통해 전략적 기술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선도형 R&D는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고, 혁신적 대안을 창출하여 글로벌 기술 패러다임을 선제적으로 주도하는 전략적 접근방식으로, 이를 위해 기술적 한계와 도전 영역을 명확히 정의하고, 국가 전략 및 기술 확보의 시급성을 고려한 도전적·혁신적 R&D 생태계 구축이 절실하다.

주요 선진국들은 도전적·혁신적 R&D 연구지원기관의 대명사인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벤치마킹해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에 특화된 연구지원 기관을 설립하는 등 기술패권을 유지하고 격차를 벌리려는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 프로그램의 가장 핵심은 자율성과 권위를 보장받는 프로그램 매니저(PM)에 의한 R&D 경영이 자리 잡고 있다. PM이 R&D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목표 및 임무를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R&D 경영을 강화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선도형 R&D 시스템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 주도의 목적성 있는 R&D 투자보다는 연구자의 창의성과 자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연구 현장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국가 총력전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국가 간 기술개발 경쟁 상황과 공적 R&D 자금의 양적 한계를 고려한다면 국가·사회적으로 필요한 혁신적 과학기술에 대해 연구자들이 기꺼이 도전할 수 있는 DARPA형 임무중심 R&D 지원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또한 필요하다.

이런 배경 하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3월 '혁신적·도전적 R&D 육성시스템 체계화방안'을 발표하고 혁신·도전형 R&D 사업에 대해 2027년 기준 정부 전체 R&D의 5%까지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 구체적인 이행 방안 중 하나로 DARPA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한계도전R&D프로젝트 및 한국형 ARPA-H 사업을 출범시켰다. 두 사업의 추진을 통해 혁신적·도전적 R&D사업을 표방한 기존의 국가R&D 사업들이 넘지 못한 제도적 장벽을 하나둘 넘어왔으나, 아직 갈 길은 멀다. 특히 국가재정법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혁신·도전형 R&D 사업에서는 유연한 사업운영이 핵심이기 때문에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사업비 총액계상 및 사업비 이월 허용 등 사업비 운용의 경직성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선도형 R&D 지원시스템으로의 전환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혁신·도전형 R&D 사업군의 경우 계속비 예산안 편성이 가능하도록 하여 중장기적인 호흡의 꾸준한 지원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재정법은 단지 R&D사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 살림살이와 직결된 법이기 때문에 이의 개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선도형 R&D 지원시스템은 제도적인 보완이 선행되어야 하나, 제도 못지않게 문화의 한계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신뢰가 필요하다. 부처 담당 공무원이 예산, 평가·관리, 감사 등 R&D 사업 전반에 걸쳐 책임을 지는 구조에서 기존과 다른 방식의 R&D 시스템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또 담당 부처뿐 아니라 감사원, 국회, 언론에서도 새로운 R&D 시스템의 담대한 시도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미국의 DARPA 프로그램도 신뢰를 얻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으로는 R&D 경영자인 PM과 R&D 수행자인 연구책임자 간의 신뢰 구축도 새로운 R&D 시스템의 안착을 위해 필수적이다. PM이 프로젝트 성공을 위한 연구책임자의 협력자 또는 동반자라는 가치 확산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또 자율적 연구를 선호하는 연구자의 속성상 관리가 강화된 임무중심 R&D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혁신·도전형 R&D에 동참하는 연구자에 대한 적정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일 것이다.

최영진 세종대 교수·전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장 jini38@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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