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백악관은 마치 다국적 기업 대표들의 투자 발표 대회장을 방불케 하는 듯하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트럼프 취임 다음날 곧바로 오픈AI, 오라클과 함께 인공지능(AI) 기업 스타게이트를 설립하며 5000억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한국 기업 가운데는 현대자동차그룹이 210억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일각에서 국내 투자를 줄여 해외 투자를 늘렸다는 비판으로 이어져 걱정스럽다. 수출기업의 해외 투자는 단순히 인건비나 물류비 등 생산비용 최소화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해외 투자는 공급망 위기와 기후변화를 대비한 정책에 이르기까지 복합적 요인을 고려한 전략적 선택이다. 긴 시간에 걸쳐 막대한 투자가 집행되므로 기업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현대차그룹의 투자는 자동차의 현지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생산설비를 보완하며 부품·물류·철강 그룹사의 투자를 동반한다. 철강 공급을 현지화하는 등 자동차 생산 공급망을 강화하고 관세 위험을 최소화한다.
상대적으로 국내 설비투자와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수출주도형 경제에서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를 대체 관계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미국 내 완성차 생산은 중소·중견 부품 업체의 해외시장 개척에 기여한다. 25개 부품 기업이 국내에서 부품을 수출하는 것을 넘어 직접 미국 내 부품 공장을 설립해 미국 현지 메이커를 신규 고객사로 끌어들이고 있다. 매년 우리 정부와 공공기관이 해외 판매 개척을 위해 도입한 정책 수단들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것과 비교된다.
미국 투자로 인해 국내 투자와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는 현실과 다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국내에 역대 최대 규모인 24조3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전년 대비 19% 증가했다. 전기차 전용 공장 건설 등 전동화 및 소프트웨어 중심 차량(SDV) 전환 가속화에 쓰일 재원이다. 해외법인이 활성화되면서 국외에서 벌어들인 이익이 국내에 재투자되는 ‘자본 리쇼어링’도 증가했다. 2023년 국내 기업의 자본 리쇼어링 규모는 435억달러가 넘는다. 2022년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생산시설의 물리적 유턴만이 아니라 자본의 유턴도 중요하다.
기업 경영을 위축시키는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산업계는 ‘코리아 엑소더스’를 경계해 왔다. 공급망 안정을 강조하며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쟁국과 달리 우리 기업 환경은 일률적 규제로 통제를 우선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에 최저 세금을 부과하고, 에너지 비용 등을 제공한다. 해외 투자가 국내 기업과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도록 자본 리쇼어링, 고부가가치 기술 중심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해외 기업에도 한국 땅이 성장의 기회가 되도록 법제과 기업 환경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