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검은 수녀들’로 돌아온 송혜교
“홍보 방식 많이 바뀌어...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고 싶다”
담뱃불을 끈 뒤, 수녀용 헤드 스카프를 착용한 채 들통에 든 성수를 구마자에게 끼얹는다. 구마자가 욕을 하자 더 찰진 욕을 박아준다. ‘더 글로리’에 이어 ‘송혜교가 또 얼굴을 갈아 끼웠다’는 평이 나오는 영화 ‘검은 수녀들’은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검은 사제들’(2015)의 스핀오프 작이다.
‘두근두근 내인생’(2014) 이후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에 “많이 떨린다”고 간담회에서 밝힌 송혜교는 “‘더 글로리’ 이후 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오기는 싫어 장르물을 찾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송혜교의 얼굴을 볼 기회다.
“예능·유튜브 출연, 편안한 요즘 모습 보여주고 싶어”
언제 올지 모르는 사제를 기다리기엔 악령에 씌인 아이가 위중하다고 판단한 ‘유니아’(송혜교)는 구마가 금지된 수녀 신분이지만 직접 의식에 나선다. ‘미친X’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구마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교단과 주변의 반대를 기꺼이 무릅쓰는 ‘유니아’ 수녀의 모습은 ‘더 글로리’ 동은의 서늘한 끈기와 닮아 있다. 냉정하고 차가운 듯한 모습 이면에 있는 유니아의 간절한 진심 역시 ‘더 글로리’ 조력자 현남(염혜란)의 딸을 구하기 위해 애쓰던 모습과 다른 듯 겹쳐진다.
며칠 동안 구마 신을 찍으며 일시적으로 몸이 경직되기도 하고 악몽도 꿨다는 그녀는 생애 최초로 담배까지 배우며 ‘검은 수녀들’에 몰입했다. 23년 만에 출연한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얼굴로 승부 볼 나이는 지났다. 이제 예쁘다는 말보다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던 그녀의 말이 다시 생각나는 ‘검은 수녀들’은 24일 오늘 개봉했다.
30년 가까이 톱스타를 유지해온 그녀의 얼굴을 요즘처럼 자주 볼 일이 있었을까. 절친인 다비치 강민경이 운영하는 유튜브 예능 ‘걍밍경’에서는 엄정화의 ‘후애’ 음원을 녹음하며 데뷔 후 처음으로 브이로그 영상을 찍었다. 가수 정재형의 유튜브 ‘요정재형’에서는 “여자로서 힘든 일도 겪어…인생 공부 잘한 것 같다”며 개인사를 오픈하는 등 진지하지만 털털한 모습을 보이며 화제가 됐다.
인터뷰에서 “신비주의는 아니었고 10년 사이 홍보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어린 친구들에게도 다가가고 싶었다”고 밝힌 송혜교는 ‘검은 수녀들’ 이후 노희경 작가의 60~70년대 시대극 ‘천천히 강렬하게’에서 공유와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Q. 11년 만의 스크린 복귀다. 부담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많이 떨리고, 그만큼 홍보도 열심히 했다. 많은 분들이 ‘검은 수녀들’을 기다려 주신 것 같다. 그래도 설레는 마음이 많이 큰 것 같다.
Q. 호불호가 갈리는 오컬트를 용기 있게 택한 이유? 평소에 오컬트 장르를 많이 봤는지?
자연스럽게 인연이 닿았다. ‘더 글로리’를 끝내놓고 다시 사랑 이야기로 돌아오고 싶지 않아서 거의 장르 위주로 시나리오를 고르고 있었다. 원래 무서운 것을 잘 본다. 어머니가 공포영화나 오컬트를 좋아하셔서 같이 많이 봤다. 너무 힘들고 어려운 도전이겠지만 ‘또 나한테 몰랐던 새로운 표정이 있지 않을까’, ‘다른 장르물에선 내 모습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Q. 욕설도 하고 흡연 등 거친 연기도 많았는데, 어디에 중점을 두고 촬영했나?
흡연 연기는 처음인데 비흡연자라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극중 유니아 수녀 캐릭터에겐 꼭 필요한 신이었다. 6개월 전부터 담배를 배우며 연습을 했는데 목도 아프고 힘들었다. 첫 장면부터가 흡연 신인데 거짓으로 흡연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샤워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툭’ 치면 기도문이 나올 정도로 연습했지만 담배 피는 연습도 많이 했다(웃음). ‘두근두근 내 인생’ 때는 짧은 욕설도 잘 못해서 지적을 받았는데, 살면서 욕이 조금 는 것 같다. 하하하.
Q. ‘검은 사제들’과는 결말이 많이 다르다.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는지?
마지막 신을 3개월 촬영 중 마지막 날 찍어서 감정 상태가 완전히 유니아 수녀에게 빠져 있었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부터 결말에 이견은 없었다. 유니아 수녀를 중심으로 놓고 봤을 때는 구마할 수 있는 두 사제가 부재한 상태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움직여야 했을 것이다.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 어떤 명분이 더 필요할까.
Q. 오직 소년을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몰아붙이는 ‘유니아’와 그녀를 경계하면서도 돕게 되는 ‘미카엘라’(전여빈) 수녀의 연대가 돋보인다.
정말 행복한 기억이 많다. 여빈 배우와 서로 사적인 것, 작품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눴다. 실제로 극중 유니아와 미카엘라에게도 그런 것이 필수적이었으니까.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두 여성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연대하는 과정은, 연기하긴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수녀복을 입는 순간 무기를 든 것 같았다. 촬영하면서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지니까 연기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전여빈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나의 구세주?
Q. 극중 유니아 수녀처럼 수도자로서의 삶을 산다고 가정해본다면 개인적으로 어떤가?
오직 유니아 수녀만 생각하고 3개월 동안 그 인물로 살았다. 연기하면서 생각했다. 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서 모든 걸 바치는 유니아 수녀처럼 할 수 있을까, 가족도 아닌데. 실제 수녀님들도 많이 만나고, 촬영하면서 감독·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해보면서 ‘성직자, 수녀라면 그렇게 할꺼야’라는 믿음을 가지고 연기를 시작했던 것 같다. 나 개인으로서는 유니아 수녀님으로 살 수는 절대로 없을 것 같다.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글 박찬은 기자 사진 NEW]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5호(25.02.0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