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억 아파트' 팔 때보다 5배 세금폭탄…"누가 주식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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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투자은행(IB)이 정부의 세제 개편안을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징벌적 상속세율 논의는 시작도 못 한 데다 대주주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기준까지 크게 강화해 급등세를 타던 국내 증시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세제 개편안 수정 없이는 ‘코스피지수 5000’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30억 아파트' 팔 때보다 5배 세금폭탄…"누가 주식하겠나"

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최근 글로벌 자산배분 계획에서 아시아 신흥국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1.0~1.0의 구간 중 0.5)에서 ‘중립’으로 축소했다. 아시아 신흥국 비중을 줄인 이유로 ‘한국의 세제 개편안’을 꼽았다.

씨티은행은 “한국의 세제 개편안은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려던 정부의 그동안 노력과 180도 대치되는 내용”이라며 “정부의 증시 부양 정책이 최근 코스피지수 상승을 견인해 온 만큼 이번 개편안이 지수 추가 하락을 부추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는 이번 세제 개편안을 통해 주식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하기로 했다. 3억원 이상 금융소득에 매기는 배당소득 분리과세율은 25%에서 35%로 높였다. 증권거래세도 0.15%에서 0.2%로 인상할 계획이다.

홍콩계 IB인 CLSA도 전날 ‘이런, 증세라니(Yikes, tax hikes)’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채찍만 있고 당근은 없다”고 혹평했다. 부동산시장에 쏠린 자금을 증시로 돌리기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다. CLSA는 “실망스러운 정책 때문에 금융·지주사 관련주를 중심으로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며 “배당소득세 분리과세와 상속세 인하가 병행돼야 증시가 재평가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JP모간은 “한국 증시가 추가 상승하려면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하다”며 “세제 개편안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이 들리거나 상장사 실적이 증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스피 5000과 충돌하는 세법
아파트 한채 값도 안되는데 10억이 양도세 대주주 요건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동산에 쏠려있는 가계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옮기겠다”고 공언해왔다. 기업의 투자 자금과 국민의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했다. 정작 지난달 31일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은 이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조치라는 게 대다수 주식 투자자들의 주장이다. 양도 차익이나 임대 소득에 대한 세금 공제율이 높은 부동산과 달리 주식엔 증세 기조가 뚜렷하다는 점에서다.

◇‘똘똘한 한 채’는 세금 무적

한국경제신문은 4일 A금융회사 자문을 얻어 30억원짜리 아파트를 처분했을 때 매도자가 내야 하는 양도소득세율과 한 종목을 30억원어치를 보유한 대주주가 주식을 팔았을 때 부과 받는 세율을 비교했다.

1주택자인 부동산 매도자는 2000년 이 아파트를 2억원에 취득해 28억원의 최대 차익을 남겼다고 가정했다. 정부는 1주택자의 매도차익 12억원 초과분에 대해서만 양도세를 과세한다. 이 때문에 과세 대상액은 28억원에서 16억원으로 줄어든다. 10년 이상 주택 보유 및 거주한 사람에게는 ‘장기보유 특별공제’도 적용한다. 공제율은 80%에 달한다. 결국 과세 대상액은 3억4000만원으로 줄어든다. 매도자는 28억원이나 남겼지만 세금은 1억180만원만 내면 된다. 실제 세율이 4.2%에 불과한 셈이다.

30억원어치 주식을 보유한 주식 투자자는 다르다. 이번 세제 개편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대주주 요건에 해당해 고율의 세금을 내야 해서다. 이번 개편안에선 양도소득세를 내는 대주주 기준을 기존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강화했다. 10억원에 취득한 주식을 30억원에 팔았다면 차익 20억원에 대한 세금은 차원이 달라진다. 개편안대로라면 주식 매도 차익(과세표준액 기준)이 3억원 이하이면 22%, 3억원을 초과하면 27.5%의 세금을 내야 한다. 공제액(250만원)을 제외한 총 세금은 5억3281만원에 달한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은 과세 형평성뿐만 아니라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주주 기준인 10억원은 서울아파트 평균 가격(13억8000만원)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치여서다. 시가총액이 약 188조원인 SK하이닉스를 10억원 들고 있다면 지분율은 0.0005%에 불과하다. ‘대주주’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정부 시기 대주주 기준을 10억원으로 낮췄을 때 증권거래세는 9조원으로 증가했고 기준을 다시 50억원으로 상향한 윤석열 정부땐 4조원으로 줄었다”며 “대주주 기준과 주식시장 세수 간 인과관계도 없다”고 말했다.

◇임대사업자는 공제율 60%까지 적용

주식 투자에 대한 과실인 배당소득과 부동산 투자에 따른 과실인 임대소득 간 세율도 기울어져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택 월세 임대를 놓으면서 연간 임대소득이 2000만원이 넘지 않으면 세금 공제율이 60%에 달한다. 분리과세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 800만원에 대한 세금(15.4%)인 약 123만2000원만 납부하면 된다. 실제 내야 하는 세율은 6.16%에 불과하다.

반면 배당으로 2000만원의 소득을 얻었다면 15.4%를 내야 한다. 배당소득이 커질수록 세율도 높아진다.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2000만~3억원의 소득 구간에선 22%, 3억원 초과분에 대해선 38.5%의 세금을 내야 한다. 노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배당주 투자를 하기보다는 월세를 놓는 게 더 나은 선택지인 셈이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대표는 “부동산과 주식시장 간 과세의 불균형이 심해지면 돈은 절세가 가능한 쪽으로 몰리기 마련”이라며 “배당소득 분리과세 기준을 낮추면 대주주뿐만 아니라 모든 투자자가 과실을 나누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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