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데일리 김미영 강신우 기자]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집권자는 늘 이러한 명분으로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해왔다. 오는 6월 3일 대통령선거 후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하게 될 새 정부 역시 조직개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새 정부의 국정운영철학을 담되 ‘인공지능(AI) 강국’을 목표로 AI 담당 부처를 신설하고 현행 부처들은 기능성·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비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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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AI 정부’로 도약 발판 만들어야
우리 정부는 그동안 세계적 흐름에 맞춰 부처별 AI 활용과 접목을 시도해왔지만 아직은 미흡한 실정이다.
최근엔 국세청이 탈세혐의자를 자동으로 솎아내는 ‘AI탈세적발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주요 업무에 직접 적용한 사례도 나왔다. 그러나 대부분은 번역 서비스나 챗GPT를 활용한 홍보물 제작, 챗봇을 통한 민원 처리 등 단순한 업무처리에 AI를 활용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AI 전담 부처를 신설하거나 이른바 ‘최고 AI 책임자’를 새로 두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제언한다. 국가 AI 전략을 통합 지휘할 수 있는 거버넌스 체계로서 전담 부처를 세우거나 부처들의 AI 활용과 위험 관리를 책임질 사람을 둬야 한단 것이다.
하정우 네이버 퓨처AI센터장(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 공동대표)은 30일 “글로벌 경쟁 상황과 파급력을 고려할 때 AI에만 집중할 수 있는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면서 새 정부에 ‘AI디지털혁신부’ 신설을 제안했다.
새 부처의 주요과제 중 하나는 ‘사이버 보안’ 문제다. 예컨대 공정거래위원회의 사건 조사나 심사보고서 작성 등 핵심 업무에는 AI를 곧장 적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AI 보안 및 개인정보 보호, 오류 등 위험 관리, 저작권 이슈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 개발과 제공이 시급하다. 호주 정부에선 데이터 성숙도 평가 등을 담당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동시에 훈련된 전문 인력이 사이버 보안 체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한 ‘데이터 및 디지털 정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새 부처가 이를 맡을 수 없다면 ‘최고 AI 책임자’를 두는 것도 차선으로 거론된다. 미국의 경우 부처에 최고 AI책임자(CAIO)를 두고 최고정보책임자(CIO), 최고기술책임자(CTO), 최고데이터책임자(CDO)와 함께 AI 정책을 책임감 있게 수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작년 5월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를 지정하고 고위공무원단 직급으로 상향한 조치를 했지만 미국처럼 AI 활용과 위험 관련 책임자는 아예 없다.
황혜신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AI는 그동안의 전자정부 추진과는 달리 후발 국가가 따라잡기 어려운 분야로, 조속히 AI 발전 전략을 추진하지 않으면 AI 주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며 “미국처럼 정부 부처 내 AI 담당관을 지정한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공공부문에 AI를 확산할 수 있다”고 했다.
경제부처 재정비…규제혁신부·인구부 검토할 만
AI 전담 부처 신설 여부를 포함, 정부 조직 개편은 대대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 전면 개편 구상을 밝히는 등 후보마다 조직 개편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던 기재부의 경우 전문가들도 부처 분리설에 힘을 싣고 있다. 재정과 예산을 분리해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로 나누는 방안 등이다. 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무부 산하에 예산청과 금융청을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하태수 경기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사중복기능 통폐합을 중심에 놓으면 경제, 국방처럼 주요 부처가 오작동할 경우 나라 붕괴 수준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며 “상호 견제가 가능하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등장 후 중요성이 커진 통상 담당 부처도 재정비가 필요하단 제언이 나오고 있다. 현재는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등 기능이 산재해 일사불란한 대응이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진두지휘하는 미국의 정부효율부(DOGE)처럼 규제혁신 담당 부처를 신설해 규제 개선 및 합리화에 주력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최병선 서울대 명예교수는 “현행 규제개혁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구임에도 사실상 국무총리실이 담당하고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반등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세계 꼴찌 수준인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인구부 설립을 검토해야 한단 목소리 역시 나온다. 국가 존속이 걸린 과제인 만큼 전임인 윤석열정부가 추진했더라도 수용할 건 수용해야 한단 얘기다.
가장 중요한 건 새 정부의 원칙 정립이다. 백가쟁명식의 부처 개편 제언들을 경청하되 새 정부가 국정운영 방향을 먼저 세우고 이를 반영해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재정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규모 정부조직개편이 20여년 전 이뤄졌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조직들의 문제점과 한계에 관한 지적이 쌓여왔다”며 “기능성을 중심으로 학계와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 가능한 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혼란을 줄이면서 단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