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약 못잖은 앱 처방 … AI로 진화하는 디지털 치료
불면 치료 디지털기기 '솜즈'
개인별 습관 교정 미션 제시
완치율 40% … 약물 끊기도
시각 자극훈련 VR기기 활용
뇌졸중 환자 시야 장애 개선
치매 前단계 고령환자 맞춤
난이도 조절 인지훈련 앱도
70대 여성 김 모씨는 오랫동안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약을 먹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껴 수면 유도제 복용조차 쉽지 않았던 그에게 의료진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처방'을 내렸다. 국내 1호 디지털 치료기기 '솜즈'다. 김씨는 매일 몇 시에 눕고 깼는지 수면 일기를 솜즈에 기록하고 앱이 제시하는 행동 지침과 수면 습관 교정 미션을 수행했다.
사용 초기에 50%대를 밑돌던 그의 수면 효율은 주차가 거듭될수록 안정됐다. 처방 5주차에 외래 진료실을 다시 찾은 김씨는 "컨디션이 정말 좋아졌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SW 알고리즘 활용해 질병 예방
먹는 약이나 주사제 대신 스마트폰 앱 같은 소프트웨어(SW) 알고리즘으로 질병을 예방·관리하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획득한 제품이 잇달아 임상에 도입되면서 의사의 처방도 본격화하는 추세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다양한 환자가 디지털 치료를 통해 불면증을 극복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솜즈의 임상을 주도하는 이유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바쁜 일정 탓에 대면 인지행동치료(CBT-I)를 받기 어려웠던 환자나 스틸녹스, 졸피뎀 등을 매일 복용하면서도 쉽게 끊지 못해 애를 먹던 환자들이 솜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한 이후 약물을 완전히 끊거나 가끔 먹는 정도로 조절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에임메드가 개발한 솜즈는 불면증의 표준 치료법인 CBT-I를 모바일 앱으로 구현한 기기다. 그동안 CBT-I 치료를 받으려면 환자가 일주일에 한 번씩, 최소 6주에서 8주간 직접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솜즈는 이러한 치료 과정을 앱으로 옮겨 시공간적 제약을 없앴다. 에임메드에 따르면 솜즈의 불면증 치료 반응률은 60% 이상, 완치율은 40% 내외다. 수면제의 치료 반응률이 70%대인 것과 비교하면 괄목할 성과다. 현재 솜즈는 전국 10여 개 기관에서 200여 건의 임상 데이터를 축적했고, 앞으로 3년간 데이터를 모아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을 추진한다. 이 교수는 "수천 명의 데이터가 쌓이면 이를 AI에 학습시켜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치료법을 처방하는 모델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것이 디지털 의료기기가 가진 미래 가치"라고 말했다.
◆난치성 재활 치료에도 적용
알고리즘 기반의 디지털 처방은 그간 대안이 없던 난치성 재활 영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뉴냅스가 개발한 '비비드브레인'은 뇌졸중이나 뇌병변 후유증으로 시각 피질이 손상된 시야 장애 환자들을 치료하는 기기다. 시야 장애는 국내 뇌졸중 환자의 약 20%가 겪을 정도로 흔하지만 신경과나 재활의학과 등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던 영역이었다.
비비드브레인은 환자가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고 시각 피질을 활성화하는 특수 자극을 시야 장애가 있는 위치에 정밀하게 투여하는 방식으로 훈련한다. 비비드브레인을 개발한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졸중 이후 수년간 오른쪽 시야 장애를 겪던 한 환자는 12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자녀와 산책하던 중 아이로부터 '아빠, 이제 안 부딪히네'란 말을 들을 정도로 일상에서 변화를 체감했다"며 "영화 자막을 다시 읽을 수 있게 됐다는 환자도 있었고, '집을 팔아서라도 치료받고 싶었다' '이 시대의 심청이다'란 반응이 나올 만큼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환자들의 치료 순응도는 압도적이다. 하루 30분씩 주5회 처방 기준 실제 훈련 이행률은 149%에 달했다. 환자들이 처방량을 다 채우고 나서도 자발적으로 추가 훈련을 했다는 의미다. 강 교수는 "현재 20여 개 대학병원에 처방 시스템을 구축했고, 올해 말까지 40개로 확장할 예정"이라며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중국·미국 시장 진출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을 위한 솔루션도 본격적인 임상 적용 단계다. 이모코그가 개발하고 최근 일산백병원에서 처방을 시작한 '코그테라'는 스마트폰으로 하루 두 차례, 12주간 인지 훈련을 수행하는 의료기기다. 기존 인지 훈련 앱과 다른 점은 식약처 허가를 받은 '적응형 알고리즘'을 탑재했다는 것이다. 환자가 문제를 푸는 동안 시스템이 정답률과 수행 자료를 실시간 분석해 난이도를 유기적으로 조절한다. 이강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약간의 노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의 자극을 제공해줌으로써 뇌가 다양한 인지 전략을 동원해 스스로 훈련되도록 유도한다"고 말했다.
이모코그에 따르면 코그테라의 평균 순응도는 80% 이상이다. 고령 환자들을 배려해 타자 입력이 아닌 음성 인식을 기반으로 훈련 인터페이스를 설계한 것이 주효했다. 다기관 확증 임상시험 결과, 코그테라를 쓴 환자군의 치료 반응률은 59.2%로 대조군(28%)보다 2.1배 높게 나타났다. 이 교수는 "처방 후 중간 점검을 해보니 기억할 수 있는 단어 개수가 늘어나는 등 증상 개선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의료기기 인허가·비용 장벽 넘어야
전문가들은 디지털 기기에 인공지능(AI)이 접목되면 치료 효과가 한층 고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의료기기 인허가라는 현실적인 장벽을 고려하면 AI 기반 디지털 치료제의 등장은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환자의 반응에 따라 알고리즘을 스스로 변경하는 AI는 안전성과 일관성을 예측하기 어려워 규제기관의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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