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 양도’ 공증도 받았지만 종중이 뒤늦게 지위박탈
대법 “종손은 장자승계, 사적 합의로 바꿀수 없어”
한 가문의 종손은 사적 합의로 양도할 수 없는 신분적 지위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30년 넘게 제사를 주재했어도 가문의 남성 적장자 지위는 넘겨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의 종중 이사 지위를 인정한 가처분 결정에 종중이 불복해 낸 이의신청 재항고심에서 A씨 패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자판했다.
파기자판은 상고심 재판부가 원심 재판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확정하는 방식이다.
사건의 발단은 1992년 2월 종중의 종손이던 B씨가 사망한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B씨의 장손으로 본래 종손 지위를 이어받아야 했던 C씨는 종손 지위를 A씨에게 승계하기로 합의하고 합의서 공증까지 받았다. B씨의 차남이자 C씨의 숙부인 A씨는 임야와 묘지, 제사 주재 등에 대해 책무를 모두 승계받았다.
관습적으로 종손은 장남에서 장남으로 이어진다. 승계서열상 C씨가 앞서지만, 앞선 종손 B씨의 차남인 A씨가 이어받은 것이다.
이때 종중은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A씨는 ‘종손은 당연직 이사로 간주한다’는 종중회 규약에 따라 당연직 이사로 재직하면서 30년 넘게 종손 역할을 하며 제사를 주재했다.
32년 뒤인 지난 2024년 3월 종중은 A씨에게 돌연 ‘이사 임기가 만료됐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이어 다음달 종중 정기총회에서 ‘종손을 종회의 족보에 기재된 기준에 따라 정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안건이 가결됐다.
A씨는 그해 8월 총회 결의가 무효라며 종중을 상대로 이사 지위를 인정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은 이를 인용했지만 종중이 이의신청과 항고, 재항고를 내면서 가처분 다툼은 대법원까지 이어졌다.
대법원은 “종손은 일정한 친족관계의 존재에 의해 당연히 인정되는 신분적 지위로서 양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장자승계되는 종손 지위는 A씨가 당사자와 합의했다고 해서 이어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대법원은 “일반적으로 종손이란 ‘장자계의 남자손으로서 적장자손’을 말한다”며 공동상속인들 사이에 협의에 의해 정할 수 있는 제사 주재자와는 달리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러한 종손의 일신전속(一身專屬·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성질)적 성격에 비춰 종중에서 실제 종손이 아닌 사람에 대해 종손의 지위에 있음을 인정했더라도, 곧바로 그 사람이 종손의 지위를 취득한다고 볼 수도 없다”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채권자(A씨)는 승계 합의에도 불구하고 종손 지위를 양도받지 못했고, 규약에 따라 당연직 이사의 지위를 취득하지도 못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는 종중이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도 달리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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